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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 공방은 아파트 단지 내 상가 건물에 있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주변의 인테리어 사무실과 학원들 불이 꺼져 있고 조용했다. 공방 문을 열었다. 선생님에게 입실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필요한 전등만 켜니 평소보다 어두웠다.
인두 전원을 켰다. 뾰족한 끝이 달아올랐다. 이전 작업 때 묻은 왁스가 녹으며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다른 물건에 닿지 않게 주의하며 인두를 옆에 걸어 놓았다.
작업대 첫 번째 서랍을 열고 왁스 조각들을 둘러봤다. 십자 모양 별로 가득 찬 판과 동그랗게 뭉쳐진 덩어리를 꺼냈다. 줄을 쥐고 판 표면을 정리했다. 별들이 가루가 되어 무릎 위에 열어 놓은 서랍으로 떨어졌다. 왁스 가루 더미의 풍성함에 보탬이 되었다.
덩어리 왁스 조각을 왼손으로 집고 인두 끝으로 찍어 올렸다. 초록색 방울이 인두 끝에 맺혔다. 왁스 판으로 옮겨 표면에 선을 그리려는데 왁스 방울이 먼저 튀었다. 그림에 쓰던 방울보다도 훨씬 작은 것이었다. 인두의 온도조절기 스위치를 왼쪽으로 돌렸다.
다음 방울을 찍어 올려 왁스판에 놓았다. 점성이 있어 잘 떨어지지 않는 왁스 방울을 놓고 나니, 반구의 모양이 하단까지 일부 노출되어 구에 가까운 모양으로 높게 솟았다. 온도조절기를 오른쪽으로 조금 돌렸다.
이번에는 선을 그어 봤다. 방울을 찍고 좌우로 끌었다. 선이 길어지지 않고 중간에서 끊겼다. 반대 방향으로 다시 그으니, 선이라기보다는 물방울의 꼬리를 양쪽으로 보이도록 겹친 모양이었다. 위아래로 교차시키려 인두를 대자 중심부가 녹아 움푹 파였다. 한 번 숨을 고르고 의자를 끌어당겼다.
인두 끝을 덩어리에 더욱 깊게 찍었다. 들어 올리자 방울이 더 크게 달렸다. 새로운 선을 그었다. 선이 이어지는 듯하다가 중간에서 퍼졌다. 선 끝이 둥글게 말렸다. 왁스를 새로 떠서 같은 자리에 다시 올렸다. 이전 자국 위에 덧쌓인 왁스가 주변보다 높아졌다. 줄로 깎아 고르게 만들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여름에 시작한 별 그리기 수련은 선선해질 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창가로 가서 대로 맞은편 건물들을 봤다. 8차선 도로에 신호 대기 중인 차는 두셋이었다. 손님이 많던 꽈배기집은 불이 꺼져 있었다.
왁스판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수십 개의 시도가 판 위에 흩어져 있었다. 합격점을 줄 것은 네다섯 개였다. 나머지는 끝이 뭉툭하거나 가로세로 선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았다.
타원형 왁스를 서랍에서 꺼냈다. 태양을 그린 면을 봤다. 손가락으로 표면을 만지다가 다시 상자 안에 넣었다.
휴대폰을 켜고 이것저것 실행해 봤다. 친구들의 오늘자 근황, 추천 영상, 마케팅용 알림을 하나씩 확인하고 홈 버튼을 누르는 것을 반복했다.
조명을 끄고 공방 문을 잠갔다. 선생님에게 퇴실했다는 내용을 보냈다.
집에 돌아왔다. 가방을 내려놓고 서재 의자에 앉았다. 화면이 밝아지며 대화 목록이 나타났다. 스크롤을 내렸다. 여러 제목들이 지나갔다. 주얼리 관련 대화방, 가죽 관련 대화방, 3D 프린팅 설정에 대한 대화방.
어젯밤에 만든 대화방을 클릭했다. 지금까지 나눈 대화를 바탕으로 제품 출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내 첫 문장이었다. AI는 계속 맞장구쳤다. 마지막 내가 했던 말은 '오늘 집에 오면 마지막으로 실행 계획을 점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가 물을 한 컵 마셨다. 컵을 싱크대에 놓고 거실을 지나 발코니 쪽을 봤다. 작업 테이블 주변에 자 꽂이와 공구들의 윤곽이 어두운 가운데 보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대화 내용이 그대로 떠 있었다. 방 불을 끄고 침대로 갔다.
휴대폰을 집어 내일 일정을 봤다. 아침에 컨퍼런스콜이 예정되어 있었다. 알람 시간을 6시로 바꿨다. 화면을 끄고 천장을 봤다. 자세를 바꿔 옆으로 누웠다. 다시 등을 대고 누웠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간을 한 번 확인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대로 누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