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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5. 2015

#87 임창용이 가르쳐 준 성공에 닿는 네 가지 방법

단 1년의 시간이 지금의 그를 만들다

임창용 선수에 대해서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나를 잘라준 김성근 감독님께>라는 글입니다. 야구팬이라면 모를 리가 없고, 야구에 깨끗이 관심이 없다면 알 리가 없겠지만 짧게 말하면, 임창용은 최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루키' 투수입니다. 박찬호, 류현진이야 신문 1면에서도 크게 다루니까 야구 문외한이라도 어떻게든 알게 되지만 임창용을 모르는 사람은 제법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의 보직은 등판 일자가 정해진 선발투수가 아니라 경기 중간에 잠깐 나오는 '셋업맨'이니까요. 


루키는 루키인데, 임창용은 좀 다른 루키입니다. 메이저리그에 첫 등판한 나이가 37세. 소속팀에서는 역사상 2번째 최고령 루키라고 합니다. 임창용도  '여기까지 오는데 30년이 걸렸다'고 말했네요. 그는 사실 한국에서 최고의 마무리 투수였습니다. 한국 리그에서 정상을 찍은 후 우리보다 한 수 위인 일본 야구에 도전했었지요. 팔꿈치 수술도 받았고, 나이도 있고 힘들 것이다 아니다 말이 많았는데, 자존심은 깨끗이 버린 채 헐값으로 건너가더니 오로지 실력만으로 다시 한 번 최고가 되었습니다. 


그런 후에 또다시 미국행 도전. 드디어 "37세"에 "루키"가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임창용을 꽤 좋아했었습니다. 그는 사이드암 투수거든요. 팔을 옆으로 뻗어서 던지는 투수라는 뜻입니다. '뱀직구'라 불리는 그의 공은 160km/h을 찍을 정도로 강속구였습니다. 땅바닥을 스치듯이 샤아악 던진 공이 포수의 미트에 그대로 "팡"하고 꽂혔습니다. 온 세상의 꾸벅꾸벅 졸음을 단박에 깨울 수 있는 그런 경쾌한 "팡" 소리였지요. 


그런 그가, 메이저리그 등판이라는 오랜 꿈을 이뤄내서 다시 세간에 주목을 받고 있는 그가 '나를 잘라준' 김성근 감독님께, 라니요. 


역시, 야구팬이라면 모를 리가 없고 야구에 깨끗이 관심이 없다면 알 리가 없겠지만 김성근 감독은 손꼽히는 명장입니다. 그것도 신생팀과 무명 선수들을 길러 최고로 만들어내는 명장 말입니다. 


스포츠 만화에는 흔한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항상 꼴찌만 하던 팀이 호랑이 감독을 만나 혹독한 훈련 끝에 감동적인 우승을 차지한다. 뭐 뻔한 줄거리지요. 김성근 감독이 딱 그런 만화에 나오는 호랑이 감독입니다. 

우선 기사부터 먼저 옮기겠습니다. 그리 길지는 않아요.

야구를 모르는 분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마이너리그를 돌아다닐 때 그렇게 덥더니 이젠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붑니다. 2013 시즌, 그러니까 제 프로 19번째 시즌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제 20번째 시즌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더 험한 경쟁이 펼쳐지겠지요. 


제 프로생활이 성공적이라거나 특별하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꽤 오래 했다는 것, 꽤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건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위기가 있었죠. 사실 전 19년 전에 '잘린' 선수입니다. 진흥고 3학년 때, 그러니까 해태 지명을 받고 난 뒤인 1994년 12월이었습니다. 해태 유니폼을 입은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였죠. 


선배들은 쉬는 기간이었고 신인들은 광주구장에 나와 훈련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강제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가끔 훈련을 빼먹기도 했습니다. 참 놀고 싶을 나이였으니까요. 어느 날 김성근 2군 감독님이 절 불렀습니다. 


"야, 집에 가." 


