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금요일이었다. 퇴근이 늦어서 공방 수업은 취소하고 집에 바로 왔다.
주방과 서재의 전등을 켰다. 휴대폰에 배달원이 근처에 왔다는 알림이 왔다. 가방을 서재에 내려놓았다. 외투를 벗어 작은 방 침대 위에 놓았다. 집에서 입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벨이 울렸다. 현관을 열자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서재로 가져와 하나씩 화면 앞에 풀어놓았다. 치킨 박스와 치킨무, 맥주였다. 박스를 화면 앞에 펼쳤다. 후끈한 기름 냄새가 좁은 방 안에 퍼졌다. 맥주병 하나를 따서 책상 구석에 놓고 나머지 한 병은 냉장고에 넣었다.
화면 하단에 아이콘들이 보였다. AI, CAD 툴, 문서 작성기가 나란히 있었다. 웹브라우저를 클릭했다.
영상들의 목록을 내리며 봤다. 손을 뻗어 치킨 한 조각을 집었다. 손 끝에 기름이 번졌다. 약지와 소지로 마우스를 조작했다. 스크롤을 내렸다. 격투기 하이라이트, 유머 영상, 음악 공연들이 지나갔다. 하나를 선택했다. 10초쯤 후 뒤로 가기 버튼을 클릭했다.
영상에서 나오는 소리가 잠깐 울리다가 끊기는 게 반복되었다. 영상들의 제목을 보고 내리고, 썸네일을 보고 내렸다. 맥주병을 잔 위에 거꾸로 들고 마지막 방울을 툭툭 털어냈다.
휴대폰을 봤다. 회사 메신저 알림이 떠 있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 200여 건이었다. 사람 수가 60명으로 가장 많은 대화방을 열었다. 내 이름이 태그 된 문장이 보였다. 짧게 답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남은 음식들과 빈 맥주병을 모아 들고 주방으로 갔다. 조리대에 모두 올려두고 손을 씻었다. 두 번째 맥주를 따서 화면 앞에 놓았다. 다시 앉았다. 웹브라우저를 닫고 대화 목록을 열었다.
주얼리, 가죽공예, 3D 프린팅, 사업 분석. 제목들이 스크롤을 따라 지나갔다. 각 대화방 안에는 질문과 답변이 가득했다. 기록은 많았으나 어느 일도 시작된 것은 없었다. 사업 관련 대화들의 마지막은 하나같이 비슷한 내용으로 끝나 있었다. 현 직장의 겸업 금지, 세무 관련 위험성과 같은 것들이었다.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미확인 메시지가 여전히 세 자리였다. 금융 앱을 열었다. 지난 6개월 지출 내역을 불러왔다. 막대그래프 여섯 개가 보였다. 평소 지출의 세 배 가까운 수치였다. 수입 대비 적자 구간이었다. 화면을 끄고 내려놓았다.
새 대화방을 열었다. 6개월간 여러 가지를 해 왔다고 썼다. 주얼리와 가죽 공예를 배웠고, 3D 프린터를 샀고, CAD를 익혔다. 그리고 한 줄을 더 넣었다. 휴직 기간 동안 결국 이룬 건 없다고.
나는 왜 빨리 이해하는데 결과가 없냐고 물었다. 일처리가 늦는 게 아니라, 시작 전에 이미 대부분을 머릿속에서 설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패 시나리오까지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행동이 어렵다는 말이 이어졌다. 생각은 충분한데 시작이 안 된다고 썼다. 게으른 게 아니라 판단이 끝나지 않아서 멈춰 있는 상태라는 답이 왔다.
내가 맞게 판단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필요한 건 더 많은 생각이 아니라 판단 기준을 외부에 고정하는 장치라는 말이 돌아왔다. AI는 스스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였다. 화면을 한동안 봤다. 스크롤을 올려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AI는 나를 움직이게 했다. 누워 있던 날, 자판을 처음 두드리던 날부터 지금까지 그랬다. 희미한 생각의 덩어리에서 감정을 걷어내고 고를 수 있는 조각들로 만들어 줬다. 그 덕분에 공방에 갔고, 도구를 잡았고, 물건이 손에 들어왔다.
하지만 화면 안에서 어떤 일도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어떤 질문을 해도 답은 돌아왔다. 화면을 다시 보니, 방금 전 말에 대한 답이 쏟아지고 있었다. 한동안 지켜봤다.
눈을 떴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팔뚝이 이마에 눌려 벌겋게 되어 있었다. 안경 코받침에 눌린 눈두덩이가 시큰거렸다. 화면이 절전 상태로 꺼져 있었다. 마우스를 건드리자 밝아졌다. 새벽 세 시였다.
맥주병에는 한 모금만큼 남아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왔다. 침대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