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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5. 2015

#90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욱하는 성격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행복한 골퍼'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슬럼프를 벗어났다는 박인비 선수의 말에 생각을 이어 본다. 


카페를 운영할 때의 일이다. 오가는 길에 있는 작은 테이크아웃 가게라 한두 잔을 주문하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따금씩 '단체 주문' 손님이 있었다. 점심 식사 이후에 커피를 사러 온 인근의 직장인이나, 동아리 선배가 후배들에게 '쏘는' 경우였다. 네 잔 이상의 주문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내 머리 속에서는 '잭팟'이 팡팡 터졌다. 개당 200원짜리 캐리어를 꺼내고, 컵들을 늘어놓고, 네 개의 에스프레소 샷을 받으면서 스팀 우유를 준비했다. 끝판왕과 싸우는 오락실의 어린이처럼 손가락 끝이 찌릿찌릿해졌다. 


단체 손님을 잘 모셔야 가게가 흥한다는 말을 여기 저기서 들었다. 멀티플레이가 실수 없이, 그리고 신속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내 몸은 숙련된 기술공처럼 정확하게 움직였다. '적진으로 돌격' 명령을 받은 보병처럼 아드레날린 수치가 확확 늘어났다. 

어느 오전으로 기억한다. 


"여기 라테 네 잔이요." 


어떤 학생의 목소리. 맞다. 기억한다. 네 잔의 주문이었다.  2500원짜리 라테 네 잔 값으로 학생은 빳빳한 만원 한 장을 내밀었다. 여느 때처럼 '잭팟'이 터졌다. 카지노에서 7.7.7. 쓰리쎄븐을 맞춘 겜블러처럼, 은빛 코인이 좌르르 쏟아지는 소리가 머리 속에서 요란했다. 우레 같은 팡파르와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나는 '칙칙' 우유를 스팀하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나는, '단체 주문'이 들어왔을 때 느끼는 흥분이, 사람들이 말하는 '대박'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CEO가 회사의 명줄을 건 커다란 계약을 따냈을 때, 정치인이 자기 이름 위에 '당선 유력'의 무궁화가 붙어있는 것을 확인할 때, 합격자 발표날에 고시생의 폰에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떴을 때, 그들이 느낄 '대박'의 희열이 내 동맥을 타고 핑핑 돌고 있었다. 


불과, 라테 네 잔 때문이었다. 


사람이란 참 재미있지 아니한가, 는 생각이 들었다. 드물게 들어오는 단체 주문이라 하지만, 그래 봤자 만원의 매출이다. 냉정하게 금액만 보면, '잭팟'이라고 온 신경계가 요란을 떨 정도는 도저히 아니다. 그런데, 우유를 스팀 하는 그 순간, 나는 마치 중동에서 선박 수주를 따낸 정주영 회장처럼 흥분했다. 분명히 그랬다.


라테 네 잔을 한 손에 들고 가는 학생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머리 속에 있는 카지노 지배인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어딘가에 다음과 같은 매뉴얼을 마련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단체 주문이 들어왔을 때 행동 요령. 

첫째, 단체 주문은 종류의 구분 없이 네 잔 이상을 말한다. 

둘째, 상황 발생시 큰 소리로 알려 신경계의 관심을 일제히 유도한다. 

셋째, 지체 없이 팡파르를 터뜨리고 색종이 조각을 화려하게 날린다. 도파민 분비를 잊지 말 것.

넷째, 숙련된 베테랑처럼 신속, 정확하게 단체 주문을 처리한다. 


차분하게 곱씹어 보았다. 왜 아드레날린은 고작 라테 네 잔 주문에 소방호스처럼 뿜어졌나. 


이유를 깨달았다. 답은 내가 카페 주인이라는 데 있었다. 내가 월세를 내고, 원재료비를 결제하고, 세금을 처리하는 자영업자였기 때문에 내 머리 속의 지배인은 수지타산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통장 잔고는 조금씩 줄어들고, 무의식 속의 지배인은 성실하게도 매출 증대에 온 정신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단체 주문이 들어오면 폭발적으로 흥분하도록 매뉴얼이 짜져 있었다. 


단체주문 = 잭팟. 

아싸, 가오리. 


그것은 명확하게도 내가 위치한 포지션의 문제였다. 그리고 포지션이란 결국 무엇을 목표로 설정하느냐, 하는 문제다. 


내가 운영한 PROJECT 141이 재활용센터였다면, 나는 누가 갓 내다 버린 동원 참치 선물 박스에 환호했을지도 모른다. PROJECT 141이 고서점이었다면 나는 다락방에서 찾아낸 셰익스피어 필사본을 보고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PROJECT 141이 통일 운동하는 시민단체였다면 나는 '[속보] 북, 정상 회담 전격 제안'이란 네이버 뉴스에 먹던 밥을 팽개치고 벌떡 일어섰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틀림없이 목표 설정의 문제다. 대박-잭팟과 무관심-좌절을 가르는 기준선은 목표 설정의 좌표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 


목표를 설정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어떤 효력이 발생한다. 


