엄마는 내 엄마니까 분명 다 알고 있었던 게다
하드 디스크를 정리하다가 군대에서 모아두었던 자료들을 발견했다.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글과 사진들을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찾아내니 어찌나 기쁜지, 마치 장롱 아래에서 30만 원짜리 금강제화 구두 상품권을 발견한 엄마처럼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트로이를 발견한 하인리히 슐리만이 이런 기분이었겠지.
군대에는 '병영 문학상'이 있다. 그 시절만 해도 내가 글을 쓰면서 살기를 원할 거라고는 거의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에 꾸준히 원고를 쌓아두지 않았다. 안타깝고 또 안타까운 일이다. 제대하고 나서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생계 전선에 뛰어든 다음에야 깨달았다. 사실 그 시절만큼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때가 흔하지 않음을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 '병영 문학상'에 도전하기 위해 두 편의 수필을 끄적였다. 마감일자 직전의 일이다. 아침에 고치고, 저녁에 또 고치고, 고친 것을 또 고치며, 지우개로 하도 지운 탓에 종이가 해져 찢어질 때 까지 고치고 고쳤다. 그렇게 완성했다.
나름 잘 썼다고, 그래서 이 작품이 병영 문학상에서 상을 타는 일은, 매주 화요일 조식에 어김없이 배식되는 군데리아처럼 변동이 있을 수 없는 확실한 결과라고 99%는 믿었다. 병영 문학상의 당선작은 가작까지 포함하여 수십 편이 넘었기 때문이다. 나는 병영 문학상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3박 4일의 꿀 같은 포상 휴가를 그리며 원고를 제출했다. 그리고 나서 당선작 발표일 기다리기를 로또 복권 구매자가 토요일 저녁을 기다리듯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과는 갓 청소해놓은 세면대마냥 얼룩 한 점 없이 깨끗한 탈락.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수상작이라 발표된 것들도 이 수준보다 낫지는 않았는데. 덕분에 '군대'와 '국방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삐딱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이 그렇게 엉망인가, 그 후에도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다.
그중 한 편을 여기에 올린다. 수필 부문이었다. 즉, 고스란히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의미다.
<오이지무침>
똑똑똑똑.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 치익치익. 밥솥이 김을 뿜는 소리. 분명 엄마는 무언가를 만드는 중이다.
“아 시끄러! 조금만 더 자자! 이제 들어가면 낮잠은 못 잔단 말야! 그리고 나 안 먹고 간다고!”
“그려, 그려. 좀 더 자아.”
엄마는 미안해하며 방문을 닫았다. 나지막이, 하지만 여전히 이어지는 도마질 소리.
‘아, 진짜!’ 나는 이불을 홱 돌려 머리에 덮었다.
알람이 울렸다. 일어나야 했다. 이불에서 기어 나왔다.
“딱 한 술만 뜨고 가아.”
오이지무침이 밥상에 올라와 있었다.
“올 여름은 오이지를 못 먹네. 군대 짬밥에는 오이지가 안 나와.”
어제 무심코 흘린 말을 떠올렸다.
“안 먹는다고 그랬잖아. 버스 시간 늦는다고.”
“그려, 그려. 부대 늦게 들어가면 혼나지.”
하지만 고슬고슬 지어진 밥을 주걱으로 뒤집는 엄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반항하는 십대 소년마냥 거칠게 군복을 입었다.
“나 양말!”
“양말 어제 세탁기 돌렸지. 참, 내 정신도.”
끝내 수저까지 부산스레 놓고 나서야 엄마는 빨래건조대가 있는 베란다로 나갔다. 가출한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부모처럼, 밥과 오이지무침과 수저가 가지런했다.
“그래도 한 술만 떠어. 가려면 허기지잖아.”
“가서 먹고 들어가면 돼. 늦는단 말야.”
