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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1. 2015

#71 관상, 어디까지 봐 봤니?

관상의 길흉화복을 극복하는 방법

어제 저녁에 허영만 화백의 관상 만화 <꼴>을 잡았다. 


지인의 선물로 10권의 귀한 세트가 책장에 눌러 앉은지 사흘만의 일이다. 해야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있고, 읽어야 할 책도 디즈니랜드처럼 줄을 서 있기에 당장 읽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저녁 식사 후 잠깐, 머리를 식힐 겸 1권을 '쓰윽' 잡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출근 지하철. 문에 등을 기댄 내가 들고 있던 책은 무려 <꼴> 제 5권. 


괜히 '허영만 화백'이 아니다. 

정말 재미있다, <꼴>. 


사실 예전에 관상 보는 책을 산 적이 있었다. 지금도 책장 구석 어딘가에서 누렇게 바랜 종이가 뽀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자고 있을 것이다. 20대 초반의 호기심이었다고 기억한다. 길거리 좌판 같은 곳에서 3천 원에 파는 그런 책이다. 


'꼴'이 좋지 않은 싸구려 책이어서였을까. 몇 페이지 뒤적이다 바로 접었다. 첫째는 자꾸 한문 용어가 나와 귀찮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림이 죄다 옛날 버전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허영만의 <꼴>이 재미있는 것은 그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했기 때문인 것 같다. <꼴>은 꼭 필요한 용어가 아니면 우리 말을 사용해서 이해가 쉬었다. 대 만화가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친근한 비유들은 관상의 개념을 머리에 쏙쏙 넣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관상을 줄글이 아닌 만화로 설명해 놓은 것이 최고의 장점. 나는 내내 거울을 만지작거리며 <꼴>을 읽었다. 

관상 공부는 원래 자기 얼굴을 기본으로 한다. 설명을 읽을  때마다 거울을 보면서 내 눈은 어떤지, 내 코는 어떤지, 내 얼굴은 어떤 길흉과 화복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얼씨구나 좋구나  좋아'라고 덩실거릴 때도 있고, '에고고 망했네 망했어' 라며 한숨을 쉴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있나. 구름 없는 하늘이 없고, 내리막 없는 산이 없는 것을. 박수와 한탄을 조울증 환자처럼 반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적용해 보아야 관상 공부가 는다는 말이다. 


자기 이야기가 재미없는 사람은 없다. 관상은 얼굴이 말해주는 자기 이야기다. 재미없을 리가 없다. 사주나 손금, 하다못해 타로카드를 봐주는 포장마차에도 눈빛을 반짝이는 젊은이들이 빼곡하다. 당장 거울 안에 자신의 재산과 수명과 배우자와 성공이 들어 있다니 그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다. 


게다가 조금 지나면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늘 마주치던 철수가 갑자기 코와 눈과, 이마와 턱으로 분리되어 인식된다. 마음씀이 넉넉한 증거도 있고, 배신을 조심하라는 경고도 있다. 재미있는데다 유용하니 관상 공부는 마치 거대한 자석과 같아 끌리지 않기가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는 온전한 약도 없고, 완전한 독도 없다. 모르핀은 쾌감 때문에 중독이 우려되는 마약이지만, 한편으로는 강력한 진통제로 쓰인다. 동풍이 불면 서쪽을 향하는 배의 사공은 웃지만, 동쪽으로 뱃머리를 뉘인 배의 선장은 인상을 쓴다. 관상도 마찬가지다. 꼴은 사람을 재단하는 도구다. 양날의 칼과 같아 적을 벨 수도 있고, 나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공부가 푹 익은 사람이 조심하여 다루면 화을 막는 방패가 되지만, 어리석은 아이가 치기로 휘두르면 복을 차는 흉기가 된다. 관상은 매우 복잡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눈은 성공을 말하고, 눈썹은 인기를 좌우하며, 코는 재물을 다루고, 이마는 부모를 의미한다는 짤막한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설프게 관상을 주워들은 사람들은 코만 보고 "이야, 아주 복코네  복코"라고 말하기도 하고, "쯧쯔 큰 돈 보긴  틀렸어"라고 고개를 젓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은 '내 코가 복코인가. 큰 돈을 벌려나' 하고 헤벌쭉 좋아하는가 하면 '아아, 나는 뭘 해도 안되나 보다' 하고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관상은 그렇게 단순할 수 없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사람의 몸에 깃들고, 오장육부의 기운이 얼굴로 드러나, 그 나오고 들어감과 이어지고 끊어짐이 거미줄처럼 오묘하게 이어진 것이 관상이다. 허영만도 <꼴>에서 '한 가지만 보고 절대로 판단할 수 없다'고 누차 강조한다. '눈이 어떻고, 코가 어떻고' 하는 일차원적인 지식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틀릴 가능성이  높을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법대 학부생이 교과서를 들고 소송을 지휘하는 식이며, 의대 학부생이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셈이다. 


여기서 관상 공부는 두터운 벽에 부딪힌다. 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존재하는 관상을 배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긍정하더라도, 그 복잡다단함으로 인하여 마스터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재미 삼아 슥슥 넘겨보는 것으로는 나의 얼굴과 주변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판단할 수도, 판단해서도 안된다. 


나는 여기서 김구 선생을 떠올렸다. 

김구 선생은 어린 시절 입신 양명을 위해 과거를 공부했다. 그러나 조선 말 지극히 어지러웠던 시절, 과거 시험이 제대로 치러질 리 없었다. 매관 매직과 부패가 성행했다. 열일곱에 김구 선생이 과거에 떨어지자 부친은 차라리 관상과 풍수를 공부할 것을 권했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에 대한 사람의 호기심은 똑같았다. 명 관상가가 되면 적어도 산 입에 거미줄 칠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김구 선생은 관상학의 명저 '마의상서'를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관상 공부의 기본은 자신의 얼굴을 재료로 삼는다. 김구 선생도 거울을 옆에 놓고 꼴에 몰두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거울 속에 있는 자신의 얼굴에는 어느 하나 복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어디를 살피나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천한 상이었다. 크게 낙담하던 김구 선생의 눈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왔다. 


‘상호불여신호 신호불여심호’(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얼굴 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몸의 상을 따라가지 못하며,
몸의 상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음의 상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 글에 크게 깨달음을 얻은 김구 선생은 그 자리에서 관상 공부를 접었다.

그리고 오로지 마음을 닦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결심했다. '백범일지'에 실린 이야기다. 

아, 진심으로 그렇다. 


<꼴>에는 유독 '격이 높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격이 높아야 복이 많다. 격이 높아야 장수한다. 격이 높아야 사람이 따른다. 큰 것도, 째진 것도, 길거나 짧은 것도 아닌 '격'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코가 좋아서, 어떤 사람은 인당이 빛나서, 어떤 사람은 명궁이 맑아서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진정 큰 인물, 그 복이 바다처럼 크고 넓은 위대한 인물은 이렇게 설명한다. 


'인격이 고매하다' 


이파리에 치우치면 줄기를 보지 못한다. 줄기에 휘둘리면 뿌리를 보지 못한다. 나무에 신경 쓰면 숲을 볼 수 없고, 바위에 사로잡히면 산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스킬에 현혹되면 원리를 놓친다. 관상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을 관(觀)하는데 관상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관상불여심상 심상불여덕상’(觀相不如心相 心相不如德相)

관상은 마음의 상만 못하고, 마음의 상은 덕을 쌓은 상만 못하다.


운을 고쳐 복을 누리고자 하는 이여. 

그대가 해야 할 바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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