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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공방에 가는 길과 주차하는 게 익숙해졌다. 공방에 들어가자 선생님이 반겼다. 주물이 나왔다고 했다. 테이블 위에는 은색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지난 시간에 왁스로 모양을 만든 이어 커프였다.
손에 쥐자 무게와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표면은 희끗했다. 주조를 거친 은 특유의 질감이었다. 위쪽 한 부분에 지난번에 본 것과 같은 주입구 자국, 이른바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작업대 앞에 앉았다. 세공용 줄을 잡았다. 어떤 작업물이든 물자국 정리부터 한다. 줄을 물자국에 대고 한 방향으로 밀었다. 은 가루가 조금씩 떨어졌다. 줄이 닿을 때마다 '드득' 하는 마찰음이 났다.
물자국의 뾰족한 끝이 뭉툭해지고, 주변과 높이가 비슷해졌다. 주변과의 단차를 없애기 시작했다. 세밀한 줄로 바꾸고, 이어 커프를 돌려가며 여러 각도에서 줄을 댔다. 몇 번을 반복하자 주변 면과 높이가 맞아갔다. 손끝으로 문질러도 걸리는 부분이 없어졌다.
물자국이 정리되자 표면 작업으로 넘어갔다. 핸드피스를 잡았다. 이번 작업에서는 표면에 광을 내기로 했다. 지난번 펜던트처럼 거친 결을 남기는 작업과 달랐다.
핸드피스 끝에 사포 헤드를 끼웠다. 먼저 400방이었다. 전원을 켜자 손에 진동이 전해졌다. 이어 커프 바깥면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작업물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꼭 쥐고 한 방향으로만 결을 만들며 사포질을 했다. 고운 가루가 떨어졌다. 표면의 희끗한 질감이 은빛으로 바뀌어 갔다.
다음은 800방으로 바꿨다. 광을 내기 위해서는 점점 높은 숫자의 고운 사포를 사용해야 했다.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이전까지 보이던 미세한 흔적들이 더 옅어졌다. 표면 질감이 유지되도록, 핸드피스를 대는 힘과 움직임을 일정하게 유지했다. 방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결이 어긋나 보였다. 멈췄다가 다시 같은 방향으로 이어갔다.
2000방 사포로 넘어가자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가늘어졌다. 빛을 비추면 반사가 한결 고르게 보였다. 모든 면이 정리되어 갔다. 고리를 돌려가며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사포 작업이 끝나자 실리콘 헤드로 교체했다. 고무와 같은 소재를 회전시키며 표면을 고르게 눌러주고 결을 정리했다. 질감과 광택이 한층 차분해졌다.
마지막으로 펠트 헤드를 끼웠다. 펠트에는 가루 연마제가 묻어 있다고 들었다. 핸드피스를 다시 켜고 표면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빛이 닿는 면마다 광원의 모양이 그대로 비쳤다
이어 커프를 귀에 걸어봤다. 벌어진 부분을 귀 옆면의 얇은 연골 부위로 통과시킨 후, 아래쪽인 귓불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 방식이다. 귀에 닿는 면이 매끈했다. 귓불이 늘어질 정도로 무거웠으나, 고개를 움직여도 쉽게 빠지지 않았다.
작업대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바라봤다. 지난번 작업물과 달리 바라보는 내 얼굴의 실루엣이 비칠 정도로 광택이 살아 있었다.
선생님과 다음 작업 이야기를 했다. 반지를 만들기로 했다. 이번에도 선을 그리는 표현을 하되, 나만의 패턴을 생각해 봤다. 노트를 펴고 손으로 써가며 선생님께 설명했다. 반지의 표면 여덟 방향에 균일한 간격으로 I, II, III, II, I, II, III, II 형태의 선들을 그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손으로 정확한 각도와 선 간격을 만들 수 있을지, 어느 단계까지 수작업으로 가능할지 더 생각해 보기로 했다.
오른쪽 귀에 묵직한 무게를 느끼며 공방을 나섰다. AI에게 할 질문들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했다. 다음번 작업 공정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 등 궁금한 것들이 쌓여 있었다.
가방을 놓고 화면 앞에 앉았다. 시계 스트랩은 사업 측면에서 어떻게 접근할지 대화를 시작했다. 고무 소재 중심의 스트랩들에 대해 온라인에서 많이 팔리는 것들의 디자인과 가격대를 조사하며, 제작과 유통 구조에 대해 추측한 것을 얘기했다.
"같은 물건이 중국 쇼핑몰에 있는 것을 봤어"
"가격은 절반도 안되는데 국내 쇼핑몰과 똑같은 물건이더라고"
개인이 만들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어떤 디자인이건 최소 수량 이상을 해외 공장에 제작 의뢰하면 받아볼 수 있는 구조로 보였다. 만들어 낸 재고물에 대한 부담과, 생산 업체 관리에 대한 어려움을 상상했다.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AI 또한 내 생각에 동의할 뿐이었다.
잠시 앉아있다가, 시스템 종료 버튼을 클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