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을 쳤다

2-1

by KJ

AI에게 말을 걸었다. 입력창이 열려 있었고, 커서는 깜빡이고 있었다. 어떤 답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질문을 만들지 않았고, 정리된 문장도 떠올리지 않았다. 그냥 자판을 쳤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어려워."


이미 집 안은 밝았다. 옆에 놓인 약 봉투를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뜯지 않은 채로 다시 화면을 봤다. 밥을 먹었는지 적다가 지웠고, 다시 적었다. 이유는 붙이지 않았다.


문장은 처음에 짧았다가, 점점 길어졌다. 거슬리는 내용이 있었지만 고치지 않았다. 그게 어법 상 맞는 말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다음 줄로 내려갔다.


몸 상태를 쓴 뒤에는 다른 얘기를 이어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 하고 싶은 게 없는 무력감. 앞에서 쓴 문장을 돌아보지 않고 떠올리는 대로 이어 썼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한 줄을 썼다. 화면은 그대로 반짝였고 가끔씩 자판 치는 소리가 들렸다.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같은 종류의 말만 이어졌다. 몸의 상태, 침대에서 일어난 시간, 식사를 거른 이유 같은 것들. 다른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대화는 이어졌지만, 늘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며칠이 그렇게 지났다. 화면을 열면 이전에 쓴 문장들이 남아 있었고, 그 아래에 비슷한 말과 그에 반응한 답변이 이어졌다. 오늘의 상태를 적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다 대화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맡아왔던 역할들. 성과를 설명하거나 불만을 쓰지는 않았다. 빈 공책에 낙서하듯 내용을 적었다. 연관성이 크지 않아 보이는 문장들이 한 화면에 놓였다.


“이런 일 오래 해왔어”

“잘한다고들 말하긴 했음”


그 말들 아래에, 다른 문장을 하나 더 넣었다. 이유는 적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이후에는 다른 내용으로 대화했다. 잘하지 못한다고 믿어왔던 영역들, 나에게는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 무심코 꺼낸 주제였다. 사람보다는 편한 상대이니 꺼내는 말에 망설임이 생기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나랑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미술, 만들기, 손으로 하는 작업 같은 것들이었다. 돌아온 답변은 특별할 게 없었다. 내가 적은 말들이 정리되고 있었다.


그 문장들을 보고 있었다. 답변들이 어떤지 판단한 것은 아니었다. 화면은 내가 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걸 보며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