큰 일 났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에 야단이라도 한 번 맞았으면 땡땡이를 치지 않았을 텐데 김성근 감독님은 조용히 절 지켜보기만 하시더니 단번에 자르시겠다는 겁니다. 제가 잘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죠. "네"라고 대답하고 일단 돌아갔습니다. 야구를 안 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놀고 싶은 마음도 싹 사라졌죠.  야구하다가 가끔 놀아야 재밌지, 놀기만 해선 안 될 일이죠.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그날 저녁 김성근 감독님을 찾아가 용서를 빌었습니다. 완고하실 줄만 알았던 김성근 감독님은 "1년만 참고 나랑 야구하자"라고 하시더군요. "네"라고 또 대답했습니다.


김성근 감독님의 훈련량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요즘도 훈련을 많이 시키신다고 하는데 당시엔 오죽했을까요. 김성근 감독님은 별로 특출하지도 않고 비쩍 마르기 까지 한 저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새벽부터 죽어라 뛰고, 아침 먹고 또 체력 훈련하고, 점심 먹고, 공 던지고, 저녁 먹고 섀도 피칭하고⋯. 힘들어서 말 할 기운도 없었습니다. 밤에는 지루할까 봐 배드민턴 라켓으로 섀도 피칭을 시키셨는데요. 피칭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요즘엔 배드민턴 라켓을 이용하는 게 이색 훈련으로 소개되지만 김성근 감독님은 19년 전에 19세 투수에게 그걸 시키셨죠. 


밥도 엄청 먹게 하셨습니다. 그때 제 체중이 70kg도 되지 않았거든요. 점심 때 삼겹살 3인 분과 곱창전골, 밥 두 공기를 먹게 했습니다. 지금 식사량의 두세 배 정도였죠. 그렇게 먹은 덕분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하고도 한 달 만에 6kg가 쪘습니다. 몸이 달라지는 걸 느꼈고, 공도 빨라지더군요. 죽어라 하니까 살 길이 보였습니다. 2군에서 보낸 6개월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제 프로 19년 생활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몸을 만들었고, 공을 만들었고, 자신감을 키웠으니까요. 당시에 만든 체중 80kg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95년을 그럭저럭 보냈다면 어쩌면 전 진작 야구를 그만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야구를 할 수 있는 건 그때 '밑천'을 잘 만든 덕분입니다. 후배들에게도 기회가 있으면 말합니다. 젊을 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라고요. 철없던 어린 시절 김성근 감독님을 만난 건 제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김성근 감독님의 지옥훈련을 이겨낸 뒤에야 제 것이 생겼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해보고 그 다음에 제 스타일을 알게 된 것이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무거운 것 들지 않고, 가벼운 것을 여러 번 드는 것도 데뷔 후 3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제게는 근력보다 회전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제 공의 스피드는 회전력에서 나오거든요. 무릎 회전부터 시작해서 허리 회전, 팔꿈치 회전으로 이어지는 힘을 모아서 던집니다. 그래서 제겐 유연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훈련은 몰라도 스트레칭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이유입니다.


제가 일본에 진출했을 때 김성근 감독님이 "이젠 술 먹지 말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기는 했어도 원래 술은 잘 못하는데 말이죠. 이번에 제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갔다고 하니 김성근 감독님이 제 에이전트에게 "창용이, 그 나이에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하네요. 과분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저를 강하게 키워주신 덕분입니다. 




이 기사에는 의미 있는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 빛나는 누군가가 되는 것, 세상에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는 법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줄여 말해 '성공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게다가 임창용 선수의 땀이 배어있는 짭짤한 힌트입니다. 이 책 저 책에서 짜깁기 한 '13가지 원칙'같은 것보다는 훨씬 성실한 힌트인 셈입니다. 유려하진 않을지라도 그라운드의 흙처럼 정직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임창용은 어떻게 해서 임창용이 되었을까요. 

첫째, 하고 싶어 하게 되다. 


