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Aug 11. 2015

#70 와퍼와 빅맥, 그리고 최고의 버거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카카오톡에서 버거킹을 친구로 등록해 놓았더니 수시로 할인 정보가 날아온다. 


매우 기쁜 일이다. 원래 나는 할인 이벤트나 포인트 적립에 둔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백화점 할인 기간을 머리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어느 편이냐면 영락없이 후자다. 


평생 동안 신경 쓰지 않아서 하늘로 날려버리는 카드 포인트를 모조리 합하면 작은 자동차 한 대 정도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매번 '포인트 카드 만들어야지' 하면서도 "할인 카드 있으세요?"라고 점원이 물으면, "다음에  만들게요"라고 대답하고 만다. 


게으른 사람이 복이 없다던데, 내가 영락없이 그 짝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의 카카오톡 절친 버거킹이 할인 이벤트 소식을 보냈다. 사흘간 와퍼주니어를 2100원에 판다는 이야기다. 검도하기 전에 종종 들르는 낙성대 버거킹을 가니 손님이 바글바글하다. 다들 와퍼 주니어를 기다리는 손님들이다. 대기 시간이 무려 8분이란다. 그래도 2100원이 어디인가. 소처럼 느긋하게 8분을 기다려 버거를 받았다. 종이를 벗기니 번 위에 뿌려진 넉넉한 깨가 씨익 웃고 있다. 불에 직접 구워진 패티의 열기가 양상추와 토마토를 뚫고 올라온다. 향이 진하다. 


역시 버거의 왕 버거킹. 


나는 버거킹 와퍼의 포장지를 벗겨 처음 한 입을 베어 물  때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짜장면과 치킨이 흔해진 탓인지, 웬만해서는 '엄청나게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짜장면, 치킨과는 달리 버거킹 와퍼는 다행히도 아직 '감탄사 유발 메뉴'다. 미국의 사형수들은 사형 집행 직전의 마지막 식사로 햄버거를 많이 원한다던데 조금쯤은 이해할 만도 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햄버거를 꼽자면 버거킹의 와퍼와 맥도널드의 빅맥이다. 크라제니 모스니 하는 수제버거는 아직 먹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보통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중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도니버거가 인기 있다고 해서 먹어봤는데 솔직히 맛은 그저 그랬다. 아니면 너무 건강한 맛이라, 내 입맛에는 안 맞았을 수도 있다. 


감자튀김과 콜라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차려진 밥상이니 젓가락을 대는' 심정으로 손이 갈 뿐, 햄버거에 생수만 먹어도 충분하다. 나는 그저 와퍼와 빅맥을 좌청룡 우백호처럼 달고 다니면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이상하게도 나는 오리지널한 빅맥과 와퍼가 제일 맛있다. 햄버거집들은 매출을 위해 자꾸 다양한 베리에이션을 내놓는다. 하지만 형 만한 아우 없고, 구관이 명관이라고 나는 무얼 먹더라도 오리지널이 최고다. 얼마 전에는 칠리소스로 휠레를 버무려서 와퍼에 넣은 버거를 먹었다. 치즈칠리휠레 와퍼던가, 이름이 그 비슷했던 것 같다. 칠리가 들어서 맛이 강했는데, 다 먹고 나니 입이 얼얼했다. 맥도널드도 1955 버거니, 무슨 불고기 버거니 하는 다양한 메뉴로 나를 유혹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실패하고 있다. 


역시 빅맥이 최고. 


다만 와퍼에는 와퍼 주니어가 있듯, 빅맥에도 비슷한 녀석이 있다. 맥 더블, 빅맥의 막내 동생 격이다. 삐쩍 마른 얄팍한 번에 초라한 패티 두 장과 동전 만한 피클 세 개가 들어 있는데, 그 맛이 빅맥과 꽤 비슷하다. 마치 만들다 만 빅맥 같다. 가격도 불과 2000원. 빅맥이 생각날 때 부담 없이 슬쩍 먹기에 좋다.

오리지널한 버거를 좋아하는 탓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 


미국의 '인 앤 아웃 버거'. 


오래된 전통의 프랜차이즈 버거집인데 늘 한결같이 메뉴가 다섯 가지라던가 여섯 가지라던가. 대신 내용물들을 손님이 조합해서 주문할 수 있고, 마니아들 사이에는 유명한 레시피들이 존재해서, 일종의 은어로 통한다고 한다. 재료가 지극히 싱싱하고 품질이 좋아 오리지널한 버거가 그렇게 맛이 좋다고 하니, 나로서는 침이 꿀꺽 넘어갈 일이다. 


나중에 미국에 여행 가면 인 앤 아웃 버거 옆에 숙소를 잡아두고 매일같이 드나들며 글을 쓰고 싶은 심정이다.

