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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4. 2015

#86 지하철에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맨 끝 칸이다. 


아침 일곱 시 반에 2호선 신림역에 가면 기관실 벽에 등을 기댈 정도의 여유는 있다. 6호선 합정역까지 대략 20분. 나는 보통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양 손으로 책을 들면 본의 아니게 승객들을 향해 통통한 내 배를 정면으로 드러내 놓는 자세가 된다. 나는 마네킹처럼 늘씬하지도 않고 아이돌처럼 옷을 예쁘게 입는 사람도 아니다. 거기다 배까지 우유식빵마냥 포동포동하게 부풀어 있으니 어디 구석에 서서 유실물처럼 조용히 타고 가다 내리는 것이 에티켓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늘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만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기에 제일 안정된 자세이기 때문이다. 등을 벽에 대면 든든하다. 지하철이 갑자기 흔들려도 '앗' 하고 중심을 잃어 옆 자리 아가씨의 어깨에 나무토막처럼 와르르 쓰러질 염려도 없다. 



오늘도 똑같은 모습으로 책을 읽으면서 출근을 했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이다. 무려 3100원에 구한 책. 카페에서 파는 '오늘의 커피' 한 잔 값도 안 된다. 


책을 읽는데 저만치 서 있는 여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자의 시선이란 꽤 강력하다. 책을 집중해서 보더라도 그런 것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 법이다.


그녀의 시선은 졸린 금붕어처럼 이리저리 유영하다 나를 향해 놀란 토끼마냥 멈추었다. 

‘흠칫.’ 

도둑질을 들킨 여중생처럼 황급히 시선을 거두더니, 잠시 후 닌자가 은밀히 표적을 확인하듯 내 얼굴을 다시 한 번 보았다. 

‘쓰윽.’


이건 뭐지. 내 얼굴이 멀끔해서 보았을 리는 없다. 나를 아는 사람도 분명 아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내 이상형’ 따위의 핑크빛 모멘트일 가능성도 결코 없다. ‘시선’과 ‘쓰윽’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던 것은 분명 ‘흠칫’의 기운이었다. 



합정역에서 내려 6호선으로 갈아탔다. 역시 나는 맨 끝 칸으로 갔다. "꽁치구이는 꼬리를 좋아하고, 김밥도 꽁다리부터 집으며, 노래방에서 마지막 곡은 내가 부르는 데다, 뷔페를 가면 맨 끝까지 젓가락을 드는 편입니다" 하고 말하면 나름대로 확고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사람이구만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아까도 말했듯 단지 그저 책 읽기에 끝 칸이 좋아서  일뿐이다.  


하루키의 수필집을 이어서 읽었다. 그런데 ‘이런!’ 또 누군가가 나를 본다. 같은 패턴이다. 


시선-흠칫-쓰윽. 


역시 또 여자다. 불안해졌다. 머리카락에 밥알이 붙었나.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나는 오늘 아침에도 석류향 폼클렌징으로 열심히 세수를 했다. 마하 3 면도기도 잊지 않았다. 배가 나오고 소탈하긴 해도 지저분한 사람은 아니다. 


푸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던 생각이 났다. 우리 집 푸들은 아주 귀엽다. 갈색 털로 가득한 것이 품에 안으면 거품이 폭신폭신한 카푸치노 같다. 밖에 나가면 여지없이 행인들의 시선을 끈다. 

“아유! 인형이다 인형.” 

푸들을 향한 칭찬이지만 내 귀에는 나를 칭찬하는 것으로 들린다. 

“아유! 저 주인 봐봐. 인형이다 인형.” 하고 동시 통역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푸들을 까르르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개 발랄하고 경쾌한 아가씨들이다. 푸들 덕에 나에 대한 호감도도 상승한다. 


하지만 푸들 산책이 항상 이렇게 순정만화처럼 아리땁지는 않다.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은 엄연히 현실의 일이다. 푸들을 산책시키는 주요 이유가 시원하게 변을 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푸들은 볼 일을 준비할 때 아주 요란하게 힘을 준다. 허리를 말굽자석처럼 잔뜩 구부리고, 뜀틀 종목의 체조 선수처럼 앞발로만 몸을 지탱하며, 같은 자리를 빙빙빙 돌면서 ‘나 여기에 싼다. 바로 지금 싼다’ 하고 광고를 해댄다. 


그러면서 다크 초콜릿처럼 진한 가래떡을 몇 개씩 쭉쭉 뽑아내는데 양은 또 얼마나 많은지. 3kg짜리 강아지의 그것이 사람 저리 가라다. 그러는 동안 나는 쭈그려 앉아 비닐봉지와 휴지를 들고 모락모락 따끈한 냄새를 맡아가며 손가락으로 가래떡을 하나하나 집는다. 행인의 시선이 ‘흠칫’ 하고 뒤통수에 꽂히면 그게 그렇게 처량할 수 없다. 


오늘 지하철의 '시선-흠칫-쓰윽'은 꼭 그 느낌이다. 

왜지. 왜 나를 저렇게 쳐다보지. 



"이번 역은 불광, 불광역입니다."

내려야 하는 역이다. 찝찝한 아침이지만 나는 즐겁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 직장인이니까, 툭툭 털고 일어선다. 하루키 책도 이만 닫는다. 


그때 책 표지를 보았다. 

아차. 

제목이 눈을 비집고 들어온다. 정신이 아찔하다.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얼굴이 활화산처럼 달아올랐다. 수필 모음집일 뿐이니 제목은 보지 않았다. 하루키 수필집의 제목이 대개 길고 요상한 탓이기도 하거니와 서가에 40권 넘게 꽂혀있는 하루키 책 중에서 아무거나 들고 나온 탓이다. 목요일 아침 여덟 시의 지하철에서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따위를 읽고 있는 배 나온 남자를 보고 그녀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녀들은 왜 '흠칫' 하고 놀랐으며, 내 얼굴에서 도대체 무엇을 '쓰윽‘ 확인했다는 말인가. 


책 표지에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큰 글씨로 써놓기라도 하지. 그래야 '아, 하루키‘ 하면서 안심이라도 했을 텐데. 혹시나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를 자기계발서로 생각하면 어쩌지. 


모르겠다. 

Obladi Oblada, Life goes on. 

그런 날도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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