야구팬들의 다른 글을 읽어보니 임창용은 고등학교 시절 놀기도 좋아하고, 이따금 지각과 땡땡이도 하는 그런 선수였다고 합니다. 재능은 있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백락만 알아볼 수 있는 천리마까지는 아니고, 성실로 똘똘 뭉친 캐릭터일리는 없지만 그래도 문제 선수라고 부를 정도로 방탕하진 않은, 보통 야구 선수였나 봅니다. 마치 우리들처럼 보통 사람이었다는 뜻이겠지요. 야구를 하는 한 편, 곶감 빼먹듯 훈련 빠지는 달달한 재미를 알고 있던 임창용에게 김성근 감독은 단호하게 이야기합니다. 


"야, 집에 가." 


경고를 준 것도 아니고, 야단을 친 것도 아니고, 잔소리를 한 것도 아니었지요. 단박에 감독은 임창용은 잘랐습니다. 고수는 지지부진하지 않습니다. '이리 와서 한 숟가락만 먹어라.'든지 '영어 숙제만 마저 하면 게임하게 해줄게.'라든지. 응석받이 메이커인 아이 엄마식 타협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대학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경영학과 학생이었는데 한 번은 이 친구가 자기 이야기를 해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쳤는데, 학교 공부에 흥미가 뚝뚝 떨어지더랍니다. 이유를 따져보니 원인이 수학이었던 거예요. 수학이 어려워지고, 수학을 못 따라가게 되니 수업이 재미가 없어지고, 수학 공부는 점점 하기 싫어지고. 그런 이야기를 자기 부모님께 했더랍니다. 부모님 왈. 


그래,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이 친구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답니다. 그럼 부모님이 홈스쿨링을 시키거나, 대치동 학원가에서 좋은 강사를 붙여줬느냐. 그것도 아니에요. 그냥 내버려 두었답니다. 싫으면 하지 마라. 이 친구는 꼬박 1년을 쉬면서 읽고 싶은 책도 읽고, 동물원도 실컷 가고, 공원에서 달리기도 하고, 외국 배낭 여행도 다녀왔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더니, 슬금슬금 "수학, 그거 별 거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러면서 "공부, 다시 하고 싶은데."하는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는군요. 


그리고 2학년 2학기에 복학을 했습니다. 개 장수가 커다란 셰퍼트 목덜미도 확확 잡아챌 수 있는 것은 '개, 별거 아니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서워서 달달 떨면 절대로 '확' 잡아 끌 수 없지요. 비유는 좀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그 친구는 셰퍼트처럼 사납던 수학의 목을 '콱' 휘어잡았습니다. '공부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하니 서울대에 들어왔지만 사실 별로 힘든 줄 몰랐다고, 그 친구가 말하던 것이 생각나네요. 


김성근 감독의 불호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창용은 '야구 하고 싶다'와 '놀고 싶다'의 양쪽 마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평범한 선수였을 겁니다. "야, 집에 가." 한 마디로, 야구라는 한쪽 마을이 와르르 꺼져버리고 만 거죠. "야구" 마을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놀고 싶다" 마을이 달달해 보였던 것이지, "놀고 싶다" 마을만 있다면 그게 뭐 그리 재미있겠습니까. 


건강도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알고, 조강지처도 떠나보낸 후에야 중한 줄 안다고, 딱 야구를 못하게 된 순간 임창용은 정신이 번쩍 들었나 봅니다. "놀고 싶다"는 번뇌가 딱 끊기고 "야구 하고 싶다"만 정제된 소금처럼 순도 높게 남은 거죠. 


