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서 깨달은 미국의 힘 세 가지
3주간의 미국 출장에서 돌아와 다시 익숙한 내 책상에 앉았더니 머리가 멍하다.
시차 때문이리라. 시차 부적응 따위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고 비행기에서는 일부러 애를 써서 잠을 쫓았었다.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까지 보아가며 12시간 반을 거의 대부분 뜬 눈으로 날아온 거다. 물론 등이니 허리니 몸의 여기저기가 쉬지 않고 투덜거리는 바람에 곤히 잠들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결국 별무소용이었다. 두통을 호소하는 머리와 풍선마냥 팅팅 부은 다리를 토닥여 몸을 뉘었는데 눈을 뜨나니 새벽 한 시요, 두 시요, 세 시다. 한 시간마다 깨는 품이 영락없는 시차 부적응인 게다. 이런 식으로는 눈을 감아도 제대로 된 수면이 아닌지라 그냥 샤워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시차란 어쩌면 감기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 약을 먹으면 일주일 만에 낫고, 약을 먹지 않아도 일주일이면 낫는다는 감기. 시차 역시 발버둥 치건 말건 일주일쯤 나를 괴롭히기로 예약된 물건일지도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아시는 분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로마가 세계 제일이던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로마의 정신을 배우고자 로마를 읽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미국이 미국이 되었는지 그 힘을 깨달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게다."
곰곰이 새겨보니 맞는 말씀 같았다. 미국이 왜 미국이 되었는지, 혹은 되어갈 것인지에 대한 화두를 안고 있으면 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얻는 바가 다르지 않을까.
물론 고작 3주의 기간이다. 게다가 자유로운 여행이 아니라 일로 가는 출장이며, 그것도 새끼 원숭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열서너 살 아이들 10명을 어미닭처럼 잔소리해가며 인솔하는 일이다. 한계야 있겠지만, 어쩌랴. 뷔페가 아무리 크다 한들 맛볼 수 있는 음식은 한 번에 한 접시요, 도서관에 아무리 책이 많아도 펼치느니 자기 책상 너비다. 짧고 바쁜 일정이라도 틈새 구멍으로 볼 수 있는 만큼만 보는 수밖에.
하여 이번 출장에서 내가 사진 몇 장과 동전 몇 잎 외에 백팩에 넣어서 돌아온, '미국의 힘'에 대한 깨달음 세 가지를 풀어보고자 한다.
미국의 힘 첫 번째.
운동하는 나라, 미국.
공항에서 돌아와 트렁크에서 짐을 풀고 있는 내게 어머니가 물은 첫 번째 질문은 이거였다.
"미국에는 진짜 그렇게 뚱뚱한 사람이 많아?"
아마 헬스장에 다녀오는 길이라 그게 그렇게 궁금하셨나 보다. 3주간 미국 다녀온 아들에게 대뜸 첫질문이 '뚱뚱한 사람이 많으냐'라니. 이건 뭐 '북한 공산당은 진짜 도깨비처럼 뿔이 났어?' 같은 질문 아닌가. 아무튼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응 엄청나게 뚱뚱한 사람도 있지. 그런데 운동 많이 하는 건강한 사람들도 정말 많아요. 길에서 탱크톱 입고 조깅하는 모델 같은 아가씨들이 장바구니 든 아줌마처럼 흔해."
미국은 사회 체육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나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대부분의 운동이 클럽제라서 방문할 때마다 쿠폰을 내면 되기에 부담도 적단다. 홍정욱의 <7막 7장>에서는 미국 학생들이 얼마나 스포츠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쓰여 있었다.
진짜 그랬다. 미국에 도착하여 출근하던 첫날, 숙소 가까운 곳을 지나는데 크고 작은 두 개의 야구장과 축구장이 한 군데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야구장이네요, 라고 했더니 현지 분이 말씀하셨다.
"중학교예요."
그 뿐이 아니었다. 뒤쪽에 가면 테니스장도 있고, 수영장도 있고, 농구장도 있단다. 큰 야구장은 정말 야구장이 맞고, 작은 야구장은 소프트볼 구장이라 했다. 사립학교도 아니고 공립인데 시설이 그 정도였다.
