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자신이 최고라고 되뇌며 사람들 앞에 서라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는 동안 꽤 많은 편지를 썼는데, 한 번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편지를 쓰는 데 있어서,
상대방이 나보다 조금 아랫 사람일 때 글이 가장 잘 써진다."
상대가 자신보다 윗사람인 경우는 자꾸 신경이 쓰인다. 이런 표현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한다. 예의를 지켜 공손하게 쓰다가도, '이렇게 하면 지나치게 낮은 자세인가' 싶어 수위를 조절하게 된다. 예시를 들고 싶어도 '저 사람이 나보다 잘 알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주저하고, 근거를 확실히 하고 싶어 정확한 수치와 출처를 찾다 보니 맥이 끊긴다.
주장을 자가 검열하면 메시지가 무뎌진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 사이에 손가락은 느려지고, 펜촉은 멈춘다. 커서는 껌딱지처럼 제자리고 백지는 사막처럼 휑하다. 결국 자신이 아는 바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만다.
하지만 아랫사람에게 편지를 쓰면 그런 일이 적다. 명쾌한 표현을 똑 부러지게 쓰고, 비근한 예시를 찜질방 수다마냥 줄줄 잇는다. 농담과 비유를 자유자재로 옮기다 보니 글이 술술 나간다. 손가락은 지네처럼 움직이고 까만 글씨는 고속도로처럼 쭉쭉 뻗는다. 좋은 글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능력만큼은 100% 발휘하여 글을 쓸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글뿐만 아니다. 말도 그렇고 강연도 그렇다. 사람을 대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 수십 명, 많으면 일백이 넘는 병사들을 앉혀 놓고 시간을 끌어야 했다. 짧을 때는 15분, 길면 30분. 때로는 한 시간을 통째로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간간이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입대한 지 얼마 안 되는 교육생들이라 앞으로 펼쳐질 2년의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충만했다.
나는 그 친구들보다 '윗사람' 이었다. 나이도 제법 위였고, 보고 들은 것도 조금은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계급'이 위였다. 4주 간의 교육 기간이 끝나면 전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었지만, 윗사람-아랫사람의 포지션이 주는 안정감은 상당했다. 나는 해주고 싶은 말, 들려주고 싶은 조언, 보고 들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놨고 50명의 병사들 앞에서 20분쯤 '특강' 하는 것은 식은 아메리카노를 들이키는 일처럼 쉬웠다.
그런데 딱 한번, 말이 막힌 적이 있었다.
교육생 중에 나와 나이가 같은 사람이 한 명 들어왔다. '왜 늦게 입대했느냐'고 물으니 '의사'란다. 그래서 "의대생이냐?"고 물었더니, '의대생'이 아니라 '의사'라고 했다. 독일에서 의대를 나왔고 현재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국적이라 늦게 입대한 거라 대답했다. 군의관으로 가면 군생활이 길어져서, 빨리 끝내려고 일반 사병으로 왔단다. 군의관은 복무 기간이 3년 넘고, 사병은 1년 9개월인가 그랬다.
그 친구를 앞에 앉혀 놓고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 자꾸 막혔다. 수십 명 중에 단 한 명일 뿐인데도 그랬다. 원래 나는 이야기를 할 때 예시와 화제가 이 분야에서 저 분야로 메뚜기 마냥 껑충껑충 뛰는 스타일이다. 대체적인 메시지는 붓다의 가르침이었지만, 앞에 내건 주제는 '군 생활을 잘 하는 법'이고, 예로 드는 수다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연예인까지 다양했다. 뇌과학이나 우리 신체도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그런데 그 친구를, 현역 의사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풀자니 말이 어려웠다. '혹시 틀리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에 건강이나 호르몬, 뇌과학을 피하려 했고, 피해야 할 것을 인식하니까 자꾸 말의 보폭이 좁아졌다. 내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도 시원하게 말이 흐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곳에 발이 빠지는 구멍이 있으면, 우리는 발걸음을 더듬게 된다. 넓디 넓은 장소에 구멍은 단 한 개만 있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조심해야 할 것을 의식하면 우리 몸은 저절로 움츠러든다. 자기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임원 면전의 PT와 심사위원 앞의 오디션, A 매치 대회의 경기장에서 수준 이하가 되는 이유다.