하고 싶어 하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항상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둘째, 연습, 연습, 연습. 양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지금 김성근은 독립리그 고양 원더스의 감독으로 있습니다. 독립리그는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되어 갈곳을 잃어버린 선수를 위해 만들어진 준프로급 리그입니다. 선수 조련의 대명사 김성근 감독의 저력은 오히려 거기서 빛나고 있는데요, 무려 11명의 선수가 고양 원더스에서 프로 리그로 승격되었어요. 최근에는 고양 원더스의 구단주 허민까지(?) 투수로 데뷔시켰으니 김성근의 지도력은 정말 엄지를 '차렷'시켜서 바짝 세워도 부족할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야구계에서 아웃사이더, 구단과의 잦은 불화로 여기저기를 전전하면서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모든 것을 말해주었던 김성근 감독. 그가 가진 리더십의 핵심은 바로, 강도 높은 훈련입니다. 조금 뻔한 단어인가요. 그럼 앞에 한 마디를 덧붙여도 좋겠습니다. 


엄. 청. 나. 게.


"새벽부터 죽어라 뛰고, 아침 먹고 또 체력 훈련하고, 점심 먹고, 공 던지고, 저녁 먹고 섀도 피칭하고⋯. 힘들어서 말 할 기운도 없었습니다." 


임창용은 김성근 감독 밑에서 혹독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먹고 자는 것 외에는 쉴 새 없이 자신을 몰아 부쳤지요. "1년만 나랑 참고 야구하자."는 말은 그런 뜻이었습니다. 저는 기사를 읽으면서 영화 '실미도'가 생각났습니다. 실미도에 모인 사람들은 온종일 뛰고 매달리고 샌드백을 쳐대고, 그리고 엄청나게 먹어댑니다. 식판에 산처럼 쌓여있던 밥과 고기 기억하시나요. 큼지막한 닭백숙이 각자 식판 위에 한 마리씩 척척 얹혀있던 장면 말입니다. 임창용도 필시 그랬을 것입니다. 엄청나게 먹고, 엄청나게 운동하고, 엄청난 것이 엄청나게 모여 엄청난 임창용이 되어갔지요. 


'하던 대로 하면 늘 같은 결과만 얻을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것을 원한다면, 다른 누군가가 되고자 한다면, 뜨듯 미지근하게 흘러가는 30분짜리 일일 드라마 같은 삶에서 벗어나 폭풍 감동과 스펙터클을 안겨주는 블록버스터 대작을 찍고자 하면, 우선 달라져야겠지요. 달라져야 하는데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우선은 양입니다. 맞아요, 일단 양이지요. 


수학 통계에 보면 '대수의 법칙'이 있습니다. '표본의 관측대상의 수가  늘어날수록 통계적 추정치의 정밀도가 향상되는 법칙'이라고 사전에 나와있는데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주사위를 여섯 번 던져 3의 눈이 한 번 나오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주사위를 6만 번쯤 던지면 3의 눈은 대략 1만 번쯤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아주 많은 시도 앞에서는 상당히 정직해진다, 이를테면 그런 이야기지요.  


<앵무새 죽이기> 딱 한 편 만으로 문단의 옥좌에 오른 하퍼 리 같은 사람도 있지만, 130권을 말 그대로 찍어낸 얼 스탠리 가드너나  40권을 쏟아낸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통 사람인' 우리가 따라할 모델이 아닐까요. 우연과 기적에 기대기에는 인생의 변덕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많이 해야죠. 대수의 법칙을 따라, 많이 연습하고 계속 시도해서 성공을 손에 움켜쥐어야 합니다. 말콤그래드웰을 따라 1만 시간을 찍든, 선방의  스님들처럼 하루 16시간 용맹정진을 하든, 연습의 핵심은 양입니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연습을 하면 피곤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피곤하지 않으면 '엄청난'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하던 대로'에서 벗어나면 근육은 젖산을 낙엽처럼 긁어모으고, 몸은 '나 죽는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며, 마음은 '쉬엄쉬엄 가야 길게  가지.'라고 유혹할 것입니다. 다른 것을 얻고자 하면 이겨내야죠. '시끄럽다. 저리 꺼지지 못할까.'라고 단호하게 소리치고 의지대로 밀고 나가야 근육도 몸도 마음도 '아아, 어쩔 수 없는 것인가.'하고 체념하고 완전히 백기를 들 테니까요. 