피드백이란 메커니즘을 통해서다. 그것이 임의로 설정한 무의미한 목표일지라도 결과는 같다.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보면 목표 설정의 효과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저 앞에 쓰레기통을 놓는다. 종이 한 장을 꾸깃꾸깃 접어 공처럼 만든다. 쓰레기통을 겨냥하여 종이 공을 던진다. 툭. 쓰레기통 모서리에 부딪히더니 골인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다. 젠장. 다시 한 번 시도해보자. 한쪽 눈을 감고 잘 겨냥해서 신중하게 던진다. 하나 두울 세엣. 꾸깃꾸깃 뭉친 종이 공은 크고 아름다운 호를 그리며 쓰레기통을 향해 날아간다. 쏘옥. 깨끗하게 들어간다. 농구로 치면 CLEAN SHOT이다. 미세하게 기분이 상쾌하다. 적어도 툭, 떨어지는 것보다는 느낌이 괜찮다. 차이를 잘 모르겠다면 몇 번 더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툭 아니면 쏘옥을 몇 차례 더 겪어보면 그 두 기분을 양배추와 양상추처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종이를 던지는 것은 애초에 특별한 의미가 없는 행위였다. 하지만 ‘쓰레기통에 종이를 넣는다’고 목표를 설정한 순간, 종이를 던지는 행동은 우리에게 의미를 갖는다. 툭-과 쏘옥-은 짝 짓기 프로그램에서 만난 천생연분처럼 젠장-과 상쾌-라는 두 가지 피드백과 일대일 대응을 한다. 피드백을 받은 사람은 CEO에게 격려를 들은 신입사원처럼, 보다 커진 열정과 집중력으로 다음 시도에 임한다. 쏘옥-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아주 조금일지라도. 확실히. 

다시 박인비 선수의 '행복한 골퍼'로 돌아와 보자. 


대박-잭팟과 무관심-좌절을 가르는 기준선이 목표의 좌표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행복한 골퍼', '행복한 엄마', '행복한 목수' 그 무엇으로 변용되건 간에 '행복'이 삶의 열쇠라는 존 레넌의 생각에 동의한다면, '행복한 사람'이 되겠노라고 목표를 세우는 일은 상당히 적절하다. 체중감량을 위해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기로 한 아가씨처럼 현명한 선택이다. 목표를 설정하면 피드백이 발생하고, 긍정적 강화의 신호에 힘입어 목표를 향한 움직임은 점점 더 큰 추진력을 갖는다. 가속도가 붙은 모터보트는 목적지를 향해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행복’이라는 섬에 말이다. 


나 역시 ‘행복한 OO”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결심’이라고 표현하니, 이마에 띠라도 두른 것처럼 강경한 무엇인가를 ‘굳게’ 다짐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가진 자제력은 수시로 새기는 ‘결심’을 지속적으로  서포트할 수 있을 만큼 크지 않다. 그저 ‘음, 행복한 OO가 되는 것을 나도 목표로 하면 좋겠군.’하고 중얼중얼 거린 정도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의식적이고 분명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태도 같은 것은 있다. 그런 것조차 없다면 '목표를 세웠다.'고 말하기 곤란하다. 다만  ‘여기 이 약속을 지킨다는데 내가 가진 돈 전부와 손 모가지 하나를 건다’는 식의 확고함은 없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법적인 구속력은 없는 MOU 정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으니, 우리 앞으로 신경 써 봅시다.’하는 느낌으로 나 자신과 양해각서를 썼다고나 할까.

그런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것만으로도 당장 두 가지 쓸모가 있었다. 물론 이 역시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니 ‘이런 장점이 분명히 있습니다’하고 일반화할 생각은 없다. 그저 ‘라면을 끓일 때는 말린 표고버섯이 좋더군요.’ 하듯이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내 경험이다.


첫째로는 여러 가지 녀석들, 이를테면 부드러운 마시멜로우, 사람 가득 찬 지하철, 운동 갈까 말까 하는 고민, 삶에서 부딪히는 잡다한 많은 것들에 ‘행복한 OO’라는 잣대를 한 번씩 대보게 된다는 점이다. 


솜씨 좋은 양장점의 장인이 신체 치수를 재듯이. ‘오늘 더운데 운동 갈까 말까’하는 생각이 일면, 나도 모르게(혹은 약간은 의식적으로) 슬쩍 줄자를 가져다 댄다. ‘행복한 OO가 되기로 했잖아. 어느 편이 낫겠어?” 매번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는 그런 편이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고양이 꼬리처럼 스치는 줄자가 제법 도움이 된다. 두 개 먹으려고 꺼냈던 몽쉘통통을 하나만 먹는다던가, 꽉 찬 지하철에서 짜증내기보다는 영어 리스닝에 집중하는 편을 택한다던가 하는 식이다. 항상, 은 절대로 아닐지라도 분명, 도움이 된다. 블로그 글 중 몇몇 개는 줄자 덕분에 '아, 자버리고 싶어'나 '불금인데 치맥?'같은 유혹을 이기고 쓸 수도 있었다.


