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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7. 2015

#52 황동규 선생님의 즐거운 편지

때로는 우연이 행복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았다. 


장인-장모-아내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간 작가 지망생 사위가 자정 무렵에 겪는 일들인데, 음... 보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아직 보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한 번 보시기 바란다. 더구나 글쓰기에 관심이 있거나 미술 - 문학을 사랑하는 분들은 꼭 볼 것을 추천.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90분 남짓의 짧은 러닝타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나리오 상까지 받은 작품이니 스토리 전개도 찰지고 탄탄하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가능한 미리 인터넷에서 영화 정보를 읽는 일이 없도록 할 것. 나는 마치 선배에게 손목을 붙잡혀 억지로 끌려나간 소개팅마냥, 영화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덕분에 90분 내내  '오오...'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수 있었다. 기대가 없어야 실망도 없고, 아는 것이 없어야 놀람도 크다. 


"흠흠... 우디 앨런처럼 작품의 완성도가 높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영화가 아니면 별로 끌리지가 않는단 말이지..." 하는 식으로 말할 수 있으면 품격이 좀 있어 보이겠지만, 나는 사실 그런 수준 있는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고질라 우르릉'이나 '좀비 두다다다' 라던가 '에일리언 쿠아아'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다. 전봇대 만한 기관총으로 개미떼처럼 새카만 괴물 떼를 모조리 쏘아 죽이는 포악한 싸구려 영화를 "꺄악" 하는 표정으로 몰입해서 보는 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우디 앨런만은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우디 앨런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더라도 모조리 사서 읽고 싶은 소설가의 냄새가 난다. 입대하기 직전에 우연히 접한 <빅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는 어쩌다 보니 네 번인가 보기도 했다. 동생의 어깨 너머로 슬쩍 보다가 아예 자리를 잡거나, 친구에게 "시작하는 장면 5분만 봐봐." 하고 권하다 보니 어느새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게 되었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 우디 앨런이 무려 1935년 생 파파 꼬부랑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나는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무려 80살 할아버지다. 


그 나이에도 영화를 찍을 체력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아내가 35살 연하의 한국계 여자라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여든 살의 꼬부랑 할아버지가 민들레 홀씨처럼 가벼운 유머감각과 개나리 꽃눈처럼 새파란 감수성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80세는 '쯧쯧쯧, 요즘 젊은 것들은'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다. 연애가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하는 젊은 사람들의 고민거리를 같이 공감하며 소통할 수만 있어도 "할아버지 최고!"라는 말을 들을만한 나이다. (내가 연세 있으신 분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디 앨런은 젊은 사람들도 깜짝 놀랄 만큼 유머와 감수성이 크림 생맥주처럼 줄줄 넘쳐 흐르지 않는가. 


우디 앨런의 나이를 알았을 때, 문득 떠오른 분이 있다.

1학년 1학기, 흠집 하나 없이 새파랬던 대학 새내기 시절에 뵈었던 분이다. 


황동규 선생님.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로 시작하는 '즐거운 편지'의 시인 황동규 선생님이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자신이 스스로 시간표를  짜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수강신청요강'이라는 책자 하나에 의지해서 '수강신청서'를 작성한 후, 인터넷 홈페이지 어딘가에서 등록을 해야 했다. 수강신청요강에는 그 학기에 개설된 수업명과 주요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수업명은 대개 '미디어의 이해'나 '현대문명비판'처럼 형체가 애매했다. 과목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읽어봐도 구름의 언저리처럼 희미해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법대에 왔으면 법 과목에 대한 시간표가 딱 부러지게 나오는 것인 줄 알았지, 이처럼 복잡한 과정이 있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선배들에게 매달려서 "이 수업은  어때요?"라고 물어도 "몰라. 나도 안 들어봤어." 라거나 "교수님이 누가 걸리느냐에 따라  달라."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간혹, "왜? 설마 수업 열심히 들으려고? 1학년 때는 놀아야지." 하면서 짓궂은 대답을 하는 선배도 있었다. 


다들 수강신청서를 붙잡고 난수표를 해독하듯이 메모를 끄적거리는데 문득 '신입생들을 위한 추천 강의 리스트'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아마 총학생회에서 만든 자료였던 것 같다. 법대 건물 1층, '대학신문'이 쌓여있는 곳에서 잠깐 집어 들어 보았던 조잡한 인쇄물이었다. '대학생의 필수 인기 교양 강의' 이므로 '수강 정원 조기 마감을 주의할  것'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나는 대충 훑어본 뒤 그 리스트를 쓰레기통에 버렸었다. 수강신청이 이렇게 복잡한 일인 줄 알았다면 가지고 있었을 것을. 아무튼 리스트에서 기억나는 수업명은 딱 하나. '무슨 동규' 교수님의 '무슨 문학' 강의였다. '무슨 개론'이었던 것도 같다. 수업시간 내내 웃음이 넘치는 데다 학점까지 잘 주신다는 설명이 대학 강의는 엄숙하다는 선입견이 있어서인지 꽤 인상적이었다. 


나는 문학과는 일면식도 없는 딱딱한 학생이었지만, 웃음과 학점이 젖과 꿀처럼 흐른다는데 아무려면 어떠랴. 

교양 과목 목록에서 문학 카테고리를 찾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무슨 동규 교수님의 무슨 개론 강의를 찾았다. 
"동규, 동규, 동규... 어디 있나... 개론, 개론, 개론." 

찾았다. 