내게 귀중한 조언을 종종 해 주시는 어르신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러므로 항상 너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임해야 한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사람을 대할 때나.
그런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왜냐면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는데,
사람 사이의 능력이라는 것이 불과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단다."
그렇다. 무릎을 탁 치고, 고개를 몇 번씩 끄덕였다. 말씀을 곰곰이 새겼다. 물론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분들이 백사장의 모래처럼 많다. 하지만, 모든 분들이 모든 분야에서 나보다 많이 아는가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1등 하는 친구가 30등 하는 친구보다 모든 과목에서 더 많이 아는 것은 시험으로 한 줄 서기가 가능했던 중,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다. 세부 전공과 논문 주제에 대해서는 그 논문을 쓰는 사람이 제일 많이 알고, 영업 현장에 대해서는 전화통을 붙잡고 있는 실무 담당자가 가장 많이 안다.
우리는 살면서 경험을 하고, 무엇인가를 느끼며, 그것을 내면화한다. 경험과 느낌, 그리고 그것이 내면화된 깨달음은 온전히 우리 자신만의 것이다. 모든 위치의 모든 경험과 깨달음이 소중하다. 우리가 겪은 바로 그것에 대해 우리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그 누구 앞일지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있고, 이렇게 느끼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고 말이다.
지난주에 사내 강사 육성 교육을 들었다. 회사의 지원으로 참가한 20시간의 기초 강사 교육이다. 교육 내용 중에 '자기 소개하는 법'이 있었다. 자기 소개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첫째, 자기 소개는 대개 강의의 시작과 동시에 한다. 강사가 가장 긴장하는 시간대다. 자기 소개를 훌륭하게 시작한다는 것은 곧 강의를 순조롭게 시작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강의를 시작하면 긴장 함수는 최고 값을 찍은 것과 다름없다.
둘째, 강의 만족도를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강사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수강생들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집중도가 확연하게 다르다. 맥루한은 "미디어의 이해"에서 매체가 곧 메시지라고 했다. '무엇'이 말해지고 있는가 못지 않게 '누가' 말하는가가 중요하다.
강사가 가르쳐 준 자기 소개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소개. 강사가 누군지 수강생들이 대개 알고 있을 정도로 지위가 높거나 유명인인 경우에 친근한 느낌을 주기 위해 사용한다. 둘째, 권위를 부여하는 소개. 강사가 별로 유명하지 않거나, 수강생과 지위의 차이가 없을 경우, 혹은 보다 아랫사람이 강의를 하는 경우에, 권위를 주기 위하여 프로필, 업무 경력, 자격증 등을 나열하는 소개 방법이다.
재미있는 소개든, 권위 있는 소개든, 자기 소개를 하는 목적은 이거다.
"내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말을 당신은 잘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자기 소개를 하는 방법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단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강단에 서는 순간 만큼은 그 강의장에서 강사 자신이 최고라고, 지금부터 이어질 이야기를 듣고 싶어 수강생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는 중이라고, 그렇게 확신해야 한다고 말이다. 힘은 뻐꾸기처럼 터지는 웃음보에 실려 강의장 하늘을 날아다닌다, 가슴에 매단 훈장처럼 외적인 프로필에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지속적이고, 더 단단하며, 더 강력한 힘은 말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서 나온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아는 분야에서 최고의 것이며,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온 마음을 다해 전달하겠다는 마음으로 강의에 임해야 한다. 자기 소개를 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바로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상태로 강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어느 연구 결과에서 보니, "당신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무려 38%의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라 답했다 한다. '높은 곳'이나 '질병', 심지어 '죽음'보다 위였다. 많은 사람들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문자 그대로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 누구의 앞일지라도 당당하기를. 우리의 PT가, 우리의 오디션이, 우리의 시합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멋진 장면으로 연출될 수 있기를.
"내가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무하마드 알리 Muhammad A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