둘째로는 이마에 대는 얼음주머니처럼, 스트레스가 로켓처럼 치밀어 오를 때 cooling down 시키는 응급처치로 제법 괜찮다는 점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종류도, 양도 대단히 많다. 스트레스 발생을 일제히  컨트롤하는 비상대책본부 같은 곳에 취직한다면 일 년 내내 연차 휴가는 꿈도 꾸지 못할지도 모른다. 직장 일, 학업과 진로, 가족 갈등처럼 클래식한 주제들이 많은데, 예를 들어 흔히 겪는 약속 펑크 같은 것을 생각해보자. 


오랜만에 여자친구와 주말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이번 주는 내내 프로젝트다 뭐다 해서 정신없이 바빴다. 불금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라, 던 팀장의 엄포 때문에 금요일 밤도 새벽이 가까워서야 퇴근했다. 토요일 출근의 압박을 반쯤은 '될 대로 되라지'하는 심정으로 애써 무시했다. 대신 월요일부터 또 폭주기관차처럼 일해야 할 것이 뻔하다. 


여자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약속이 있는 날은 보통  오전쯤에 '이따가 보아' 하는 식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꼼꼼한 성격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죽은 듯 쓰러져 자기 바빠 그럴 새가 없었다. 뭐, 시간과 장소도 정한 거니까 괜찮겠지. 눈을 떴다. 해는 이미 중천이다. 자면서 알람을 눌렀나 보다. 조금 더 늦었으면 약속 시간을 맞추지 못할 뻔 했다. 폰에는 여자친구의 연락은 없었다. 


씻고 나가면서 전화하자, 생각한다.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옷을 입는다. 어디더라, 강남역 8번 출구였지. 지하철을 탄다. 다행히 늦지는 않을 것 같다. 카톡을 한다. '지금 가고 있는 중. 오고 이써? *^^*' 답이 없다. 수신확인도 안 한다. '자기야 나 다음 역 강남' 역시 답이 없다.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청나게 사람이 많다. 꾸역꾸역 앞 사람의 엉덩이와 뒷 사람의 얼굴 사이에 샌드위치 햄 마냥 끼어서 계단을 오른다. 숨이 턱턱 막힌다. 8번 출구를 둘러봐도 여자친구는 안 보인다. 전화를 건다. 수신음이 울린다. 딸깍. 한참이 지나 전화를 받는다. '나 강남 도착했는데 자기 어디야?' 여자친구 음성이 마른 파뿌리처럼 부시시하다. 


'으응? 나 깜빡 잊었네. 자고 있었어.'


조금 전에 그 카지노 지배인이 매뉴얼을 들고 나타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1번, 화를 벌컥 낸다. 

2번, '무슨 일 있었어?'라고 사정을 확인한 후에 화를 벌컥 낸다. 

3번, '괜찮아? 혹시 어디 아파?'하고 불가역적인 다른 이유는 없는지 알아본 후 화를 벌컥 낸다. 


이런 경우에 '행복한 OO'가 되기로 한 목표를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매뉴얼에는 없는 4번을 떠올릴 여유가 생긴다. 이를테면 '아 그래? 그럼 천천히 나와. 나 근처에서 옷 하나 보고 있을게. 안 그래도 모자 하나 사려 했거든.'같은 식이랄까. 그리고 가능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자아, 강남이다. 두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행복한 OO라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Three, Two, One. 점화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던 스트레스 로켓은 이렇게 숨을 돌린다. 



율곡 이이는 스무 살 때 지은 <자경문> 제일 첫 줄에 '성인이 되기를 목표로 삼는다'고 했다. 스무 살의 나이에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11개 조목을 만들면서 제 1 조목으로 '성인이 되자'고 한 것을 보면 율곡 이이도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겠구나 싶다. 


물론 <자경문>은 '라면에는 표고버섯'처럼 지키면 좋고 못 지켜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빠뜨리면 서운한, 그런 가벼운 의미일리는 없다. 내가 정한 '행복한 OO'보다는 훨씬 확고하고 진지한, 일종의 '결의'였으니까 율곡 이이 선생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스무 살의 <자경문>이 율곡 이이를 만들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면, 언젠가 율곡 이이처럼 훌륭하게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저 멀리 어딘가에 뜬구름처럼 있는 '행복'을 향해 꾸역꾸역 나아간다. 


요컨대, 방향은 맞다, 는 말이다. 


열심히 노를 저으면 누군가는 '행복한 골퍼'가 되어 NBC에 나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Imagine을 작곡하는 어른이 될 수도 있다. 적어도, 모처럼 만든 주말 약속을 대판 싸움으로 불질러버릴 위험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새로 산 모자를 패셔너블하게 쓰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꽃장사 트럭에서 핑크색 장미라도 서너 송이 사서, 미안한 표정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오는 여자친구에게 깜짝 선물로 내밀면 제법 괜찮은 토요일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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