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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5. 2015

#38 신해철을 보내고 <민물장어의 꿈>을 듣다

우리의 삶이란 이렇게 현미경 슬라이드마냥 얇고 약한 것인데도

대학 동기 중에 존재감이 남다른 사람이 있었다.


원래 2년 전에 수능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고 공대를 택했었는데, 뜻한 바가 있어 다시 법대 신입생으로 입학한 형이었다. 두 살이라는 나이 차, 통나무처럼 낮고 굵은 목소리,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신문 기사의 주인공, 거기다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단련된 몸이 처음부터 친근하게 다가가기에는 약간의 벽이 느껴지기도 했다. 터미네이터처럼 크고 말수가 없는 형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노래방을 자주 갔다.


지갑에는 돈이 없고, 수업만 제치면 시간이야 무한정했던 우리들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강냉이를 바가지 채로 퍼 먹을 수 있는 낡은 호프집과 다음 대기 손님이 들어올 때 까지 '10분'의 추가 시간을 끝없이 넣어주던 노래방 밖에 없었다.


해가 서쪽 하늘에서 뉘엿뉘엿 떨어지고, 관악산의 어둑한 그늘이 한껏 늘어질 즈음이면 다섯 시 십오 분 마지막 수업을 마친 신입생들은 선배들의 인솔을 따라 콜리가 모는 양떼처럼 녹두거리로 내려갔다. 그리고 뱃속의 강냉이가 맥주 거품에 팅팅 불어 '꺼억' 소리가 나올 때까지 호프집의 푹 꺼진 소파에 달라붙어 있다가, 20명도 한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싸구려 단골 노래방으로 가는 것이 일과였다.

흔하디 흔한 그 시절의 노래방 중에서, 우연히 찍은 스냅사진처럼 남아있는 기억은 바로 그 터미네이터 형이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120분을 기본으로 시작했지만, 사람이 워낙 많아서 한 사람이 잡을 수 있는 마이크는 몇 곡이 되지 않을 듯 싶었다. 다들 연신 선곡 책자를 뒤적거리며 자기 노래를 찾기 바빴고, 노래방 화면 위에 예약곡은 계속 쌓여만 갔다. 노래방이란 원래 그런 곳이었다. 남의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부르기 위해 찾는 곳.


우리가 밥그릇을 놓고 싸우는 시골 강아지들처럼 게걸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두 시간 동안 터미네이터 형은 긴 소파의 제일 끝자락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마이크를 한 번도 잡지 않고, 그렇다고 자리를 비우지도 않으면서 예의 그 모자를 푹 눌러 쓴 채 장승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커다란 노래방 화면 오른쪽 구석에 모자의 챙이 움직임 없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120분이 다 되어갈 즈음이었다. 아마 미리 시간을 계산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시계는 1분을 가리켰고, 우리는 마지막 곡으로 마무리할 시간이었다. 노래를 부르던 누군가가 알아서 리모컨의 '중지'를 누르고 다음 곡을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노래의 제목이 화면에 떴을 때, 터미네이터 형이 마이크를 끌어 당겼다.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 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 <민물장어의 꿈> 중

전주 없이 단박에 뛰어드는 시작.

채 벽지조차 바르지 않은 시멘트 방처럼 텅 빈 반주.

그리고 마치 우리들 자신의 일기장을 펼친 듯 심장을 후비는 노래 가사.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따라 부르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노래가 완전히 끝나고, 형의 목소리가 점멸하는 반딧불이의 희미한 불빛처럼 서서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스냅 사진의 한 장면인양 가만히 있었다. 아마 모두들 그 순간을 자신의  가슴속에 메모리로 저장하느라 그러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 노래가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었다.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고 나서 다음날 실시간 검색어에는 하루 종일 <민물장어의 꿈>이 올라있었다. 의외의 일이었다. 국민 응원가인 <그대에게>도 있고 애절한 사랑 노래인 <슬픈 표정 하지 마요>도 있으며, 외로운 남성들의 자기 다짐이나 다름없는 <Here I stand for you>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준 <날아라 병아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를 보내는 순간 이 세상이 택했던 노래는 <민물장어의 꿈>이었다.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히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 <민물장어의 꿈> 중



신해철은 생전에 말하길, 자신이 세상을 뜬 뒤에 사람들이 <민물장어의 꿈>을 알아줄 것이라 했다 한다. 무거운 선율과 철학적인 가사로 발표 당시에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해 아쉬웠다고. 그가 남긴 유서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었다.


