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믿어야 할 것, 우리가 쏟아야 할 노력
"한 영민한 도예 선생이 자신의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눴다. 그는 한 집단에 대해서는 최종 작품의 질에 맞춰 점수를 매길 거라고 했다. 학생들이 습득한 기량의 최고치를 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다른 집단의 학생들에겐 최종 작품의 양을 기준으로 평가를 내리겠다고 했다. 이를테면 완성된 작품들 무게의 합이 20킬로그램이 넘으면 A학점을 받을 거라는 식이었다.
학기 내내 '질' 그룹 학생들은 완벽한 작품을 세공해내는 쪽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반면에 '양' 그룹 학생들은 수업 시간마다 도자기를 집어던지듯이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학생들은 선생의 속내를 알 수 없었겠지만, 당신은 그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학기말 평가에서 최고의 작품은 모두 양에 치중한 학생들에게서 나왔다. 대부분의 시간을 실습으로 보낸 학생들의 작품이 질적으로 더 좋았던 것이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에 나온 이야기다. 이 짧은 에피소드에는 우리가 믿어야 할 것과 노력을 쏟아야 할 방향이 모두 담겨 있다.
말콤 그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하고 나서,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1만 시간'의 거탑(巨塔)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하루에 3시간 씩. 꾸준히 1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탑은 그 압도적인 높이로 인해 쳐다보는 이의 목을 아프게 만들었다. '아침형 인간'이나 '하루 3시간' 열풍이 금세 사라지고, 토닥토닥 힐링의 세상이 온 것은 그런 까닭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좌절할 필요는 없다. 거탑의 꼭대기를 쳐다보며 좌절하는 동안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놓쳤다. 시간을 '쌓아' 거탑의 '높이'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전제다.
바로 쌓으면, 쌓인다는 사실.
즉, 양이 질을 만든다는 점이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사람들은 말한다. 목표는 바로 다음 '한 걸음' 이었다고. 저 위에 있는 꼭대기를 쳐다보면 걷다가 지친다. 질은 양의 축적이다. 그리고 양은 한 걸음의 누적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양이 곧 질이 된다는 진실은 그동안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고백을 통해 드러나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예만 들더라도 이렇다.
- 스릴러의 제왕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루 4~6시간의 집필과 독서라고 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생일과 추수감사절만 빼고 일 년 내내 글을 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스티븐 킹은 나중에 이렇게 정정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생일과 추수감사절에도 글을 쓴다."
- 소설가 김연수는 대학시절에 혜화동 근처의 단칸방에 앉아 끊임없이 시를 썼다. 얼마나 쉬지 않고 시를 써댔는지, 시를 쓴 '날짜'를 적은 것이 아니라 시를 쓴 '시간'을 적어두어야 했다. 그는 그때 시간당 한 편씩 시를 써냈다. 물론 소설가 김연수는 시인으로도 등단했다.
- 지박은 32살에 대통령 취임식의 음악감독을 맡은 '천재 작곡가'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OST 40곡은 2주 만에 썼고, <사마리아>의 28곡은 사흘 만에 썼다. 23살에 할리우드에서 음악 유망주에게 주는 제리 골드스미스 상을 최연소로 받았다. 어떻게 음악을 도장 파듯 '뚝딱' 만드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15살 때 집 근처에 링컨센터 도서관이 있었다. 전 세계에서 제일 큰 예술 도서관이다. 하루에 4~5시간씩 3년 간 거기 있는 모든 음반을 다 들었다. 대학을 세 군데나 다녔는데 나보다 클래식을 많이 들은 교수님은 없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편소설 <1Q84>와 <상실의 시대>로 유명하지만, 실은 장편, 단편, 에세이, 여행기, 논픽션, 게다가 올림픽 관전기까지 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글을 써댄다. 일본에서 그가 출간한 책은 대략 넉 달에 한 권 꼴이다.
- 미국의 손꼽히는 글쓰기 강사 앤 라모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알고 있는 멋진 글을 쓸 수 이는 유일한 방법은, 형편없는 초고를 쓰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멋진 글을 많이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형편없는 초고를 많이 쓰는 것뿐이다.
-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일본의 어느 카피라이터는 신입사원들에게 양을 강조했다. 자신은 재능이 없어서 양으로 승부하기로 결심했는데, 남들이 카피 하나를 낼 시간에 열 개를 낼 각오로 일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식하게' 양으로 승부한 그는 일본의 손꼽히는 유명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 <그들이 사는 세상> 드라마 작가 노희경은 작가 지망생 시절, 너무 자주 대본을 써서 가지고 와, 스승이 '그만 좀 가지고 오라' 고 손사래를 쳤다.
도서관을 뒤지고, 신문 기사를 파내면 이런 경험담은 끝이 없다. 어쩌면, '1만 시간의 법칙'의 사례를 읽는데 1만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런 조각조각의 사례를 이론적인 뒷받침과 체계적인 증거로 세상에 내놓은 연구 결과가 앤더슨 에릭슨(Anderson Ericsson) 교수의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 전문적 성과 달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이다. 논문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했다.
질은 양이 만든다.
"3류 수준의 연습량을 가지고도 1류 연주자가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1류 수준의 연습량을 가지고 3류 연주자에 머문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 전문적 성과 달성에 미치는 영향>
예전에 어떤 합격기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합격자들의 합격기를 살펴보니 대략 일주일에 50시간을 공부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50시간을 공부하면 합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공부에만 매진했다."
맞는 이야기다. '합격'은 선택할 수 없지만, '공부량'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부량'의 달성으로 '합격'을 의제하면, '합격'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노력으로 결과를 간주하는 것'. 이것이 대단히 어렵다. '공부하면 붙는다' '달리면 닿는다' '하면 된다'는 간단한 이치 앞에서 우리는 의심과 회의로 가을 낙엽처럼 벌벌 떤다. 노력하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회의감이다. '노력한다고 될까', '해도 안 되는 것 아닐까', '혹시 나만 안 되는 것 아닐까.'
사람이란 본래 그렇게 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모든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지는 사람은 결국 '안 될지도 모른다'라는 답을 받기 마련이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끝내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선을 돌려야 한다. 거탑의 꼭대기를 보고 좌절할 필요도, 실패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걸음의 전제를 곱씹어 본다. 질은 양을 만든다. 빛나는 질은 장담할 수 없더라도, 엄청난 양은 확신할 수 있다. 질은 신의 영역이라도, 양은 흙 묻은 손이 빚는 결과다. 등반가가 걸음에 집중하듯, 우리는 양에 집중하면 된다.
엄청난 양을 목표로 하자.
피카소는 1969년에 '1년 동안' 그린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는 이미 팔려나간 것을 제외하고도 무려 165점의 작품이 걸렸다. 게다가 피카소는 1969년에 여든여덟 살이었다. 늙은 궁정 작곡가 살리에르가 젊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한 사실은 유명하다. 하지만 후세 연구가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작업량은 살리에르보다 많았다.
우리는 노력의 양을 믿고, 노력의 양에 집중해야 한다. '나도 할 수 있을까' '나만 안 되는 것 아닐까' 걱정할 사이에 한 줄이라도 더 쓰고, 한쪽이라도 더 읽자.
인백기천(人百己千).
옛사람들이 말하길, 남이 백을 하면 나는 천을 할 각오로 임하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영민한 도예 선생이 되어야 한다. 도자기를 부대 자루 하나 가득 채우고 도예 선생의 저울 앞에 힘겹게 놓는 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집어던지듯이 만들어 낸 작품 중에 걸작과 예술이 나오는 것을 보자.
"20대가 지나고 난 후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매일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내가 쓴 최고의 글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