햄버거를 좋아해서 적지 않게 먹어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버거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너무나 맛있어서, 다른 하나는 너무나 충격적 이어서다. 둘 다 두 번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버거다. 맛있는 버거는 사라졌고, 충격적인 버거는 다시 갈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충격적인 버거 이야기부터 하자. 신림동에는 재래시장이 여럿 있다. 요즘은 직장에 다니다 보니 시장 볼 시간이 별로 없지만, 자취를 하던 대학생 때는 재래시장을 자주 갔었다. 버스에서 내려 거의 매일 시장을 들러 집에 가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재래시장은 무엇보다 싸서 좋다. 표고버섯  2000원어치와 감자  2000원어치면 서너 번은 볶아서 먹을 수 있었다.  1000원짜리 쌈배추 한 통이면 이틀은 먹는다. 


재래시장을 다니는데 분식집에서 햄버거를 팔고 있었다. 떡볶이에 순대, 동그랑땡이나 파전도 파는 그런 시장 분식집이다. 은색 포일에 싸여 있는 햄버거는 상당히 두툼했다. "이건  뭐예요?"라고 물으니 아주머니가 "햄버거여 햄버거. 아주  맛나."라고 답했다. 


얼씨구나. 나는 원래 재래시장 음식을 좋아한다. 파리바게트 1400원짜리 고로케와 시장 도넛 집에서 파는 500원짜리 고로케가 있으면, 시장 것을 집는 나다. 주저하지 않고 덜컥 지갑을 열었다. 

푸들처럼 가볍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는 듯 집에 왔다. 검은 비닐 봉지 안에 들은 은색 햄버거를 꺼냈다. 포장지를 벗기니 역시. 옛날 버거의 상징 양배추와 케첩, 마요네즈가 듬뿍 들어 있었다. 빅맥 두께의 두터운 버거. 나는 행복함으로 비명을 지르며, 하마처럼 입을 벌려 햄버거를 '앙' 하고 물었다. 


어라. 이게 뭐냐. 


빵 맛도 있고, 양배추도 아사삭 씹히고 새콤한 케첩과 고소한 마요네즈도 물씬 느껴지는데, 뭐가 없다. 다시 한 번 하마처럼 '앙' 하고 베어 물었다. 어라라. 실종자의 신원이 분명해졌다. 햄버거 패티. 


그리고 패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침개였다. 


나는 햄버거를 분해해서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냐' 하고 따져 물었다. 빵, 양배추, 케첩, 마요네즈, 그리고 미확인 패티 물체 - 부침개. 부추와 파로 보이는 얇은 부침개였다. 부침개 자체로도 맛이 없게 생긴 녀석이었다. 인터넷에 '우리 학교 부실 급식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라올 법한 반찬의 모습이었다. 


그 햄버거는 도저히 먹을 수 없어, 해부된 상태로 음식 쓰레기 통에 스윽.

내가 만난 가장 최악의 버거였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마무리는 훈훈해야 한다. 내가 먹은 가장 맛있는 버거로 햄버거 수다를 끝맺음하자.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아버지 회사에서 가족 동반 야유회를 갔다. 80년대의 오션월드였던 청평 유원지다. 그 시절에는 청평과 가평이 여름 휴양지로 핫 플레이스였다. 사람들끼리 가는 아유회라서 그 준비를 나누어서 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양념 치킨을 튀겨오고, 어떤 사람은 과자를 준비했다. 아버지가 아이스크림 회사에 다녔으니 비비빅과 캔디바는 넘칠 만큼 많았다. 그리고 우리 집은 햄버거 담당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터라 다들 식사를 챙기지 못했나 보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요기로 할 만한 햄버거였다.  그때는 맥도널드, 롯데리아 같은 프랜차이즈 버거집이 없었다. 제빵 프랜차이즈인 크라운 베이커리가 들어온 것도 몇 년이 지난 후였으니 말이다. 아버지는 동네 치킨집에 햄버거를 주문했다. 50개 였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찾으러 오는 것으로 약속을 했다. 햄버거 주문을 따라가면서 나는 내심 한두  개쯤 내가 더 먹을 수 있기를 바랬다. 50개나 시켰으니 꽤 남지 않을까 생각했다. 

출발 당일, 은색 포일로 싸여 있는 두꺼운 햄버거 50개가 종이 봉투에 담겨 있었다. 햄버거의 둥그스름한 윗 부분의 포일은 조금도 구겨진 데가 없었다. 은빛으로 반짝반짝거리는 햄버거는 은 덩어리처럼 눈부셨다. 양 손에 은 덩어리를 들고 가며 나는 이 녀석들이 꽤 남기를, 내가 많이 많이 먹을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80년대 후반의 시골 동네다. 나는  그때까지 햄버거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무심했다. 회사 통근 버스에는 50여 명을 꽉꽉 차 있었다. 자리가 부족해서  어린아이들은 아빠 엄마 무릎에 앉아서 가기도 했다. 나는 맨 뒷좌석부터 햄버거를 나누어주면서 한 개 이상의 내 몫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사람들을 모두 나누어주고 나자, 나와 내 동생 몫으로 한 개. 


나는  그때 아우와 버거를 나누어 먹었다. 그 속에는 양배추와 케첩과 마요네즈와 싸구려 패티가 들어있었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처음 먹은, 너무나도 맛있었던, 그리고 두 번 다시는 먹을 수 없는 버거였다. 


작가의 이전글 #69 내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