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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공방에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났다. 공간에서 사용하는 디퓨저, 왁스 가루, 그리고 오래 켜둔 인두의 열이 섞인 냄새였다. 작업대 위에는 전날 정리된 듯한 도구들이 같은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줄, 조각칼, 인두 등.
앞치마를 입고 자리에 앉았다. 약속한 바는 없지만 내 지정석이 된 자리였다.
주황색 플라스틱 조각을 작업대 위에 놓았다. 엄지 손가락 절반을 덮는 길이. 단면은 반원이었고, 표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가는 틈이 뚫려 있었다. II - III - II 패턴이었다.
왁스 반지를 집어 들었다. 먼저 내경을 측정하는 고깔 모양 도구에 끼워 고정했다. 그다음, 지그를 왁스 위에 얹었다. 반원 형태의 안쪽이 반지 겉면에 맞물렸다. 이렇게 작업하면, 고정하는 왼손을 힘주어 눌러도 왁스 반지의 안쪽이 안정적이어서 부러질 가능성은 적어 보였다.
조각용 펜을 잡았다. 펜 끝을 지그 중앙의 틈에 맞췄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아래로 그었다. 일정한 저항과 함께 선은 곧게 내려갔다. 같은 선을 반복해서 그으니 깊숙하고 뚜렷해졌다.
중앙의 세 줄을 그은 다음, 펜을 왼쪽 두 줄로 옮겼다.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펜을 쥔 손에 힘을 뺀 채 첫 길을 내고, 여러 번 그어 굵게 파내기를 반복했다. 애쓰지 않아도 펜은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였다.
왁스 반지를 반대로 돌려서 빈 바탕에 동일한 II - III - II 패턴을 다시 그렸다. 익숙해짐에 따라 더욱 빨라졌다. 반지는 두 군데의 I를 제외한 여섯 방위에 일정한 간격의 똑바른 선을 갖게 되었다.
문양의 절반 넘게 완성한 상태였다. 시계를 보니 작업 시작 후 40분 지나 있었다.
선생님이 지나가며 작업 속도를 보고 눈이 커졌다. 처음 보는 작업 방식에 생각이 복잡해 보였다. 나에게 말을 하려 하자 먼저 말했다. 점잖은 표정으로 말한 내용은, '인류는 새로운 도구의 사용을 통해 발전해 왔다'라는 것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말했지만 틀린 건 아니었다. 역사 속 인류와, 인류의 일원인 나에게 모두 해당되는 것이었다.
선을 두 군데 더 긋고, 작업대 위에 반지를 내려놓았다. 얼핏 보기에도 문양이 뚜렷했다. 손으로 그린 선들이지만, 패턴 간격, 패턴 내 선 간격, 선 깊이가 일정했다.
선생님이 옆을 지나가다 멈춰 섰다.
“벌써 끝났어요?”
반지를 들어 보였다. 그녀는 반지를 받아서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게 잘 됐네요.”
남은 건 안팎의 실루엣을 다듬고 표면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천천히 할 수 있었다. 보이는 건 초록색 파라핀 덩어리지만, 완성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반지를 선생님에게 건네고 손을 씻었다. 표면 정리까지 마쳐서 주물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집에 돌아왔다. 바로 대화를 재개했다.
“지그를 쓰니까 예상대로 작업 속도가 빨라졌어.”
“손으로 못 하던 걸 도구로 해결했는데, 그럼 직접 손으로 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지?”
“사람들은 왜 수공예품에 높은 가치를 부여할까?”
쏟아낸 질문 세례에 AI는 답했다. 사람들이 사는 것은 정성이 아니고, 판단의 흔적이라는 것이었다. 일리 있는 얘기로 들렸다.
하지만 기획의도는 제품의 공정을 가리지 않고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고민 없이 다른 디자인을 따라한 것이라도 '따라 한다'라는 의도가 반영된다는 게 예시가 될 것이다. 그 점에서 대량 생산 제품과 수제품은 차이가 없어 보였다.
계속 물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손이 닿은 마감으로 줄 수 있는 고유성이 무엇인지.
AI는 답했다. 컴퓨터와 기계가 할 수 없는 모양이 있다는 것이었다. 비대칭 모양, 불연속성 등의 예를 들었다.
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내 숙제로 여겨졌다. 향후 작품들은 기획의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기초적인 것이었다. 손맛이 느껴지는 형태란 무엇인지 계속 탐구가 필요해 보였다. 그 손맛 중 가치가 높아 보이는 것은 그 요인이 무엇인지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손을 따뜻하도록 비벼서 감은 눈 위에 얹었다. 작별 인사말을 치고 침대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