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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1. 2015

#67 여러분의 춘곤증은 안녕들 하십니까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사람은 주의 요망

안녕들 하십니까. 또 다시 춘곤증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눈이 녹으면 꽃이 피고, 꽃이 피면 졸음이 오지요. 춘곤증은 피자 한 판을 넷이 나누듯 4계절이 뚜렷이 구분되어 있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봄이 겨울의 꼬리를 꼭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한, 춘곤증은 생략이 불가능한 연중 행사가 아닐까요. 


이맘때쯤 되면 신선한 봄나물을 먹어라, 물을 충분히 섭취해라 등등 뻔한 춘곤증 예방법이 뉴스에 빠지지 않는데요, 무슨 효과가 있을지 조금은 의문입니다. 나물을 먹어서 졸음을 예방하려면 냉이와 달래가 매 끼니 세숫대야만큼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종합비타민을 책상 위에 양념통처럼 늘어놓고 종류별로 꿀꺽꿀꺽 삼키는 분들도 어김없이 조는 걸 보면 말이지요. 냉이 달래를 먹고 졸음을 쫓는 것 보다 쑥과 마늘을 먹고 곰이 사람이 되는 게 빠를 수도 있어요.  


지금 제 주위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른한 몸과 한바탕 싸우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지인들의 예를 들어볼까요. 



사례 1. 어느 대학원 연구생의 경우. 


논문을 읽는데 잠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뒤를 돌아보니 연구실 사람들이 하나같이 닭처럼 졸고 있다. 레그혼 한 마리, 오골계 두 마리, 뉴햄프셔 세 마리. 고개는 꾸벅꾸벅. 눈은 꿈뻑꿈뻑. 이건 연구실이 아니라 숫제 양계장이다. 그렇다고 우리 연구실 사람들이 IT 프로그래머처럼 새우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밤에는 각자 자기 집에서 멀쩡하게 푹신한 이불을 덮고, 실컷 쿠아아 잠을 청한 뒤에 연구실에 출근한다. 


확실히 봄은 봄인 거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꾸벅꾸벅을 하고 나서, 어떻게든 시간에 기대 잠을 이겨보려는 생각을 결국 포기. 몸을 일으켜 안락의자로 향한다. 연구실에 하나 밖에 없는 안락의자다. 대충 엮은 나뭇가지 위에 싸구려 스펀지로 만든 쿠션을 얹은 의자일 뿐인데, 앉아보면 장난이 아니다. 미켈란젤로 버금가는 가구 명장이 다듬은 듯 사람 몸에 꼭 맞는다. 말짱한 정신으로 앉은 사람도 금세 더운 물에 불린 해파리처럼 흐물흐물해진다. 한 번 앉으면 뱃속 깊이 고여있는 피로감들이 '으어어어...'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타이어 바람 빠지듯 새어나온다. 그리고 곧장 이어지는 수면 상태. 바로 그런 마법의 의자다. 


유리알처럼 뇌파가 맑은 사람에게도 그럴진대 춘곤증의 마수에 영혼이 팔린 닭이야 오죽할까. 나이아가라 폭포에 뛰어드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앉자마자 깊은 잠으로 점프. 누가 업어가서 대추와 인삼을 물리고 찹쌀을 넣어 삼계탕을 끓여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떠보니 왼쪽 목 언저리가 버스 타이어처럼 뻣뻣했다. 슬쩍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봤다. "어이고오" 성대 깊숙한 곳에서 고통의 사운드가 새어 나온다. 뿌드득. 안락의자에 파묻힌 동안 목이 꺾여서 잠들었던 거다. 스포이트 끝에 달린 물방울처럼 왕방울만한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 근육이 럭비선수의 스크럼처럼 단단히 뭉쳐버렸다. 악마는 손을 잡고 같이 온다더니, 잠깐 한눈 파는 사이에 춘곤증이 근육통을 불러왔다. 

사례 2. 독서실을 지키는 수험생의 경우 


잠이 늘었다. 밤에 자는 잠도 늘고, 낮에 자는 잠도 늘었다. 수험생은 잠에 민감하다. 잠을 많이 자면, 공부 시간이 줄어들고, 공부 시간이 줄어들면 진도 빼는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시간은 마치 월급 명세서처럼 한 푼의 에누리도 없다. 잠을 잔 만큼 진도는 느려진다. 