그 이후에 우리의 사업계획을 원안대로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살 길이 보인다. 


연습 '양'의 강조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공자도 이야기했는데, 그럼 공자가 틀렸다는 말이냐. 고 버럭 할 수도 있지요. 맞습니다. 즐기는 자가 위입니다. 억지로 힘써서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웬만하면'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엄청나게 연습을 하면서 어떻게 즐기라는 말이냐,라는 의문이 가능합니다. 다들 사디스트라도 되라는 뜻이냐, 또 그놈의  자기암시인가,라고 인상을 찌푸릴 수도 있겠지요. 


여기, 임창용의 말에 그 답이 있습니다. 


"몸이 달라지는 걸 느꼈고, 공도 빨라지더군요.
죽어라 하니까 살 길이 보였습니다." 


명상의 일종인 호흡 수련에 편향증험(片餉證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향'은 '말린 식사 거리'를 의미합니다. 건빵이나 누룽지 같은 것이겠죠. '편'은 알다시피 조각이라는 뜻이고. '증험'은 실제로 효험을 경험해보는 것을 말합니다. 누룽지 조각을 실제로 한 입 먹어서 직접 그 맛을 체험해보는 것을 뜻합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고 하죠. 백 날 보는 것 보다는 한 번 체험해보는 것이 낫습니다. 즉, 편향증험은 직접 약간의 효험을 맛보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호흡수련에도 소주천이니 대주천이니 하는 수행의 단계가 있다고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에게는 그저 방석 위에 꼼짝없이 앉아 가려움 내지 관절의 통증과 싸우는 것에 불과합니다. '좋다, 좋다'고 아무리 남들이 이야기해도 정말인지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런 초보자가 어느 순간이 되면 깊은 호흡이 뚫리는 상쾌함을 아주 조금 맛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편향증험이에요. 자기가 직접 약간의 결과를 체험하면 그 다음에는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하기 마련이지요. 


혹독한 연습을 하던 임창용도 곧 누룽지 한 조각을 맛보게 됩니다. 몸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공도 빨라졌다. 연습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결과가 있느냐, 정말 나아지고 있느냐. 그런 점이죠. 공부도,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할 수 있다는 백 마디 격려와 달착지근한 간식 접시보다 힘을 주는 것은 '나도 하니까 되더라.'는 경험입니다. 누룽지를 맛보면 저절로 의욕이 돋습니다. 


공자가 말한 '즐기는 자'는 이것입니다. 


불금에 클럽에서 '붐붐치치'하는 즐거움이나 RPG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는 즐거움을 말한 것이 아닙니다. 공부든 일이든 운동이든, '나는 이게 재미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을 가만히 보세요. 대충하면서 재미있다는 사람 없습니다. 싸이의 노랫말처럼 '즐기는 네가 챔피언'이지만, 즐길 수 있으려면 누룽지 맛을 봐야 하고, 누룽지 맛을 보려면 강도 높게 노력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죠. 재미를 느끼려면 꾹 참고 죽어라 힘써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비밀이자 매력이 아닐는지요. 

넷째, 자기 스타일을 알다. 


최고의 야구 선수들을 가만히 보십시다. 요즘은 메이저리그 중계도 많이 하니까 ESPN을 틀어놓고 순서대로 나오는 타자들을 보세요.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지만 사람마다 자세는 다 다릅니다. 방망이를 스윙하는 모습도 제각각 다르죠. 


