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주의(Eurocentricism)의 잔재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래 왼쪽 그림을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른 미치광이 화가 반 고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반면 오른쪽 그림 역시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찌르고 광기 어린 자화상을 그린 조선시대의 최북이라는 화백이었으나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흐와 최북 두 사람의 예술적 재능 내지는 우월성을 비교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왜, 우리에게 우리나라 사람보다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고흐가 더 익숙한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불과 생긴 지 4~50년이 안 되는 단어이자 개념 서구 중심주의(Eurocentricism). 사전적 의미로는 ‘유럽을 그 중심에 두거나 간주하는, 세계 문화 등에서 유럽 또는 유럽인의 최고 우월성을 상징하는 주의’로서 서구 근대사회는 전 인류사를 통틀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자만심을 엿볼 수 있다. 그나마 이런 개념이 생기게 된 것도 승승장구하던 서구 사회가 자성한 결과이지만, 이미 그 사상은 서구와 비서구간의 오랜 불평등한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관계가 역전되지 않는 한 돌이키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과학, 경제, 정치 혹은 사회제도는 객관적인 비교 분석이 가능할 수 있겠으나 문화는 상대적이며, 그 영향력은 조용한 파급력을 가진다. 위 두 그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저 세계화라는 현상으로 간과하기에는 우리의 주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 온오프라인 속 수많은 이미지들 또한 이런 현상을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무의식적인 서구 중심 세계관의 내면화 과정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있다가 전환기를 맞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진부한 논제이나, 타문화를 배척하고 우리 문화를 고집하자는 것이 아니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이상이나 취향이 강요된 것은 아닌지 잠시 환기해보고자 한다.
“예쁜 초상화나 세련된 풍경화는 내 것이 아니니 거칠더라도 영혼이 있는 그림을 그리겠다”라고 한 고흐나, 가난한 이에게는 선뜻 그림을 건네주다가도 트집 잡는 세도가 앞에서 “네까짓 놈의 욕을 들을 바에야”라며 스스로 눈을 찔러버린 최북. 정작 본인들은 이런 논란은 우습게 여기며 묵묵히 붓을 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