더 큰 충격은 그날 오후에 있었다.
홈스테이 집의 아들이 농구 클럽에 속해 있는데 리그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시합을 한다 했다. 그래서 늘 시합할 때는 구경을 간다고. 영어 캠프가 미국 문화를 체험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으니 같이 가자 하셨다. 우리는 물론 두말 않고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실내 농구장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호루라기 소리와 응원 소리가 자못 시끄러웠다. 삑 - 삑 - 하는 기계음도 계속 들렸다. '엄청 시끄럽네'라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 소음이 큰 지, 복도를 지나 경기장에 들어서서야 알았다. 그곳에는 심판이 있고, 코치가 있고, 응원석이 있고, 전광판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고작' 중고등학생 시합이었는데 말이다.
주심과 부심은 수시로 호루라기를 불며 요란한 수신호로 반칙을 선언했고, 계심원은 부지런히 전광판에 그것을 옮겨 담았으며, 틈나는 대로 코치는 작전 타임과 선수 교체를 요청했다. 응원석을 가득 메운 부모들이 골이 나올 때마다 우렁찬 박수와 휘이익 - 휘파람을 불어 댔다. 누가 봤으면 '농구 대잔치'라도 여는 줄 알았을게다.
'고작' 철따라 이어지는 인근 동네 중고등학생들의 '여름 시즌 자율 리그전' 이었다.
옛날 생각을 하며 조금쯤 울컥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어땠나. 야구장이자 축구장이자 농구장이자 스타디움이었던 흙바닥 운동장에 겨우 네 개 밖에 없는 농구 골대를 1800명 전교생이 사용했다. 올코트는커녕 반코트를 넉넉히 쓰기에도 부족해, 3:3이 아니라 4:4를 이기는 팀만 남고 지는 팀은 순차적으로 대기하는 소위 '짜지기' 방식으로 농구를 했었다. 엔드 라인도, 3점 슛 라인도 없었다. 멀리 나가면 아웃이었고 멀리서 쏘면 그게 3점 슛이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조잔디가 깔려있긴 해도 그곳이 여전히 야구장이자 축구장이자 농구장이자 스타디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까지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여드름을 짜고 있을 거고, 일주일에 두세 번 있는 체육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겠지.
"미국 명문대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 중에서 절반 정도가 버티지 못한다는 통계도 있어요."
현지의 선생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다. 자녀가 고2와 고1이니 한창 대입에 관심이 많을 시기. 거짓말은 아닐게다.
"체력이 달려서래요. 미국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때는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하고 대학에 간 이후에 그 체력을 공부에 쏟아붓는데, 한국 아이들은 그게 안돼."
마음이 아팠다. 틈만 나면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다. 여건만 갖춰지면 하루키처럼 하루 한 번 운동하는 삶을 루틴 하게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나다. 미국 학생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운동이 비단 취미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특기 활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운동을 소홀이 하고는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없다고 했다.
"미국 아이들이 축구, 농구, 야구를 얼마나 잘 하는지 아세요? 저쪽 마을 학교에 예전 우리나라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아들이 다녀요. 그 감독이 가끔 와요. 아들 축구 연습하는 거 보러 말이죠. 그런데 그 아들이 학교 축구 1군 대표에 못 끼어요."
10대에 몸을 만들어두면 평생을 건강할 수 있다고 했다.
공부에는 때가 있는 것처럼, 몸을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일 게다. 10년 넘게 검도를 하며 보았지만, 어린 시절에 시작한 사람과 마흔 넘어 처음 죽도를 잡은 사람은 움직임 자체가 달랐다. 똑같은 시간을, 아니 더 많은 시간 수련을 하더라도 분명 차이가 났다. 근육과 뼈가 시멘트처럼 굳은 다음이기 때문일까.