야구만 그럴까요. 학창시절에 법대 도서관을 자주 다녔습니다. 법대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은 전부 법대생이니까 다들 고등학교 때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조금씩 달랐습니다. 노트북에 동영상 강의를 늘어놓고 형형색색의 펜과 포스트잇을 사용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깨알 같은 필기 노트를 보물단지처럼 활용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노트에 쏟은 정성은 보물 저리 가라 싶기도 했네요. 그런가 하면 스티브 잡스처럼 심플하게 공부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습니다. 변호사를 하고 있는 제 친구 한 명은 오로지 독서대와 교과서, 1000원짜리 제도 샤프와 15cm 자만 가지고 공부하기도 했지요. 최고의 학생이라도 다들 다릅니다. 자기에게 잘 맞는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그것이 자기 스타일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자기가 최고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나 오전에 소설을 썼고, 반대로 이외수는 밤을 꼴딱 새운 후에 동트는 하늘을 보았다고 하죠. 서머싯 몸은 오후 1시 이후에는 글을 쓰지 않았지만, 다니엘 스틸은 12시간이고 15시간이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온종일 타자기를 두들겼습니다.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은 절대로 한 번에 찾을 수 없습니다. 충분한 비용을 지불해야 겨우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비용을 시행착오라고 부릅니다. 임창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옥훈련을 이겨낸 뒤에야 제 것이 생겼습니다. 시키는 대로 다 해보고 그 다음에 제 스타일을 알게 된 것이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무거운 것 들지 않고, 가벼운 것을 여러 번 드는 것도 데뷔 후 3년이 지나서였습니다. 제게는 근력보다 회전력이 중요하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제 공의 스피드는 회전력에서 나오거든요." 


검도에 수파리(守破離)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발전의 단계를 요약한 말입니다. 


'수'는 지키는 단계입니다.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검도의 교과서를 철저히 체득하는 단계입니다. 무엇이든 기초가 튼튼해야  오래갈 수 있는 법이지요. 다음은 '파', 즉 깨뜨리는 단계입니다. 교과서보다 더 나은 길은 없는지, 가르침이 자신에게도 정확히 유효한 것인지 의심을 가지고 이리저리 부딪혀 보는 거죠. 그래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길을 찾아냅니다. 마지막으로 '리'입니다. 깨달음을 가지고 스승을 떠나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과외를 할 때 부모님들이 빠짐없이 당부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 공부하는 방법 좀 가르쳐 주세요." 영어를 맡건, 수학을 가르치건 간에 부모님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공부 방법'의 전수인 셈이지요. 글쎄요. 구태여 '리'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것이긴 합니다만 저도 저 나름의 스타일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그것이 캡슐에 넣어 물과 함께 물과 함께 꼴깍 삼키면 즉각 효과가 나타나는 해열제 같은 것이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점에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있습니다. 


공부 방법에 있어서 선생이 가르쳐줄 수 있는 부분은 사실 '수'의 영역입니다. 집중해라,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마라, 모의고사는 오전/오후/저녁 하루 세 번씩 강행군해라. 어떤가요, '지옥 훈련' 비슷하지 않나요. 그 과정을 버텨내면서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이 '파'입니다. 자기 스타일을 찾는 것. 임창용이 이야기한 '제 것'은 그렇게 얻는 것이지요. 


성공하려면 자신이 가진 최고의 생산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최고의 생산성은 자기 스타일을 알아야 가능한 거고요. 자기 스타일을 알려면, '지옥 훈련'을 거쳐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또다시 '연습'이 되는군요. 

임창용의 기사를 읽다 '옳커니'하고 무릎을 탁 치는 부분이 있어 글로 적다 보니 제법 길어졌습니다.

임창용이 직접 증명한 성공에 이르는 길입니다. 요약하면 길지 않습니다.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엄청난 양의 연습을 견뎌내면, 살 길이 보인다.

그 길을 쫓다 보면 자기 스타일을 얻는다.

성공으로 가는 자신의 방법은 그렇게 깨닫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인생을 전환할 수 있는 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임창용은 19년 전에 고생한 그 1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밑천'이 그 1년의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임창용은 이렇게 "임창용"이 되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은 어떻게 "당신"이 되겠습니까.





기사 원문은 네이버 스포츠입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mlb&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3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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