책상 앞에 놓인 분홍색 스톱워치가 무의미해졌다. 춘곤증 때문이다. 하루의 공부 시간을 체크하는 스톱워치인데 처음에는 '어, 요즘 공부 시간이 자꾸 줄어드네' 하고 경각심이라도 들더니, 이제는 아예 스톱워치의 stop도 누르지 않고 조는 날이 많아졌다. 부시시한 눈으로 퍼뜩 깨어 보면 스톱워치의 숫자만이 코스를 벗어난 마라토너처럼 혼자 달리고 있다. 


"3당 4락 하면  된다"라고 의지를 북돋는다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남들은 말하길 "오후만 되면 배터리가 방전되는 것 같아" 라던데 속 편한 소리. 나는 누가 코드를 확 뽑아가서 며칠 째 돌려주지 않고 있다. 


자아, 이만하면 심각한 상태입니다. 진돗개 하나라도 발령해야 하는 것 아닌지 싶지요. 일일이 거론하지 않아서 그렇지 다들 대동소이,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 춘곤증. 당신은 누구시길래 이렇게 우리를 괴롭히는 걸까요. 개나리의 꽃말은 '희망' 이라던데, 절대로 No No, 모르는 소리. 


개나리의 꽃말은  '졸음'입니다. 


제 이야기를 하나 하지요. 물론 춘곤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들으시다 보면 잠이 좀 깨실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를 듣고 웃지 않은 사람이 없었어요. 말로 하는 것과 글로 쓰는 것은 약간 다른 문제 입니다만. 그리고 혹여 '기대한 만큼 재미가 없다' 하시더라도 한 가지는 얻어가실 수 있습니다. 바로 '절대로 저렇게 추해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죠. 사자성어로 하자면 반.면.교.사. 


아무튼 실화임을 분명히 밝히고 시작합니다.

불행히도 실화의 주인공은 바로 저구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파릇파릇함이  온몸에서 발산되던 대학생 무렵이었습니다. 자하연의 연못에는 로맨틱한 무지개 다리가 뜨고, 김태희 씨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전설처럼 전해지는 중앙계단 위로 하얀 꽃잎이 비단처럼 흩날리던 아름다운 봄날이었지요. 그리고 저는 중앙도서관의 2층에서 '수족관'을 내려다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학교에 무슨 수족관이 있냐고요. 물고기가 있는 수족관이 아닙니다. 도서관 1층 1 열람실은 통유리로 되어 있었어요. 1 열람실에 앉아 밖을 보면, 사람들이 물고기처럼 왔다 갔다 한다고 하여 우리는 거기를 수족관이라 불렀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부르는지 궁금하군요. 요즘은 학교가 좋아져서 수족관 내부에 '진짜 수족관'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학기 초의 도서관은 언제나 압력밥솥처럼 붐빕니다. 한 낮에 가면 몇 천 석이 있는 중앙도서관도 자리가 흔하지 않아요. 칸막이가 없는 넓은 책상이 말아놓은 김밥마냥 죽죽 늘어서 있고, 책상 하나에 여섯 명씩 다닥다닥 붙어서 공부를 했습니다. 마치 개미 다리 같았지요. 여기 저기서 흔하게 보이는 반짝반짝한 "일반화학"과 "대학 수학" 교과서가 새학기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니, '열심히'는 아니네요. 열심히 공부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려 애쓰던 중' 이었습니다. 


왜냐면, 봄이었거든요. 


춘곤증을 피할 수 없는. 저는 한 마리 토종닭이 되어 꾸벅꾸벅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 엎드려서 조금 눈을 붙이면 될 텐데, 왜 그렇게 무식하게 잠과 싸웠을까요. "형법총론"의 "미수론"을 마스터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 때문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때 저는 복싱을 배우는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동아리에는 복싱부가 있었습니다. 대체육관의 유리 정문 옆, 자동차 차고처럼 생긴 공간이 학교 복싱부 훈련장이었지요. 사실 저는 동아리 활동을 검도부로 시작했어요. 키가 커다란 동기 녀석이 "니 나랑  검도할래. 검도 뽀대 난다 아이가" 하고 꼬시는 바람에 크지도 않은 귀가 퍼덕였지요. 


그렇게 검도부 활동을 하던 도중, 우연히 <허리케인 카터>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겁니다.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22년간 옥살이를 했던 흑인 복서의 실화 <허리케인 카터>. 캬아. 지금도 생각하면 등줄기에 220V 코드를 꽂은 듯 전율이 찌리릿 하네요. 끝내주게 잘 생긴 덴젤 워싱턴이 주연을 맡아, 끝내주게 감동적인 영화를 찍었지요. 평점이 9점이 넘는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아직도 보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꼭 보시길 바래요. 


