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죽처럼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달리기를 나가는 일에 대하여
새벽 한 시 반이다.
내일 아침에는 여섯 시쯤 일어나서 출근을 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오늘 밤은 잘 해야 네 시간이나 잘 수 있을까. 잠이 적은 숏 슬리퍼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나무늘보 내지는 코알라의 피가 흐르는 내게는 평소 수면의 절반을 뚝 떼어버린 셈이나 다름없다. 물론 매일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내 신체 리듬 상 그런 식으로 생활하다간 달포를 넘기지 못하고 앓아누울 것이 뻔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은 이 시간에 자리에 앉은 것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조금 전에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강물 위에 둥둥 떠가는 황금 잎사귀와 같아서 손을 뻗어 닿을 수 있을 때 힘을 기울여 낚아 채야 한다. 잎사귀들이 둥둥둥 떠내려 온다 해서 흔하게 여겨서도, '내일쯤 저기 강 아래쪽으로 내려가 거기서 잡아야지' 하고 다음으로 미뤄서도 안 된다. 스냅샷처럼 선명했던 생각도 조금만 지나면 구름 언저리처럼 흐려지고, 며칠 있으면 아예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 조차 까맣게 잊어먹고 만다. 아이디어든, 깨달음이든 마찬가지다.
게으름 탓에 그렇게 빛이 바랜 영감들이 얼마나 되는지 셀 수도 없다. '그들 중에 혹여 <갈매기의 꿈>이나 <연금술사>처럼 기막힌 것들이 있지는 않았을까'하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면 답이 없다. 후회는 이쯤에서 그만 하자.
어제였다. 엄청나게 힘들었다. 달리기 이야기다.
중국 여행을 다녀온다고 달리기를 못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아니, 모든 것은 핑계다.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었지만 게으름 때문에 안 한 거다. 여행을 함께 갔던 일행 중에 어떤 남자는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호텔 인근을 한 시간 씩 뛰고 오곤 했었다. 몸이 좋은 아저씨였다. 게다가 마흔아홉 살이었다.
게으른 나는 '여행 중에 피로하면 안 되지' 하는 한심한 생각을 하면서 스트레칭 한 번 하지 않았다. 물론 꼼짝 않고 주지육림 호의호식 부귀영화를 누린 것은 절대로 아니다. 계속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이동했고, 하루에 걸은 걸음이 2만 보쯤 되었다. 땀도 적지 않게 흘렸다. 다만 '운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조금도 하지 아니했다는 의미다.
어제 밤 회사에서 돌아와 집에 도착하니 열한 시 무렵이었다. 하루 종일 외근을 한다고 길거리를 돌아다닌지라 온 몸이 말라붙은 사해(死海)처럼 소금기로 뒤덮여 있었다. 근육 구석구석에 피로물질인 젖산이 만기에 도달한 적금통장처럼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이 느껴졌다. 도저히 그대로 잘 수가 없어서 간단한 샤워로 소금기를 닦고 운동화를 신었다. 일주일 만에 나간 달리기였다.
사람이 굉장히 약한 존재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8월 초까지 두 달을 꼬박 꾸준하게 달려온 나다. 9km를 쉬지 않고 달려도 다리가 멀쩡했고, 1km를 4분 11초 만에 끊어서 기분이 우쭐했던 것이 불과 보름 전이다. 검도장에서 머리를 치는 스피드도 확연하게 늘어서 '아, 이 나이에도 회춘이 가능하구나' 하고 새삼 뿌듯해했었다. 그런데 고작 일주일을 쉬었다고, 온몸이 물에 젖은 솜 덩어리였다.
첫 1km가 왜 그리 길었는지 모르겠다. 두 다리는 계속 힘들어 죽겠다고 아우성을 쳤고, 머릿속에서는 '그만 뛰자'는 악마의 속삭임이 멈추질 않았다. 운동화 끈을 묶었을 때 '가볍게 5km 정도만 뛰어줄까?'라고 생각했었다. 땀도 빼고 컨디션도 괜찮으면 6~7km쯤 적당히 달리자고,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갔다.