나는 거의 매일 부지런히 달리는 축에 속하지만, 뜀박질하는 내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날렵한 하마와 뚱뚱한 너구리의 중간 수준이다. 절대로 톰슨 가젤의 늘씬한 자태는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국 길거리에 '탱크톱 입고 조깅하는 모델 같은 아가씨'가 많은 것은 10대부터 가젤들을 길러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운동의 효과가 어디 그뿐이랴.
마이클 조던이 그랬다. 자기는 인생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코트 위에서 배웠다고. 그것은 조던이 단지 인생에서 필요한 모든 돈을 코트 위에서 벌었기 때문이 아니다. 인성, 리더십, 배려, 인내, 자신감...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가치들 중, 운동이 가르치지 않는 것이 있던가. 농구 경기를 보자. 그 안에 리더십이 있고, 인내가 있고, 규칙과 복종과 팀 정신이 있다. 그런데 미국 아이들이 그것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 스마트폰으로 농구 중계를 보며 '인성 교재'를 뒤적거린다.
미국의 힘 두 번째.
HERO의 나라, 미국.
3주간의 일정 중에는 게티 박물관(Getty Museum)과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두 장소에는 공통점이 있다. 과연 무엇일까?
물론 그렇다. 둘 다 아이들이 지루해 마지않는 장소라는 것.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또 한 가지 공통점이 남아있다. 두 군데 모두 독지가의 기부에 의해 조성된 장소라는 점이다.
폴 게티(Paul Getty)는 석유 재벌이었다. 아버지의 회사를 스물세 살에 물려받아 서른여덟까지 일한 뒤에 평생을 미술품 수집에 전념했다. 그렇게 모은 미술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해 14년에 걸쳐 1조 원의 공사비를 들인 게티 센터를 건립했다고. 그 게티 센터의 중심이 게티 박물관이다. 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 주차비만 내면 누구나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으며, 재벌이 직접 수집한 미술품 답게 대다수가 진품이다.
그리피스(Griffith) 역시 어마어마한 땅의 소유자였다. 우주와 망원경을 사랑했던 그는 "만약 모든 인류가 망원경을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라는 말을 하며 대중을 위한 무료 천문대 건립 작업에 착수했다. 시에 거대한 땅을 기부하면서 '천문대를 세우고 반드시 무료로 이용하게 할 것'이라는 조건을 달았다는데, 완전한 기부(법률상 증여)를 하는 데는 이런저런 세법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 넓은 부지를 '1달러'에 매매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고.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땅이 넓고 자원이 넘치는 나라가 미국이지만, 위대함은 결코 부유함과 동의어가 될 수는 없다. 로마는 풍족함이 과해 결국 쇠락하지 않았던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아도 유추할 수 있는 일이다. 밥상이 넉넉해진 뒤 우리의 입맛은 얼마나 만족을 모르는 간사한 녀석이 되었느냐는 말이다. 사람이란 원래 그렇다. 담배 연기가 흩어지기 마련 이듯, 사람의 마음은 일부러 애쓰지 않으면 무절제와 쾌락을 향해 아래로 흐른다. 그러니 사람이 모여 만든 나라야 말해 무엇하랴.
풍요로운 땅 미국이 그나마 지금의 문화와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데는 소금과 같은 독지가들의 역할이 컸으리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금도 그 흐름이 이어져 빌 게이츠가 게이츠 재단을 만들고, 워런 버핏이 재산의 85%를 기부하며, 애플 CEO 팀 쿡이 전 재산 기부를 공언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부의 힘'이 미국을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다. 개척 정신을 발휘해 스스로 부를 일구고, 그것을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자신을 완성시키는 삶의 방식 말이다.
그런데 조금 더 지켜볼수록, 그 밖에도 다양한 방식의 삶에 미국 사람들이 경의를 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를 극복한 스포츠 스타도, 창고에서 시작해 대기업을 세운 벤처 거물도, 강자에게 당당히 맞서 소송에서 승리한 일 개인도, 미국은 그 자체로서 존경하고 박수를 보낸다는 느낌이 피부에 와 닿았다.