우리들 중에는 신해철의 팬이 아닌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민물장어의 꿈>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터미네이터 형 때문이었을 것이다. 머지않아  하나둘씩 웃음기를 지우고 고시생의 세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민물장어의 꿈> 가사는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기도했다.


그 후로 우리들이 노래방을 가면 <민물장어의 꿈>을 부르는 친구가 항상, 언제나 있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노래를 택하고, 노래가 흐르는 동안에는 마치 묵념을 하는 사람들처럼 움직임 없이 듣곤 했다. 마이크를 뺏거나, 함께 부르는 이도 없었다. 어떤 사람의 목소리던 상관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가 <민물장어의 꿈>을 택하던, 우리 모두는 마음으로 그 곡을 함께 불렀다.


신해철이 세상을 떠나고, 조금씩 사인이 밝혀지고 있다. 지리한 법정 공방이 예상되고 끝내 누가 얼마만큼의 책임을 물게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병원에 제세동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동의하지 않은 수술을 시행한 흔적이 있으며, 심낭에 천공이 있는 것으로  보아한 가지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는 것.

가지 않아도 될 사람을 안타깝게 보냈다는 것.


그리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굉장히 약한 존재구나. 시대를 웃고 울게 했던 천재 음악가도 이렇게 허무하게 갈 수 있구나.'

얼마 전의 일이었다. 내 주변에 몇 가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던 어떤 하루가 있었다. 아우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외국대학에 교환학생 허가가 났다. 박사 과정에서 한 계단 올라서느냐 마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허가였다. 어머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식중독을 앓았다. 한밤중 언제라도 응급실에 가야 할지 몰라서, 밤새 뜨거운 물을 끓이며 뒤척였다. 그리고 그 날 우리 집 우체통에는 사촌동생이 결혼한다는 청첩장이 도착했다.


비록 나 자신에 대한 일은 아니더라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나의 지근거리에서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고 삶의 향방을 가를 수도 있는 중요한 일들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집달리처럼 무심하게 스쳐지났다. 그 때도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굉장히 얄팍한 것이구나.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잡은 채, 아주 살짝만 힘을 가해도 '바스락' 하면서 깨지고 마는 현미경 슬라이드 유리처럼 우리의 삶도 언제든 확, 확 뒤집힐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구나. 그런 한없이 미약한 것들을 우리는 마치 영원히 지킬 수 있는 소유물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면서, 집착하고 화내고 욕심을 부리고 게으름을 부리는구나.'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민물장어의 꿈> 중



평균 수명으로 90을 말하고, 국민 소득으로 3만 불을 말하는 시대다. 평균 임금, 평균 부채, 평균 병원비, 평균 교육비, 평균 결혼 연령... '평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수많은 숫자들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흐리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평균 사망률이 50%라고 하여, 우리가 공평하고 안전하게 절반만 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 개개인의 것이듯, 삶도 개개인의 것이다. 다만 거기에 의지와 노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커다란 힘이 더해져 우리들 개인의 삶이 구체성을 띄고 굴러가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슬라이드 유리처럼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얇은 삶 위를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 일진대, 조금쯤 화를 덜 내고, 얼마쯤 집착을 덜 하고, 하나를 주는 대신 두 개를 주면서, 딩굴딩굴 누워서 시간을 죽이지 말고, 단 한 가지라도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지.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 <민물장어의 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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