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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15. 2015

#91 일상 속에서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

우리가 삶에서 누리는 대부분의 시간은 '일상'이다 

온통 박인비 선수 이야기다. 


메이저 대회 3 연속 우승. 63년 만의 대기록이라고 한다. 골프에 문외한인 나는, 박세리를 뛰어넘었다는 말에 대단한 기록이구나 하고 짐작한다. NBC <투데이쇼>니 CBS니 유명 방송에도 출연할 예정이라 들었다. 


눈길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인비천하'를 열어젖힌 박인비지만, 한때는 3년 정도 슬럼프를 겪었다고도 했다. 3년이면 긴 시간이다. 열아홉에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하고 천재 소녀로 주목받은 그녀이니 부진의 골은 더 깊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화려한 양지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었다고 기사는 말했다. 


멘탈 트레이너 인터뷰도 나왔다. 5년 전 박인비 선수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도 없'는 상태였다고 했다.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그녀는 멘탈 트레이닝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목표를 정했다고 한다. 


바로,  행복한 골퍼가 되는 것. 

며칠 전에 아래층 집이 이사를 갔다. 


검도 시합이 있던 토요일 아침이었다. 시합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편안히 늦잠을 즐길 토요일 아침, 문을 나서니 계단에 짐이 한 가득 이었다. 아래층 이사가 한창이었던 것이다. 마주칠 때마다 꼬박꼬박 인사도 하고, 시골에서 가져온 상추나 깻잎을 나눠주기도 하던 사인데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집을 사기 위해 대출받은 이자 갚기가 힘들어서 급매로 처리하고 나간 것이라 했다. 워낙 싸게 내놓아 매수인이 나타나기 전에 부동산에서 샀단다. 꽤 손해를 보고 나갔나 보다. 사정이 어려워서 이사 갈  수밖에 없었다고는 해도 여기가 쉬쉬 입단속해야 하는 씨족마을도 아니고, 인사 한 번 없이 도망치듯 토요일 아침에 사라지나 섭섭했다. 도시 인심이라 매정한 건가 싶었다.   


'그 집 사람들이 좀 유별나긴 했지' 뒤풀이처럼 이야기가 오갔다. 


하기사 구태여 부딪히지 않아서 그랬지 마음 상하는 일은 몇 번 있었다. 영화를 너무 시끄럽게 본다고 경고하는 포스트 잇을 문에 붙여두지 않나 (컴퓨터로 곰플레이어에 계란 만한 싸구려 스피커로 보는데 아래층까지 들릴 리가 있나. 안방에서 부모님도 잘 주무시는데), 밤 11시에 전화해서 내일 오전에 나가야 하니 앞에 있는 차를 '지금' 치워 놓아 달라 하지 않나 (우리는 새벽에 나간다고요) 아이들은 두두 다다 타조처럼 집안을 뛰어다니지, 아무튼 썩 유쾌한 이웃은 아니었다.  


사실 그 집에는 할아버지가 한 명 있었다. 항상 술에 취해 휘청휘청 걸어 다니고, 늘 주차장 옆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태우고, 건물 구석에서 노상방뇨도 했다. 아마 동네 사람 중 누구도 좋게 볼리 없는 그런 할아버지였다. 


한 번은 이 할아버지가 1층 계단에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계단에 피가 낭자했고, 얼굴 반쪽이 피범벅인 것을 보니 계단에서 미끄러져 머리가 깨진 것 같았다. 보는 순간 '죽었나?'하는 생각이 가리개 없는 스프링처럼 저절로 튀어나왔다. 황급히 내려가 시선을 보았다. 의식은 다름없었다. '사람 불러올게요.'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뭉텅이로 움켜쥐고 피가 흐르는 머리를 눌렀다. 3층으로 단박에 뛰어올라가 그 집 문을 부서져라 두드렸다. 


"여기 할아버지 쓰러져 있어요."


빼꼼 문이 열렸다. 왈칵 손잡이를 잡아당기니 타조 같은 아이들이 내다본다. 거실 안쪽에서 할머니 목소리가 난다. 


"으이구 으이구 죽어야지. 나가 죽어야지." 


응급차도 부르지 말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두루마기 휴지로 얼굴과 이마를 닦고, 피가 선명하게 솟는 자리를 대충 눌렀다. "할아버지 여기, 여기 잡고 있어요." 부축을 해서 3층까지 할아버지를 끌다시피 올려두었다. 타조 같은 아이들은 '피다 피'하면서 겅중겅중 뛰어다녔고, 할머니는 거실 안쪽에서 당신의 역할인 양 '으이구 죽어야지'를 반복했다. 


저녁 무렵에 가족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아래층 할아버지 있잖아. 낮에 계단에서 굴렀나 봐. 머리가 다 깨졌어." 저녁밥을 차리는 엄마가 콩나물을 무치는 손으로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 


"그 할아버지 몇 번 그랬어."