차려놓은 밥술을 뜨는 데 몇 분이나 걸리랴만, 애원하는 손을 뿌리치듯 매몰차게 집을 나섰다. 외박을 나왔다가 복귀하는 날이었다.
부대 밖을 나올 때면 언제나 먹고 싶은 음식을 쪽지에 잔뜩 적었다. 그것들을 다 먹고 복귀해야 성에 차겠지만, 출타는 짧고 목록은 긴 까닭에 채 맛보지 못하는 음식이 항상 남기 마련이다. 아쉬움의 크기는 남은 목록의 길이와 비례했다. 한 끼의 밥은 한 번의 기회. 시원찮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가 무얼 좀 해놓으리?”하는 물음에 고개를 시계추처럼 도리질하는 것이 통과 의례였다.
“싫여, 싫여. 다 나가서 먹을 거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오이지무침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외려 여름이면 올해는 오이지 언제 담그느냐며 성화를 부리던 나였다. 일주일쯤 묻어둔 오이지 항아리 뚜껑을 열면, 짠내가 확 올라왔다. 오이를 꾹 눌러둔 손바닥만 한 차돌을 들어내고, 하얀 곰팡이가 둥둥 떠 있는 뿌연 물에 손을 넣어 쪼들쪼들 익은 오이지를 꺼낸다. 세찬 물에 깨끗이 씻고 꺽둑꺽둑 썬 뒤 시리도록 차가운 생수를 반나절쯤 부어두면 짭조름한 맛이 그만이었다.
‘아이고 시원하다. 소화가 다 되네!’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이지무침은 또 어떤가. 둥글게 썬 오이지를 두 손으로 쥐고 물기 하나 없게 꼭 짠다. 여기에 칼칼하고 새빨간 고춧가루, 눈이 아리게 갓 다진 마늘, 코털을 톡 때리는 매운 후추를 넣고 식초, 설탕, 참기름은 숟가락 끄트머리에 매단 듯 약간만 덜어서 얹는다. 다섯 손가락 끝으로 쇼팽 Chopin의 즉흥환상곡 Fantaisie Impromptu을 연주하듯 빠르게 조물조물 버무려서 하얀 접시 가운데에 봉긋하게 놓으면 찬 밥 한 덩이와 함께 여름 내 물리지 않는 점심 단골이었다.
하지만 음식 목록에는 복귀 직전 마지막 끼니로 냉면이 예약되어 있었다. 부대 근처에 유명한 집이 있다기에 적어 놓은 참이었다. 지금 밥을 먹으면 배가 쉬 꺼질 것 같지 않았다. 맛나다는 냉면을 최대한 맛있게 먹고 싶었다. ‘3대 째’ 내려오는 ‘40년 된’ ‘정통 이북식’ 평양냉면이라는 수사 앞에서
엄마의 오이지무침은, 초라했다.
문전성시(門前成市)였다. 자리가 없어서 몇 명인가 일어서기를 기다려야 했다. 냉면을 위해 끼니를 걸렀더니 꽤나 허출했다. 북적이는 손님들을 일별해 보았다. 냉면 반, 닭백숙 반. 쪼옥 쪽 찢어지는 하얀 닭고기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도 맛있어 보였다. 빈속이라 더운 음식이 끌렸나 보다.
“음. 평양 하나요.”
잠깐 망설였지만 여기 온 목적을 되새기며 냉면을 주문했다.
탁.
‘어라!’
대답도 없이 종업원이 식탁에 던지고 간 것은 찬 물 한 컵. 이름 깨나 있는 평양냉면 집은 대개, 구수한 메밀 향이 코와 입을 가득 채우는 면 삶은 물이나, 따끈해서 속을 든든하게 해 주는 담백한 육수를 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면수도 육수도 아닌 찬 물이라니, 첫인상에서 감점.
잠시 후, 냉면이 도착했다.
“저기, 절인 무도 주세요.”
“거기 식탁 위요.”