특히 LA 다저스의 야구 경기를 보던 날이 그랬다. 경기 시작 전 5만 관중이 운집한 스타디움에 중동지역 군복을 입은 군인 한 명이 들어섰다. 전광판에 비친 그 군인은 거수 경례를 했고 관중들은 열렬히 박수를 쳤다. 나는 현지 선생님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누구예요?" 선생님은 답했다.
"참전한 군인이에요."
그게 다였다. 그는 스타도, 유명인사도, 혹은 스타나 유명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참전한 군인도 아니었다. 그냥 참전한 군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물론 스타디움의 관중들이 그 군인의 스토리에 끈질긴 관심을 가졌다거나, 벅찬 가슴을 온전히 담아 물개 박수를 날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 뒷자리의 남자는 박수를 치며 여전히 수다를 이어갔고, 아이스크림 판매원은 계속 특유의 어조로 "아이쑤쿠뤼임"을 외치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 많은 관중들이 평범한 한 군인과 그가 택했던 길에 경의를 표하는 문화가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박수를 받을만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박수를 치는 것이 마땅하다'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일'은 단순한 '성공'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이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무엇에 대한 경의였을까.
그 물음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것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기념관이었다. 레이건에 대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반복하여 스크린을 채우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HERO였다.
영웅. 미국은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영웅적인 행동을 한 사람'을 발굴하고, 기리고, 닮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포츠 스타, 기부자, 사업가, 군인, 정치인. 활약한 무대는 다르지만 그들 모두를 HERO라고 불렀다. 그리고 HERO 그 자체를 사랑했다.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을 우러러보느냐 하는 점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곧 미래 세대가 나아가는 방향을 말하는 것이며, 그 방향성이 바로 사회 건강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만 성공해온 사람이 구성원의 부러움을 사는 사회라면 그 미래는 어떨까. 세습받은 부와 권력으로 물려받은 바를 손쉽게 불려나가는 삶이 닮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이 되는 사회라면 그 앞날은 어찌될까.
그런 점에서 나는 HERO라는 가치관에 모두가 손뼉을 모으는 모습에서 미국의 건강함을 느꼈다. 비록 열광과 환호는 아니었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행위'라는 담담함이 오히려 의무처럼 보여 부러웠다.
우리에게는 HERO와 같은 무언가가 있을까.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로 기억한다. 각 나라마다 닮고자 하는 인격의 표본이 있는데 동양의 군자, 인도의 브라만, 영국의 젠틀맨이 바로 그런 존재라고 배웠던 것 같다. 아아. 끝물로 나온 물러 터진 수박처럼, 완전히 철 지난 이야기다. 군자라는 말에 우리를 기립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가. 장난을 멈추고 마땅히 시선을 고정시켜야 할 어떤 에너지가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건강한 인간상을 뜻하는 흡족한 단어를 찾아 낼 수 없었다.
미국의 힘 세 번째.
문화 콘텐츠의 나라 미국.
영어 캠프 업무의 특성상, 3주 동안 LA 지역을 발바닥이 닳도록(실제로 운동화 한 켤레는 그곳에 버리고 왔다. 헌 운동화였지만 말이다)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나름 행운이었다. 섭씨 41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롤러코스터를 아홉 개나 마스터하고, '햄버거'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인 앤 아웃 버거'를 두 번이나 먹었으며, 아이들 못지 않게 나 역시 지루했던 박물관과 과학관을 몇 군데 다녔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단연 유니버설 스튜디오였다.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 나는 영화가 그런 곳에서 만들어지는 줄, 꿈에도 몰랐다. 스튜디오 투어 버스를 타면 실제로 영화가 열심히 제작되는 장소를 직접 보여준다. 그것은 공장처럼 네모난, 그리고 공장처럼 똑같은, 아주 커다란 건물들이었다. 15층 아파트 서너 동을 포개어 옆으로 뉘어놓은 듯한 크기였다. 그리고 그 건물마다 번호가 쓰여 있었다.
STAGE 1, STAGE 2, STAGE 3...