우리 집에는 베란다가 있다. 신축건물인데 공사할 때 신경을 못 썼는지, 베란다가 옥외로 그대로 드러난 개방형이었다. 그래서는 비도 들이치고 먼지도 드나들고, 오가는 새들도 '여기는 쉼터인가 보군'하며 앉았다 갈 정도니, 이래서야 사실 실외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베란다를 창문으로 덮는 공사를 했다. 새시 구조물 덕분에 베란다가 실내가 되었다. 다행히 집 안에 세탁기를 들일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빌라나 연립주택을 보면 많이들 하는 그런 공사였다.  


'이거 구청에서 뭐라고 하는 거니.' 


엄마가 다급한 목소리로 종이를 들이밀었다. 구청에서 날아온 시정명령이었다. '귀 가정 베란다의 구조물은 건축법상 불법이오니 철거하기 바란다'는 것이 요지였다. 알아보니 우리 빌라의 다른 집들도 줄줄이 명령서를 받았단다. 철거하지 않으면 몇 백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엄포도 똑같이 실려있었다. 


이 구석진 언덕에 있는 빌라 베란다를 누가 일일이 살펴보고 과태료를 매겼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구청의 수입을 늘리기 위해 공무원들이 날을 잡고 돌아다니며 대표 사례를 적발하고 다닌 건지, 헬기라도 떠다니며 항공 스냅 사진을 찍어 외벽에 덧댄 집들을 골라낸 건지 도대체 오리무중이었다. 


'저 자리를 창문으로 막지 않으면 집 안에 세탁기 들일 자리가 없다'는 항변은 구청에 먹혀들지 않았다. 결국 다섯 차례에 걸친 과태료를 납부한 후에 불법 건조물의 필수 불가결함을 용인받는 방향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애초에 집 살 때, 몇 백 더 준 것으로 치자'고 이웃끼리 마음을 다독였다. 

아래층 사람들이 이사를 간 다음날.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구청에 불법 건조물이라고 신고를 한 사람이 이사 가버린 아랫집 사람이란 것이다. 같은 동의 모든 집을 일일이 구청에 신고했단다. 구청 직원에게 확인한 사항이라고 했다.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왜?' 


자기들 집이 넓어지는 것도 아니고, 파파라치 제도로 보상금을 받는 것도 아닌데,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1층부터 5층까지 전 세대를 신고한 건지, '분노'나 '배신감' 이전에 집채만 한 '물음표'가 머릿속에 가득했다. 인사도 하고, 음식도 종종 가져다 주었는데, 반상회 하면서 얼굴도 마주 보고, 이웃끼리 회합한다고 고기뷔페도 간 집인데. 사람 속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하루쯤 지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래 집도 우리 집과 같은 크기다. 그런 집에 타조처럼 뛰는 아이들 셋에, 알코올중독 할아버지, 할머니, 혼기가 지난 딸, 이따금 소리를 꽥꽥 지르는 부부까지 여덟 명이 산다. 머리 깨진 할아버지를 부축하다 얼핏 들여다본 거실은 '정리정돈이 불가능한 집'이라는 도로명 주소라도 붙은 것처럼 엉망이었다. '으이구 으이구 나가 죽어야지' 소리가 예사로 들려오는 집이다. 거기에 묵직한 대출 이자까지, 일상의 무게가 아랫집 사람들을 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동물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자기 발을 깨물고, 꼬리를 물어뜯고, 상처가 나도록 긁어댄다. 스트레스는 공격성으로 표출되기도 하는데, 스트레스가 수인 한도를 넘어서면 자기 몸을 공격할 정도로 본능적인 판단력이 흐려진다. 


어쩌면 사람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상식 밖의 몇 가지 행동들이나, 아무런 까닭 없이 안면 있는 이웃들을 신고하는 일이나. 누적된 스트레스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공격성이 덧입혀진 채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행복하기 쉽지 않겠구나. 


우리가 삶에서 가질 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결국 일상인 것인데, 그 사람들은 일상에서 행복하기 쉽지 않겠구나. 그러자 잠깐 동안 아랫집 사람들에 대한 화가 사라졌다. 그 자리를 자비라고 해야 할지, 측은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는 흐릿한 안타까움이 대신했다. 

존 레넌이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다섯 살 무렵, 존의 어머니는 행복의 삶의 열쇠라고 말해주었다. 존이 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은 나중에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었다. 존의 대답은 'happy'였다. 선생님은 존을 보고 '과제를 이해하지 못했구나'라고 말했다. 그때 존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생님은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공부를 하는 것도, 직장에 다니는 것도, 가정을 꾸리는 것도. '왜 당신은 이 쪽입니까'라고 진지하게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답을 할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이 길을 선택했지만, 막상 길 위에서 행복하게 걷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리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방식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적었다. 


행복이 삶의 열쇠라면, 행복한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방식으로 행복하고 있지 않을까. 삶의 열쇠는 다른 어디가 아닌 그들 손에 쥐어져 있으므로, 돈과 명예와 기회와 그밖에 우리에게 유용한 여러 가지 도구들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일터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가정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학교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일상에서 행복한 누군가가 되는 것. 답이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행복'의 근처 어디쯤이 아닐지. 


그런 생각이 드는 행복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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