문제는 제가 영화 '감상'에 그치지 않고 복싱부의 문을 두드리는 '실천'의 영역에 발을 디뎠다는데 있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남자라면 복싱!"을 외치며 검도부를 (살그머니) 그만두고, 복싱부에 들어갔습니다. 

복싱은 훈련양이 많더군요. 안 힘든 운동이 어디 있겠습니까만, 복싱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검도는 주로 팔과 다리가 힘든 운동이라면, 복싱은 사지와 오장육부까지 멀쩡한 곳이 없는 운동이었지요. 손바닥만 매를 맞는 것과 전신을 몽둥이로 두들겨 맞는 차이라고나 할까요. 둘 다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어느 쪽이 '더 아프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동아리에 처음 들어가서 배운 동작이 '잽, 잽,  스트레이트'입니다. 복싱의 기본이 되는 동작이지요. 간단히 복기해볼까요? 왼 발을 앞으로 두고 섭니다. 두 주먹을 얼굴까지 들어 가드를 올립니다. 오른 주먹은 자신의 입술 앞에 만두를 먹기 직전처럼 슬쩍 붙이고, 왼 주먹은 눈높이에 적당히 올립니다. 이것이 기본 자세. 


그 상태에서 왼 주먹을 쭉 뻗으며 몸을 앞으로 10cm 정도 샤샥 점프하면 '잽', 그리고 오른 팔을 쭉 뻗어 오른 주먹을 날리면  '스트레이트'입니다. 그렇다면 '잽, 잽, 스트레이트'가 어떤 동작인지 감이 오시겠지요. 왼 손, 왼 손, 오른 손 공격이 잽, 잽, 스트레이트입니다.  갓난아기 복서인 제가 훈련해야 할 동작이지요.  


운동 시간 내내 저는 잽, 잽, 스트레이트만 반복했습니다. 복싱 훈련이란 스파링을 제외하고는 대개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줄넘기를 비롯한 체력훈련을 마친 후에는 계속 벽을 바라보고 서서 잽, 잽, 스트레이트를 날렸습니다. 하얀 벽에 나 자신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면, 그림자를 때려잡는 심정으로 잽, 잽, 스트레이트를 멈추지 않았지요. 


"물러가라 게으름! 사라져라  나약함!"이라고 실제로 외친 적은 없지만, 대개 그런 느낌으로 이른바 섀도우 shadow 복싱을 계속했습니다. 왼 팔과 오른 팔이 재봉틀의 바늘처럼 빠르게 슈슈슉 움직이도록. 오장육부가 지쳐 떨어져도 두 주먹 만큼은 불굴의 의지로 펀치를 쉬지 않도록. '한 대 내어주고, 세 대 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반복했지요. 

반복. 아, 사람의 무의식이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반복하는 모든 것은 익숙함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 배울 때는 잽, 잽, 스트레이트가 그리도 어색하더니, 웬걸. 어느새 저는 벌새가 날갯짓을 하듯, 보잉 747 엔진에 터빈이 돌아가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양 손을 뻗을 수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아마추어 복서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아. 밟아서는 아니 되었을 그 길이여.  


솔직히 저는 지금도 궁금합니다. 복싱을 배우는 모든 사람들이 저와 같은 부작용을 겪었을 지. 아니면, 저기 하늘 위 올림푸스 궁전 어딘가에서 제우스 신이 복싱의 명맥을 끊으려는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몇 명의 초보 복서들을 무작위로 골라 이런 부작용을 심어 놓은 것인지. 어쩌면 이 고비를 넘겨야 초보를 벗어나 진정한 복서로서 거듭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복싱을 배우고 난 후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잽, 잽, 스트레이트를 하고 난 후부터 제겐 증상이 하나 생겼습니다. 무엇이냐면, 아, 다시 떠올리려니 자못 두렵기까지 하네요.  그때를 회상한다고 해서 다시 증상이 도지진 않겠지요. 오랜만에 꺼내 놓으려니 마음이 지렁이 모양 젤리처럼 쫄깃해지려 합니다. 


증상은 이랬습니다. 


저는.

책상에 엎드려 잘 때마다.

예외 없이 날렸습니다. 

빌어먹을, 잽, 잽, 스트레이트를. 


이런 이야기입니다. 공부하다 잠시 책상에 엎드립니다. 잠에 빠져드는가 싶으면 어느 순간 눈 앞에 하얀 벽이 나타납니다. 하얀 벽 위에는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그 순간 반사적으로 잽! 그리고 스트레이트!  온몸을 던져 10cm쯤 앞으로 점프! 


