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루엣-2

6-3

by KJ

주얼리 공방에 도착하자 선생님이 작은 물건을 건넸다. 여러 줄 패턴으로 만든 반지 주물이었다. 표면은 거칠었고, 주물 특유의 흰색 표면과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집어 들고 엄지와 검지로 표면을 문지르며 작업대로 갔다.


오른손에 사포 120방을 끼운 핸드피스를 잡았다. 반지를 왼손에 끼우고 천천히 돌렸다. 한 바퀴를 마치고 각도를 바꿨다. 240으로 넘어가자 소리가 작고 세밀해졌다. 긁는 대신 문지르는 질감으로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400과 600에서는 손 끝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이 느슨해졌다. 작업등으로 테이블 위를 비춰 보자 미세한 은백색 가루들이 보였다.


800으로 바꿔서 더 돌렸다. 표면이 균일해졌다. 실리콘 휠로 돌리고, 펠트로도 연마했다. 펠트가 바람개비처럼 회전하며 은가루보다도 미세한 연마제가 스프레이를 뿜듯이 퍼졌다. 반지를 씻고 물기를 제거한 후 상담용 테이블 위에 놓았다.


다음 작업물 차례였다. 가방에서 펜던트 모형을 꺼냈다. 춤 실루엣이었다. 선생님이 펜던트를 집어 들었다. 돌려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어떤 형태인지 알겠는데, 이 크기로는 동작이 잘 보이지 않겠는데요?"


손바닥 위에서 펜던트를 위아래로 돌리며 설명이 이어졌다. 웅크린 자세와 팔의 방향은 살아 있지만, 너무 응축되어 동작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더 큰 게 낫겠다고 했다. 큰걸 어디에 쓸까 얘기를 계속하다가, 뒷면에 자석을 심어 마그넷으로 쓰면 좋겠다는 결론이 났다. 모양 또한 양각이 아닌, 납작한 판에 조각펜으로 그림을 새기는 음각이 좋겠다고 했다.


내 학창 시절 미술 점수를 기억해 냈다. 12년 간의 의무교육 과정 중 모든 연도의 미술 성적은 '미'였다. 선생님께 그것을 설명했다.


"상관없어요. 지금부터 얘기하는 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이미지를 휴대폰에 띄워 놓고 연필로 선을 따라 그린 다음, 그 스케치를 활용한다는 것이었다. 그걸 듣고는 내 춤 동작 소재의 다른 그림이 생각났다. AI를 이용해 실사를 만화 캐릭터로 변형시킨 것이었다. 이 그림이라면 내가 기름종이를 겹치고 따라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도 동의했다.


휴대폰 화면에 이미지를 띄웠다. 팔과 다리가 단순한 선으로 정리된 그림이었다. 얼굴 또한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못해 튀어나온, 그리기 좋은 형태였다.


기름종이를 받았다. 휴대폰 화면 위에 올리자 선이 그대로 비쳤다. 기름종이를 테이프로 고정하고, 그 위를 따라 연필로 선을 옮겼다. 내 손이 망설임 없이 선들을 그려갔다.


기름종이를 작업대로 가져갔다. 왁스판 위에 고정한 후 선을 따라 조각펜으로 점을 찍었다. 종이를 뚫고 왁스판에 박히는 이중 저항이 느껴졌다. 이 또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름종이를 치웠다. 새겨진 점들을 조각펜으로 이어갔다. 구멍 난 점과 점 사이를 긋는 조각펜의 저항이 느껴졌다. 만화처럼 단순화된 춤 동작이 판 위에 남았다. 자세만큼은 원본과 동일했다. 실루엣 안쪽의 선도 있으니 동작이 훨씬 생생했다. 음각으로 파인 선들이 빛을 받아 미세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완성된 모양의 외곽선을 따라 프레임 없이 표현되도록 바깥을 자르고 갈아냈다. 양각으로 튀어나오지 않아도 모양이 직관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석이 묻을 홈을 파낼 차례였다. 왁스판의 뒷면을 봤다. 위에서부터 1/3 지점에서 비스듬하게 파내야 자석의 크기에 맞출 수 있었다. 그려놓은 자석 크기와 비슷하게 파낸 후, 일자 조각칼로 구덩이의 바닥과 옆면을 평평하게 마무리했다.


때수건으로 표면 마감을 하니 주물집에 맡길 수 있도록 완성되었다. 엄지와 새끼를 제외한 세 손가락을 뭉친 정도의 크기였다. 이번에는 황동 소재로 주물을 받아 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발코니 작업 테이블로 갔다. 가죽 공구들과 3D 출력물들, 작은 부자재들이 이미 테이블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넓은 원단들과 긴 자들은 거실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바닥에 널린 것들을 피해 가서 반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대화 목록을 훑다가 3D로 출력한 펜던트 기획을 주고받던 대화방의 제목을 찾았다. 형상과 설계에 대한 내용들이 남아 있었다. 삭제를 선택했다.


일정표도 한편에 떠 있었다. 화살표를 눌러서 다음 달 일정도 봤다. 여러 수업 사이에 새로운 일정도 눈에 띄었다. '복직'이었다.


춤 카툰 왁스.png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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