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실물

3-2

by KJ

주얼리 공방에 들어가자 작업물의 결과가 도착해 있었다. 희끗한 은색의 펜던트 중앙에는 손 모양의 음각이 또렷하게 있었다. 지난 수업 때 선생님께 보여드렸던 것과 동일한 문양이었다. 작지만 든든한 무게였다.


작업대에 앉아 '물자국'이라는 부분을 줄로 갈아냈다. 녹인 은을 석고틀에 부을 때 위에 남는 자국이라고 했다. 발톱을 갈듯 한 번씩 켤 때마다 높이가 낮아졌다. 물자국이 없어지니 펜던트는 완성품의 외형이 되었다.

음각된 손 문양 위에 약품을 부었다. 일본어 상품 라벨이 붙어 있었다. 은에 반응하여 검은색을 남기는 산화제라는 것이었다. 투명한 액체가 홈을 따라 천천히 고였다. 잠시 그대로 두었다. 씻어내자 음각된 손 문양이 검어졌다.


전동 핸드피스를 잡았다. 일종의 드릴이었지만 연필같이 쥘 수 있는 굵기였다. 페달을 밟으면 끝부분의 사포가 윙윙거렸다. 펜던트의 표면에 닿으니 지지직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두 가지 소리가 모스부호처럼 울려 퍼졌다. 뻐근한 목을 펴니 탁상등 아래에 고운 입자들이 반짝거리며 떠다니고 있었다.


펜던트의 표면이 깎여 나갔다. 흰 표면이 선명한 은색으로 바뀌어 갔다. 손목으로 전달되는 진동이 불안했다.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직 익숙지 않은 나에게는 철공소의 요란함처럼 느껴졌다. 각도를 바꾸며 조심스럽게 표면을 정리했다.


이번에는 다이아 헤드를 끼웠다. 모래알 모양의 긁힌듯한 표면을 연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AI가 그려준 것은 단정한 무광인 새틴 패턴이었지만, 나는 거친 표면을 원했다.


조금씩 표면이 깎이며, 빛이 닿는 방향에 따라 달리 반사되기 시작했다. 가끔 손이 미끄러졌고, 그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선생님께서 웃으며 처음에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하셨다. 놀랄 때마다 그 손찌검을 한 부분에는 주변의 결과 다른 할퀸 자국이 생겼다.


표면을 더 갈아낸 뒤, 선생님의 검수 후 도구들을 내려놓았다. 펜던트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모래를 뿌린 듯한 거친 표면 한가운데 검은색 손 모양이 보였다. 천천히 돌려봤다. 표면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래알들이 빛났다.


누워 있던 시간이 많았던 시절, 화면에서 대화하며 내 적성과 진로를 상담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 상담원은 내 설명을 보고는 거침없이 펜던트를 그려 주었다. 그 실물이 손안에 들어와 있었다.


펜던트를 작업대 위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집에 오는 길에 사진을 올렸다. 인스타 스토리 업로드에 적절한 시간이었는지 많은 친구들이 확인했다. 다만, 반응을 보인 친구는 없었다. 평소에 좋아요에 후한 이들마저 오늘은 숨죽여 지켜봤다.


서재로 들어왔다. 손이 고생한 날이었지만 바로 화면 앞에 앉았다. 닫지 않은 창들이 그대로 떠 있었다. 파일 이름에 날짜들이 어지럽게 적힌 문서들이 가득했다. 평일 낮에 주로 보는 내용들과 비슷했다.


질문과 답변들은 명쾌했다. 시간과 노력을 얼마나 써야 하는지와 비용 같은 것들이었다. 온라인으로 시작하는 방법, 매장에서 실물 판매를 곁들이는 방법, 일정 시간 단위로 시험해 볼 수 있는 방식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데에는 늘 성공적이었다.


대화창으로 와 보니, 그 내용들이 더 잘게 나뉘어 있었다. 각 갈래마다 검토가 필요한 일들이 적혀 있었다. 한 달 동안 지켜볼 것, 반응이 없을 때 접는 방법까지 정리돼 있었다. 내용만 보면 이미 여러 번 실행을 거친 기록처럼 보였다.


그다음에는 숫자가 붙었다. 지출과 회수 시점이 표로 이어졌다. 크게 무리하지 않으면 가능하고, 한 번 틀어지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결론도 빠짐없이 따라왔다. 숫자는 늘 단정했고, 문장은 안전했다. 이 정도면 누구 앞에 내놓아도 무난해 보였다.


이제 방향을 정해야 할 것 같지만, 대화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같은 질문을 조금씩 바꿔 던지자, 답변도 그에 맞춰 바뀌었다. 어떤 시나리오도 그럴싸해 보였다.


주얼리 이야기도 그 사이에 섞여 있었다. 직접 만든 물건이 주는 진정성, 실물이 만들어내는 신뢰 같은 말들이 따라붙었다. 작업 결과물은 사업 기획용 문장으로 바뀌었고, 그 대화 내용은 앞서 말한 스스로를 추켜세우며 더 그럴듯해졌다. 읽고 있으면 뭔가 잘 굴러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은 점점 분명해졌다.


하지만 화면 어디에도 오늘 해야 할 일은 보이지 않았다. 대화 개수는 늘어났고, 제목도 점점 그럴듯해졌지만, 당장 할 일은 어디를 봐도 없었다. 다시 질문을 입력하려다 멈췄다.


컴퓨터를 끄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화면에는 여전히 답변들이 남아 있었고, 다음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미래가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은 충분했다. 그것을 음미하면서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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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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