귀퉁이에 놓인 네모진 스테인리스 통을 가리켰다. 미지근한 짠지 물에 두껍고 들쭉날쭉한 무 조각이 둥둥 떠다녔다. ‘이건 도대체!’ 반찬통 벽면 여기저기에 붙어 말라가는 무가, 방치된 지 꽤 되었음을 말해주었다. 실망감은 제쳐두고 일단 냉면 육수부터 쭈욱 들이켰다. 찬 기운이 찌르르 목구멍을 타고 단숨에 배까지 내려왔다. 너무 많이 허기진 탓이라 그럴까? 맛 역시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유명한 평양냉면은 겨자와 식초를 치지 않고 본래의 맛을 즐긴다는 나름의 원칙을 깨고 간을 세게 했다. 아리고 시고 차가워서 위장이 몸서리쳤다. ‘이걸 먹겠다고 그렇게들 난리란 말야?’ 기대가 높았던 만큼 허탈감이 컸다. 북적이는 손님들까지 한심해 보였다.
문득 따뜻한 밥이 먹고 싶었다. 집을 나설 때 엄마가 차리던 밥상이 떠올랐다. 아, 오이지무침! 이럴 줄 알았으면 먹고 나올 것을. 배는 허하고, 몸은 떨리고, 머릿속은 온통 오이지무침! 뒤죽박죽인 상태로 꾸역꾸역 그릇을 비우고 자리를 떴다.
그날 밤, 소등을 하고 침상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매콤하고 짭짤한 오이지무침의 향과 어금니에서 아삭 거리는 식감이 아른거렸다. 남들은 휴가에서 복귀하면 삼겹살이니 소주니 그런 것이 제일 그립다는데, 나는 밥 한 숟가락에 오이지무침 한쪽이 다른 무엇보다 간절했다. 그까짓 냉면이 뭐라고 다 차려놓은 밥상 앞에서 유세를 떨고 시악을 부렸는지 부아가 났다.
내가 모지락스럽게 집을 나선 후에 혼자 남아 있을 엄마를 생각했다. 사람이 빠져나가 적막한 집. 어질러진 이불이며 옷가지를 정리하며 엄마는 한숨지었을 것이다. 가지런한 수저는 허전함을 더할 테고, 손도 안 댄 밥상은 밥알이 누렇게 굳도록 차마 치우지 못했을 것이다. ‘집 밥’은 안 먹을 거라며 도장 찍듯 말해도, 엄마는 매번 지치지 않고 “무얼 좀 해 놓으리?”하며 물었다. 몇 번이고 되물어서 정말 싫다고 신경질이라도 내야 그제서 멈추곤 했다. 아들에게 손수 밥 한 끼 해 먹이고픈 엄마의 심정을 왜 몰랐을까.
엄마는 틀림없이 내가 오이지를 먹고 싶어 할 것을 알았던 게다.
그러니까 ‘싫여, 싫여’ 소리에도, 돼도 않는 짜증에도 묵묵히 밥을 차렸던 게다. 연상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된다.’면서도 바지런히 밥을 뜨고 수저를 놓았던 게다. 대꾸하지 않고, 화내지도 않고 그저 한 술만 떠보라고 사정했던 게다. 엄마는 내 엄마니까, 분명 다 알고 있었던 게다.
나는 솔직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사 먹는 것이 편하다 했지만, 엄마의 기쁨은 편함에 있는 것이 아님을 잊었다. 나는 맛집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지만, 엄마가 해준 ‘집 밥’이 최고인 줄은 미처 몰랐다.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집에 다녀와야겠다. 엄마는 이번에도 “무얼 좀 해 놓으리?”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면 환한 목소리로 “응, 엄마가 지은 밥. 그 왜 있잖아. 엄마가 잘하는 오이지 무침하고!”라고 대답해야겠다. “그려, 그려!” 엄마는 신이 나서 부엌으로 가겠지.
똑똑똑똑.
도마질 소리가 벌써 귀에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