그런데 웬걸. 나는 3.5km를 지나면서 꼭 급식 먹으러 튀어나갈 준비가 된 중학생마냥 몇 초 간격으로 gps를 보더니, "Four killormeter. Time 22 minute." 어쩌고 저쩌고 소리가 나자마자 도둑이 시치미를 떼듯, '뚝' 하고 다리를 멈추었다. 그리고 집까지 남은 거리는 타박타박 걸어왔다. 억지로, 정말 억지로 뛴 4km였다.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사람은 굉장히 약한 존재인 것이다. 단 며칠만 거르면, 체력이고 뭐고 바닥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회사 일도 그랬다. 일주일의 휴가, 그중 닷새의 여행을 다녀온 후에 회사에 출근했을 때 하루 종일 머리가 바보 멍텅구리처럼 머엉했다. 내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있는 것 같았다. 자료도, 숫자도 눈에 들어오는 속도가 현저하게 느렸다. 중학교 3학년 짜리 학생이 수학능력시험 영어 지문을 독해하는 심정으로 느릿느릿 띄엄띄엄 겨우겨우 하루를 마감한 채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닷새를 쉰 후에 마주한 모니터에는 주술관계가 엉망인 문장들이 어그러진 톱니바퀴처럼 엉망진창으로 꼬리를 물고 있었다. 잘 써보려 기를 썼지만,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었다.
일주일만 쉬면, 달리기고 일이고 글이고,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다. 그러니, 공부하는 날과 노는 날이 깡충깡총 징검다리처럼 뒤섞여 있는 학생이 무슨 공부에 진전이 있겠으며, 글을 쓰는 날과 제치는 날이 싸구려 가방의 바느질 땀처럼 띄엄띄엄 반복되는 사람이 무슨 읽을만한 책을 써낼 수 있겠는가. 사람은 절대로 강하지 않다.
가다가 말다가 손바닥 뒤집듯 변덕이 끓는 사람은 절대로 어딘가에 닿을 수 없다.
무언가에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은 경사가 급한 언덕에서 수레를 밀고 올라가는 것과 같아서 온 힘을 다해 전진할 수 있을 뿐, 제자리에서 편히 쉬는 것은 없다. 쉰다고 생각하는 것은 퇴보요, 평지라고 느끼는 것은 내리막이다. 하물며 허송세월 하는 시간 동안 미끄러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어찌할 것인가.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어딘가에 닿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소망하는 그 자리는 아닐 것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모임이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자리라서 여차여차하다 보니 지하철이 하품을 하도록 늦은 시간까지 있게 되었다. 집에 돌아오니 거의 자정. 아침 일곱 시에 집을 나가 종일토록 일을 하고 들어온 시간이 그랬다. 역시 젖산이 만기 통장처럼 가득 찬 지라 이대로 이부자리에 볏짚처럼 고꾸라질까 생각하다가, 어제 괴로웠던 밤 달리기를 떠올렸다.
하루키는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 10km의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강수진은 골반이 부서져도 하루 16시간의 연습을 그만두지 않았으며, 박지성은 도저히 하기 싫은 날에도 축구장에 나가 볼을 굴렸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도 그러할진대, 서른 중반의 배 나온 내가 '아이고 힘들다' 하면서 눕는다면 내일 저녁에 또다시 '젖산이 어쩌고' 하면서 고통이 배가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 조금만 뛰자. 힘들면 돌아와도 좋으니까. 단 1km만 달리고 오자.
그래서 나는 운동화를 다시 묶었다.
서울에는 호우 경보가 내린 날이었다. 도림천은 물이 가득했고 , 산책을 나온 이는 거의 없었으며, 웅덩이며 나뭇가지며 범람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 그리고 나는 종아리에 진흙을 튀기며 6km를 달렸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느냐 하면, 절대로 그건 아니었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느냐 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자정이 넘은 오늘 이 시간도 엄청나게 피곤하지만, 확실히 어제보다는 수월했다는 점이다. 물먹은 목화솜처럼 무거운 다리지만, 꾸역꾸역 6km를 뛸 수는 있었다.
그리고 아마 내일 밤은, 오늘보다는 조금 더 빨라질 것이다.
사람은 약하다. 열흘 동안 한 걸음씩 전진하더라도, 하루 만에 열 걸음을 후퇴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은 나아진다. 하면 분명히 좋아진다. 한 번 연습하면 한 번 좋아지고, 한 번 단련하면 한 번 강해진다. 비록 미약하고 보잘 것 없을지라도, 어제보다 나아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그것이 분명한 까닭에,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삶을 대충대충 보낼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쏟아부어 노력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27분 44초.
5km를 주파한 최고 기록이라고 gps앱이 축하를 건넸다.
두 시 반이다.
창밖에는 다시 비가 거세게 쏟아지고 있다.
달리는 동안 작게 깨달은 바가 있어 팔을 뻗어 강물 위를 떠가는 잎사귀를 건져보았다.
오늘 밤은 잠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