건물 하나 하나가 영화를 촬영 중인 스튜디오라 했다. 해당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실제 영화 속 장면을 보여주었다. 깜짝 놀랐다. 영화 속에는, 호화로운 대 저택의 탁 트인 야외 수영장에서 늘씬한 미남 미녀들이 개미처럼 모여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저게 실내에서 찍은 장면이라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보잉 747 비행기를 구해다가 실제로 부숴놓은 세트장을 보았다. 탐 크루즈가 <우주 전쟁>을 찍을 때 사용했던 세트장이라 했다. 지하철 역사에서 탈선한 지하철이 전복되고, 천정이 무너져 도로에 있던 트럭이 쏟아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하나의 STAGE 안에서 재연한 장면이었다. <쥐라기 공원>의 지프도, <분노의 질주 7>에서 달렸던 레이싱카도, <죠스>에 나왔던 상어 로봇도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상징인 둥그런 지구본 앞에서 줄을 지어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놀이기구도 달랐다.
우리가 롯데월드나 서울랜드에서 만날 수 있는 놀이기구는 기껏해야 롤러코스터다. 롤러코스터의 공식은 '더 높게'와 '더 빨리' 뭐 그런 거 아닌가. 하지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는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었다. '쥐라기 공원'을 탈 때는 눈 앞에 실제 쥐라기 공원이 펼쳐지는 듯(그래도 진짜 같지는 않았다. 어른의 눈에는 로봇이라는 게 너무 잘 보이니) 했고, '트랜스포머'를 탈 때는 내가 범블비의 자동차를 타고 디셉티콘과 싸우는 듯(이건 진짜 같았다) 했다. '미니언'에서는 함께 동승한 수많은 어린이들이 뭐라 뭐라 알 수 없는 구호를 외쳐대는가 하면(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 데다가, 미니언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이라'에서는 나 역시 '으악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역시 진짜 같았다).
이것은 단지 '더 높게'와 더 빨리'의 영역이 아니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가 있고, 그 콘텐츠에 흠뻑 빠진 이들에게 상상 속의 장면을 눈 앞에 재연해주는, 문자 그대로 '꿈의 세계'인 것이다.
미국으로 출장 가기 직전에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더랬다. 영화가 끝나고 스크립트가 올라갈 때 탄탄한 스토리와 참신한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내는데 문득 스토리 에디터 명단이 눈에 들어왔다. 열 세명. 후다닥 세어본 숫자가 대강 그랬다. 최고 중의 최고만 모인다는 디즈니-픽사의 스토리 에디터가 13명이나 달라붙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러니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그들은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고, 스토리를 짜고, 그것을 문화 콘텐츠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그렇게 쌓아온 덕분에 미키마우스와 피터팬과 엘사에 열광하는 팬을 전 세계에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올해에도 <쥐라기 공원>의 추억을 떠올리며 <쥐라기 월드>로 몰려 갔고, 미니언 인형을 사주기 위해 맥도널드에서 해피밀을 주문했다. 문화 콘텐츠의 힘이란 그런 거다.
웃음과 감동과 상상력으로 모든 이들로 하여금 같은 곳을 바라보게 하는 힘 말이다.
3 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서부, 그것도 LA 지역 인근을 다닌 내가 무언가 엄청난 것을 통찰하였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화두를 들고, 틈틈이 엿보며, 꼼지락 꼼지락 혼자서 끄덕여본 것들 뿐이다. 겨우 시차 하나에 적응하지 못해 새벽 네 시에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다. 믿을만한 식견도, 깊이 있는 내공도 부족하다.
하지만 익숙한 장소와의 결별이란, 설사 그것이 여유로운 여행이 아니라, 쉴틈 없는 업무의 한 가운데일지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는 사진 몇 장이나 동전 몇 잎 외에 꽤 쓸모 있는 선물을 남긴다. 운동하는 나라, HERO의 나라, 그리고 콘텐츠의 나라. 그곳에서 얻은 깨달음들을 정성껏 포개어 내가 살아갈 삶의 방향에 조심스레 얹어야겠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일상이다. 잠시 후면 출근할 시간이다.
삶은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만큼씩 바뀌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