아시겠습니까. 잽, 잽, 스트레이트를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 잘 때마다 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런 증상을 안고 있었습니다. 개인 독서실이라면 뭐 괜찮을 겁니다. 가끔씩 푸드덕 거리는 이상한 고시생 하나 있다 생각하겠지요. 우리 집의 책상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아니, 책상에 엎드리기 전에 이불 위에 벌렁 했겠지요. 


문제는 잽, 잽,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장소가 도서관. 그것도 사람들이 빼곡한 중앙도서관. 

인터넷 어디선가 읽으니 사람마다 잠자는 자세가 다양하다 하더군요. 똑바로 자는 사람, 엎드려 자는 사람, 옆으로 자는 사람, 번데기처럼 웅크리고 자는 사람. 하지만 잠자는 자세의 다양한 베리에이션은 이불 위에서 잘 때의 이야기입니다. 


책상 위의 수면이란, 자세에 관한 개인의 선택권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십시오. 두 팔을 가지런히 모으고 이마를 그 위에 얹던지, 책갈피로 얼굴을 덮고 팔은 편안하게 늘어뜨리던지, 아니면 쿠션을 끌어안고 자던지. 대략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자세를 취하건  관계없었습니다. 벌새처럼 날렵하고 보잉 747처럼 듬직하게 잽, 잽, 스트레이트를 날릴 수 있던 저는, 기본 자세가 어떻든 예외 없이 주먹질을 했습니다. 


도서관. 책상 위에서요. 


전형적인 사례란 이런 것입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교과서를 읽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이 돌고래처럼 스르륵 미끄러지면서 다가오지요. 저는 엎드리기 시작합니다. '조금만 자다가 할까.' 이윽고 곧 잠에 빠집니다. 그리고 잠시 후! 엎드려 자던 제 두 주먹은 마징가 제트처럼 앞으로 퍽퍽!  온몸은 헤라클레스처럼 책상에 쾅! 제 소리에 놀란 저는 쓰레기봉투를 뒤지던 고양이처럼 후다닥 깹니다. 정신은 번쩍 들지요. 잠 따위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매 번 이랬습니다.  '한두 번 하다가 말겠지' 하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했습니다. 책상에 앉으면 졸음이 오고, 졸음이 오면 자리에 엎드리며, 자리에 엎드리면 펀치를 날렸습니다. 예외는 없었습니다. '틱 장애의 일종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고요, '절대로 그러지  말자'라고 되뇌면서 엎드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눈을 떠보면, 앞 자리 옆 자리의 학생들이 "흠흠" 하면서 애써 못 본 척, 아무 일도 없었던 척 공부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 기색까지 감출 수는 없는 것. '오늘 도서관에서 진기한  구경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제게는 상당히 심각한 고민거리였습니다. 공부를 하는 한, 졸음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게다가 시간은 봄. 말 그대로 졸음의 전성기니까요.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도서관 2층 2 열람실에서 수족관을 바라보며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에는 거의 자리가 없었고, 제 주변에도 꽉 찬 바둑판처럼 빼곡하게 사람이 앉았지요. 이윽고, 졸음이 찾아왔습니다. 김태희 씨가 출몰한다 하더라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졸음이었습니다. 전답과 가옥을 포기할 수 없는 엄청난 산사태처럼 묵직하게, 눈꺼풀이 내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엎드렸지요. 머리 속에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이 졸음을 견딜 수 없어. 조금 수면을 취할  수밖에.'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펀치를 날려선 안돼.' 


잠이 들었습니다. 물론 잠으로 빠져드는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것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장면처럼 확연히 기억하는 것은, 마치 만취한 남자가 어두컴컴한 전봇대라고 생각하고 바지 지퍼를 내린 채 소변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 새끼가 미쳤나!" 소리에 눈을 떠보니 전봇대가 아니라 검은 양복을 입은 조직 폭력배인 것을 깨달은 순간처럼 충격적이었던 것은, 또 공포스러운 그 하얀 벽의 등장이었습니다. 


하얀 벽이 모습을 드러냈고, 하얀 벽 위에 어두운 그림자가 김처럼 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자를 본 저는. 그렇습니다. 분노에 머리털까지 새빨개진 식당 아주머니가 구슬 만한 똥파리를 파리채로 내리치듯, 무의식적으로 강력한 펀치를 날렸던 것입니다. 


