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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는 방금 전달한 말들과 AI가 준 의견들이 남아 있었다. 먼저 필요한 건 형태였다. 형태를 구체화하기 위한 대화를 이어갔다. AI와의 대화창과 다른 프로그램들 화면이 수시로 바뀌었다.
내 춤 동작 사진들을 꺼내 봤다. Authentic Jazz라는 부문 대회에 참가했었다. 찍힌 사진들 가운데 두 개의 동작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팔을 위로 길게 뻗은 자세였다. 몸이 위로 열려 있었고, 시선도 따라 올라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몸을 웅크린 채 옆을 향하고 양팔을 그쪽으로 뻗은 동작이었다. 고양이가 두 발로 서서 앞발을 내미는 모습과 비슷했다. 화면에 두 사진이 나란히 있었다. 고개를 화면에 가까이 댄 채 두 사진을 계속 번갈아가며 봤다.
AI에게 전달하며 의견을 물었다. 위로 뻗은 동작은 형태가 분명했지만 너무 익숙해 보일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웅크린 동작은 선이 짧고 응축되어 있어 형태가 더 또렷하게 남을 수 있다는 말도 이어졌다. 다시 사진들을 봤다. 팔을 위로 뻗은 동작은 놀란 사람인지 춤 동작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실루엣만 사용한다면 더욱 모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웅크린 동작은 설명 없이도 특이한 인상이 먼저 남았다. 또한, 정사각형 프레임에 담기에 적절한 비례였다.
그 동작의 윤곽만 남겨서 활용해야 했다. 사진에서 외곽선만 남기는 방법들을 하나씩 살폈다. CAD 프로그램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 축소해도 형태가 유지되도록 만드는 쪽으로 정했다.
AI가 추천해 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고른 사진을 불러와서 윤곽선을 추출했다. 세밀하게 꺾인 일부를 지웠다. 선을 줄일수록 동작을 알아보기 더 쉬워졌다.
앞서 만든 윤곽선을 CAD 프로그램으로 불러오는 데 성공했다. 친숙한 동작이 3차원 평면 위에 얇은 면으로 등장했다. 얼굴과 표정이 없었지만, 자세만으로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실루엣을 내가 원하는 두께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펜던트의 외곽 프레임부터 만들었다. 정사각형 프레임에 두께를 주자 액자가 준비되었다. 가죽줄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파이프도 만들어서 프레임 상단에 붙였다.
옆에 있던 춤 실루엣도 두께를 주었다. 그리고 프레임 표면 위에 두꺼워진 실루엣을 올렸다. 춤 동작이 양각으로 돌출되게 만들어졌다.
실루엣의 두께를 몇 번 바꿨다. 얇을 때는 존재감이 부족했고, 두꺼운 부분은 자의식 과잉처럼 보였다. 모델을 여러 각도로 돌려봤다. 평면일 때보다 입체가 되자 동작의 성격이 더 선명해졌다. 웅크린 자세가 가진 느낌이 덩어리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CAD 프로그램 내 편집을 마치고 출력을 준비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과정이니 표면이 완벽할 필요는 없었다. 손에 쥐었을 때의 크기와 질감, 그리고 실루엣이 어떻게 보이는지만 확인하면 됐다. 예전 펜던트를 떠올리며, 나무 가루가 섞인 PLA Wood를 재료로 선택했다.
출력을 시작했다. 노즐이 움직이며 층을 쌓아 올리는 소리가 울렸다. 작은 물건이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발코니로 가서 출력판에서 결과물을 떼어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동전보다 가벼운 무게감이 느껴졌다.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봤다. 나무 느낌이 조금 드는 정도였다. 플라스틱과 나무 가루를 반죽해 만든 재질이라는 소개가 떠올랐다. 양각으로 올라온 실루엣의 선은 분명했지만 표면은 거칠었다. 두 손가락으로 쥐고 천천히 돌려봤다. 멀리서 보면 의도한 형태와 비슷했다. 하지만 눈을 가까이 대고 보면 거친 표면이 보였다. 공장에서 정밀한 금형으로 뽑아내는 제품들과 달랐다.
펜던트 표면의 양각을 엄지 손가락으로 한번 더 쓸어본 후 카드지갑에 넣었다. 그것을 수첩과 함께 가방 앞주머니에 넣었다. 이 형태를 수공예를 통해 은 소재로 재현해 볼지, 형상을 음각 또는 다른 형태로 바꿀지 등 얘기할 게 많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