"황동규 교수님. 영시의 이해"

생각했던 것보다 수강 총원이 적었다. 몇 십 명 정도였던 것 같다. 200명씩 들어가는 대형 강의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클래스였다. 수강신청이 빨리 마감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손이 급해졌다. 강의 코드를 옮겨 적어, 바들바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빈 컴퓨터에 달려가 얼른 수강신청을 시작했다. 아, 그 시절에는 컴퓨터가 없는 사람이 많았었다. 그래서 전산실은 과제를 하거나 싸이홈피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항상 만원. 수강신청 역시 왁자지껄 한 전산실에서 이루어졌다. 


접속 - 로그인 - 정보 입력. 


다행스럽게도 아직 '영시의 이해' 수업은 자리가 있었다. 나는 기회를 놓칠세라 재빠르게 수강 신청 단추를 눌렀다. 마우스를 클릭하며 문득, 나는 영어에도 약하고 시에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요 떠나 버린 버스였다. 


수강 신청 완료. 


그것이 첫 학기의 시작이었다.

삶에서 다시 오지 않을 대학 신입생 시절을 나는 그렇게 시작했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는 황동규 선생님이 펴내신 시집 이름이다. 우리가 삶의 무대에서 가끔씩 우연에 기대고 싶어 지는 것은, 인연이 때로는 우연의 가면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한  번뿐인 시간, '영시의 이해'도 그랬다. 


대학에서 보낸 4년 동안 가장 많이 웃은 과목이 '영시의 이해'였고, 가장 많이 행복했던 과목이 '영시의 이해'였으며, 어렴풋이나마 '이런 글을 읽고 쓰며 살고 싶다'는 상상을 펼칠 수 있었던 것도 '영시의 이해' 덕분이었다. 비록 한 학기 동안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유일한 코멘트는 "자네는 좀 더 많이 소리 내 읽을 필요가 있군." 뿐이었지만 말이다. 


나는 사실 황동규 교수님이 "즐거운 편지"를 쓴 그 황동규 선생님인 줄은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시절만 해도 시인이라 하면 산 속 깊은 곳 어딘가에 숨어사는 존재인 줄 알았다. 양복을 입고, 버스를 타며, 명함에 써 넣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국문학과도 아니고 영문학과 교수님이었을 줄이야. "즐거운 편지"를 꽤나 많이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 다이어리에 옮겨 적기까지 했던 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해 선생님은 정년을 앞두고 있었다.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마지막 해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표현하면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정말로 재미있는 분이셨다. 항상 천진난만한 표정이었고, 영시를 낭송할 때는 눈빛에 깊은 감수성과 자잘한 장난기가 함께 어른거렸다. 작은 키에 하얀 얼굴을 하신 선생님의 얼굴을 보며 깔깔거리면서 한 학기를 보냈다. 학점이 얼마가 나오더라도 상관없다고, 수강하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수업이었다.

이듬해였다. 


학년이 바뀌고 나서, 캠퍼스와 수강신청 요령 쯤에는 익숙해졌을 무렵, 자하연 연못 앞을 지나가는 황동규 선생님을 보았다. "올해는 퇴직하셨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여전히 회색 양복에 낡은 가죽 가방 차림이었다. 여전히 감수성과 장난기가 함께 깃든 얼굴을 하시고, 간간이 인사하는 학생들에게 목례로 답을 하며, 법대 아래쪽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느리지도 않게, 너무 빠르지도 않게. 노교수의 지혜와 시인의 자유로움을 함께 담은 뒷모습으로 선생님은 멀어지는 중이었다. 


그때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평생 차 없이 걸어 다니더라도 나쁘지 않겠다.'
'나중에 나이 들어. 내 뒷모습도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십 년쯤 지난 지금, 첫 번째 생각은 약간 바뀌었지만 두 번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조용하고 온화한 모습으로 조곤조곤 수다를 나누면서, 여전히 시 한 줄에 웃고 표현 하나에 감탄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 늙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런 이유로 "즐거운 편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되어버렸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거든 '즐거운 편지'라는 말을 붙이리라 생각했다. 이 블로그는 그렇게, 10년 전에 지어진 이름이다. '오랫동안 전해온 사소함'을 모아 글을 쓰는 공간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제목인 것 같다. 아마  그때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이 블로그의 이름도 분명 달라졌겠지. 우연이 인연을 이끌었다. 황동규 선생님이 주신 귀한 선물인 셈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영시의 이해'를 열심히 듣고 있던 학기 중에 어떤 선배가 해 준 이야기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의 시인 박목월 선생님과 '소나기'의 소설가 황순원 선생님은 친한 친구 사이였다고. 그래서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같은 이름을 짓자고 약속했다 한다. 그렇게 약속한 이름이 '동규'다. 박목월 선생님의 아들이 박동규 교수님이고, 황순원 선생님의 아들이 황동규 선생님. 두 분은 각각 서울대 국문과와 영문과에 재직하셨다. 그리고 원래 '추천 강의 리스트'에 적혀있던 것은, 그래서 내가 수강신청을 하려고 찾았던 것은, 박동규 교수님의 '문학 개론' 강의였다. 


삶이 가르쳐주는 진실에는 이런 것도 있다. 


억지로 끌려나간 소개팅에서 배우자를 만나는 사람이 있듯,
사전 지식 하나 없이 본 영화에서 엄청난 감동을 받듯,
실수로 신청한 강의가 생애 최고의 수업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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