잽! 그리고 스트레이트!
온몸을 앞으로 쿵! 

와당탕탕. 

잠결에도 느꼈습니다. 쭉 뻗은 주먹에 무엇인가 와 닿았다는 것을. 그 순간에도 생각했습니다.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질러버렸음을. 지금 고백하지만 말입니다.  그때 저는 사실, 잠깐 동안 고민했었습니다. '그냥 계속 자는  척할까'라고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마음의 소리가 분명히 들렸습니다. 

'이대로 팔을 당겨 계속 자는 척 해버릴까.' 


하지만 이미 분명 잠은 깨었고, 두 팔은 앞으로 쭉 뻗고 있었고, 머리는 책상 위 5cm 허공에 부유하고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상당히 많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태양을 뒤덮는 화살 비처럼 쏟아지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서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사람은 눈이 동그랗지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을 본 고양이처럼 휘둥그런 눈으로 저는 제가 저지른 사고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책상 위에는 수십 개의 펜들이 광인(狂人)의 머리카락처럼 흩어져 있었습니다. 동그란 은색 철제 필통은 너른 책상 위를 데구르르르르르 구르며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고, 저의 앞 자리, 그리고 대각선 맞은 편 자리 여학생의 니트에는 샤프와 색연필이 비수처럼 꽂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제가 앉은 책상, 그 전후좌우에 동심원처럼 놓여 있는 책상에 앉아있는 무수한 사람들이 일제히 공부를 멈춘 채 이쪽을 보고 있더랬습니다. 잔잔한 호수의 한 가운데 추한 돌멩이 한 개가 '풍덩' 하고 파문을 일으킨 듯, 사람들은 음소거 버튼을 누른 텔레비전처럼 소리 없이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잠결에 두 주먹으로 앞 사람의 필통을 냅다 갈겨버렸던 것입니다. 


그 자리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조직 폭력배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필름이 끊긴 사람처럼, 저 역시 뒷수습을 어떻게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제 성격 상 우당탕탕 도망 나왔을 리는 없고, "죄송합니다. 제가 꿈을 꾸어서" 따위의 말을 바람 빠진 튜브마냥 힘없이 주섬거리면서 펜을 주웠을 겁니다. 봉변을 당한 필통 주인도 같이 널브러진 펜들을 주웠겠지요. 그리고 저는 15분쯤 아무렇지 않은 듯 자리를 지키다, 마치 정해진 스케줄이라도 있던 양 꽁무니를 뺐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개 그랬을 것입니다. 

그 후로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첫째, 저는 중앙도서관 2열을 가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범죄 현장을 반드시 다시 찾는다는데, 저는 잡히지 않은 범인 따위는 아니니까요.  그때 이후로 2열에 발을 딱 끊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그 길로 복싱을 그만두었습니다. 복싱을  계속하는 한, 수면 중의 만행이 사라지리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제 시작 아닙니까. 나중에 훅이나 어퍼컷을 배우면, 아예 옆 사람까지 때릴지도 모릅니다. 복싱과의 인연의 끈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벌써 10여 년 전 이야기네요. 10년의 세월이 지났고, 대학생이 직장인이 되었고, 오빠가 아저씨가 되었는데 이 봄은 아직도 그대로요, 이 죽일 놈의 춘곤증도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요즘은 동티모르산 커피 원두의 힘에 기대 꾸역꾸역 춘곤증에 맞서 버티는 중입니다. 어쩔 수 있나요, 마음대로 엎드릴 수 없는 직장인이니 말입니다. 


다만 서른 해 넘게 춘곤증을 만나보니 졸음이 쏟아져도, '괜찮아, 얼마 지나면 또 사라지는데 뭘' 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적어도 "졸려서 큰 일이다."는 식으로 호들갑은 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격을 닦았다던가 그런 이야기는 아닙니다. 검은 구름이 몰려와도 놀라지 않는 인디언 현로처럼, 나이가 드니 좀 더 느긋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지긋지긋한 춘곤증도 머지않아 자취를 감출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황사니, 때 이른 무더위니 하면서 날씨의 또 다른 얼굴과 싸우고 있겠지요. 괜찮습니다. 봄이란, 계절이란, 한 해란, 그리고 삶이란 그렇게 기우뚱 거리며 나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조금 졸면 어떤가요. 적어도 저처럼 펀치를 날리는 잠버릇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반갑게 맞아주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꿈은 귀한 것이며, 봄날의 단꿈은 더욱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춘곤증에 추억과 평안함이  함께하시기를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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