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루엣-3

7-2

by KJ

주얼리 공방에 도착하자 선생님이 노란 덩어리를 건넸다. 황동 주물이었다. 노르스름한 색에 희끗한 불순물이 표면에 붙어 있었다. 손바닥 위에 올렸다. 음각으로 얕게 파인 선들이 보였다. 뒷면에는 자석을 삽입할 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게감을 음미하며 손에서 들썩여보다가 작업대 위에 놓았다.


핸드피스에 120방 사포를 끼웠다. 연필을 쥐듯 잡고 한 방향으로 밀듯이 움직였다. 사포가 지나간 자리에 광택이 보였다. 고른 질감을 갖기 위해서는 일정한 방향으로 사포질이 되어야 했다. 긋는 각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이전 자국과 교차하며 얼룩처럼 보였다.


사포질 과정은 가는 연필로 선을 하나씩 쌓으며 전체를 뒤덮도록 칠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번 작업물은 주얼리류와 비교가 안 되는 넓은 면적이었다. 긴 선을 그어야 함에 따라 일정한 결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짧게 움직이면 자국이 끊겼고, 길게 움직이면 끝에서 방향이 틀어지는 곡선이 되었다.


핸드피스를 더 짧게 잡았다. 시작할 때는 손가락으로 선을 그리고, 마무리는 팔을 써서 자연스럽게 떨어뜨리니 직선이 되었다. 긋고, 살피고, 다시 그었다. 금속이 갈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사포를 몇 번 교체하여 600방으로 바꾸었다. 거칠게 긁히던 느낌이 부드럽게 문지르는 저항으로 바뀌었다. 표면의 질감이 고르게 변했다.


연마를 마무리하고 빛 아래에서 돌려 봤다. 가느다란 선들이 한 방향으로 나 있었다. 작업대 위에 내려놓자 표면이 일정한 결을 띄우며 빛났다. 완성된 작품을 씻고 키친타월로 닦아냈다.


선생님이 작은 종이에 두 가지 액체를 몇 방울씩 짜 놓고 이쑤시개로 천천히 섞었다. 점성이 올라간 혼합물을 뒷면의 직사각형 홈에 바르고 자석을 넣었다. 홈 안에 정확히 자리 잡았다. 자석이 묻힌 뒷면이 노란색과 은색의 두 가지 색으로 빛났다.


“오늘은 건드리지 마세요. 내일까지 굳힌 다음에 사용하세요.”


마그넷을 가방에 넣고 다음 작업물 준비를 시작했다. 이전에 선생님에게 구상한 바를 얘기했던 펜던트였다.


납작한 펜던트는 양면이 있다. 각 면에 다른 내용을 표현하고, 때에 따라 돌려서 걸 수 있는 기능을 생각했다. 두 면에 들어갈 내용은 상반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기분에 따라, 표현하고 싶은 분위기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봤다. 내가 찾은 것은 낮과 밤이었다.


연습장을 펼쳤다. 세로로 긴 타원형을 그렸다. 손바닥 위에 올렸을 때 가운데에 들어올 크기를 떠올렸다. 긴 쪽이 3.5센티미터가 되도록 실제 크기를 그렸다. 상단에는 별도의 고리를 붙이지 않고 몸체를 관통하도록 구멍을 내기로 했다. 끈이 지나갈 구멍 주변으로 여유를 두려면 어느 정도 두께가 필요했다. 단면 두께를 약 7밀리미터로 적었다.


낮은 쨍쨍한 태양을, 밤은 지면과 함께 보는 밤하늘을 생각했다. 태양은 프레임 전체에 동그란 몸체의 일부와 내리쬐는 햇살을 선으로 채웠다. 밤하늘은 소설 '어린 왕자'의 삽화를 떠올렸다. 둥그스름한 지면 위에 별이 몇 개 뜬 밤하늘로 표현했다.


왁스를 꺼냈다. 조각펜으로 스케치와 비슷한 타원을 왁스 표면에 그었다. 덩어리를 왼손으로 잡고 실톱으로 가장자리를 잘라냈다. 타원의 외곽선보다 여유를 두고 천천히 잘랐다. 줄로 바꿔 잡았다. 울퉁불퉁한 타원을 다시 왼손에 잡고 그어 둔 선에 따라 부드러운 곡면이 나오도록 갈았다.


타원형이 잡히자 별을 넣을 면을 생각했다. 선생님과 얘기해 보니 별을 그리는 것은 많은 연습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선생님의 시범을 보고 요령을 들었다.


연습용 왁스판을 꺼내고 인두를 준비했다. 끝이 구부러진 송곳과 같은 모양이었다. 인두의 전원을 켜고 예열했다. 별을 그리기 위해서는 인두로 녹여서 그리는 데 사용할 왁스도 필요했다. 서랍을 열어 왁스 톱밥 속에 묻혀 있는 울퉁불퉁한 덩어리를 집었다.


인두로 왁스 덩어리를 찍었다. 저항 없이 쏙 들어가며 미세한 연기가 났다. 들어 올리자 뾰족한 인두 끝에 녹은 방울이 맺혔다. 먼저 왁스판에 그냥 방울을 올려 봤다. 인두 끝을 판에 살짝 꽂고 들어 올리자 쌀알보다 작은 반구가 생겼다.


별을 그리기 위해서는 양 끝이 뾰족한 선을 가로세로로 교차시켜야 했다. 왁스를 떠서 판 위에 반구 형태로 올리고, 그걸 양 옆으로 조금씩 쓸어내어 선을 그렸다. 작은 붓글씨를 쓰는 느낌이었으나, 왁스판 또한 인두에 녹는 재질이라 허공에 그리는 느낌이었다.


다시 선을 가로세로로 그어 봤다. 어떤 선은 배가 불렀고, 다른 선은 끝이 뭉툭했다. 인두를 왁스판에 지나치게 깊게 꽂으면 떠온 왁스 방울이 온데간데없이 표면 속으로 사라졌다. 손바닥 절반 만한 공간이 별 문양으로 가득 찼다. 왁스판과 타원형 왁스를 서랍 속에 넣고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화면을 보며 대화 목록을 위아래로 스크롤해 봤다. 목록을 보다 예전에 보던 대화방들의 제목이 보였다.


주제가 다양했다. 주얼리와 가죽공예의 기초적인 내용, 집에서 생산 가능한 워치스트랩 형태와 소재, 직접 기획한 주얼리 디자인, CAD로 설계할 예정이었던 생활소품들. 대화 내용은 하나같이 많은 고민과 실행계획이었다. AI는 각 주제들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보여주었고, 대화 로그에 시간은 나와있지 않았지만 모두 새벽까지 이어진 것이 기억났다.


대화방 하나를 택해서 처음부터 되돌려 봤다. 턱을 괴고 마우스 휠을 계속 굴렸다.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 한동안 글자들을 지켜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로 갔다.


실루엣_황동.png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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