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사랑받고 싶었다 2

지민 (2)

by 여전히 나인

지민에게는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

처음에 그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묻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게 연인 유무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걸 직감했고,

결국 그에게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고백받게 되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지방에 살았다.

지민 말로는 '자신만 아는 지고지순한 여자'였다.


"오래 만나서 좀 질리기도 해서 말이야. 헤어지자고 한 번 했었는데, 손목을 그었지 뭐야."


지민은 이 가련한 여성을 내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나는 아무렴 괜찮았다.

나도 지민 외에 연락하는 남자가 여럿 있었으니까.





지민과 우리 집에 함께 있던 날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


"띵 - 동"


예감이 좋지 않았다. 나는 인터폰을 일부러 받지 않았다.


지민이 말했다.


"누구야?"


"나도 잘 모르겠어."


누군지 모를 그가 초인종을 다시 누르지 않았으면 했지만, 초인종은 다시 울렸다.


"띵 - 동."


지민은 인터폰을 직접 집어 들어 내게 내밀었다.


이야기 나눠 보니, 예전에 버스에서 번호를 물어봤던 남자였다.

몇 번 데이트한 사이였고, 그가 집까지 데려다준 적도 있었다.

날 진지하게 좋아하는 것 같아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기 버거워진 나는 연락을 차단했다.

연락이 안 되자 집을 기억해서 찾아온 것이었다.


내가 당황하자 지민은 인터폰을 다시 잡아채고는 말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다시 찾아오면 죽여버린다."


나는 이 상황이 당혹스럽긴 했으나, 한편으론 재미있었다.

지민의 귀여운 질투심을 끌어낸 작은 에피소드라 여겼다.

내가 지민의 여자친구를 이해하듯, 지민도 나를 이해해 주겠지 생각했다.





지민은 그렇지 않았다.

그 남자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하면서 알게 된 오빠, 같은 과 동기들, 간간히 연락 오던 전남자친구, 썸남 등 내가 자신 말고도 여러 남자와 연락하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민은 굉장히 분노했다.


지민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동안 손님으로 매장에 들른 뒤, 끝날 때까지 날 기다렸고, 일이 마치면 날 집으로 데려갔다.

학교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강의실 앞까지 날 데려다주었고, 수업이 끝나면 다시 데리러 왔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내 핸드폰을 들고 카카오톡에 뜨는 남자 하나하나를 캐물었다.


"이 새끼 못 보던 새낀데 누구야?"

"남자네, 차단해."

"누군지 대답 못 할 거면 내가 연락해 본다."



나는 지민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여러 번 확인하고 정리해 두었기에 진짜 내 마음을 나눠 갖고 있었던 몇몇을 다행히 들키지 않았지만 문제는 내 마음이 점점 더 지민에게 길들여진다는 데 있었다.


지민은 나를 자신만 바라보도록 교육했고, 나는 점점 더 지민 하나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지민은 이 마음의 위험성까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만을 바라보면 볼수록 나도 지민이 나 하나만을 원하길 바라게 된다는 것.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마음이 점점 지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진행될수록 내 사랑은 쉽게 변형되고 왜곡되었다.


나는 지민이 가엾고 사랑스럽다가도, 극도로 혐오스럽고 증오스러웠고, 다시 안쓰러웠고, 동시에 화가 났다.


우리는 자주 싸웠다.

지민은 변형되고 왜곡된 내 사랑을 탓했다.

그는 내가 분노를 표출할 때마다 자신에게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단 걸 다 알고 만난 것이 아니냐며 되려 화를 냈다.


지민은 내가 자신에게 굴복하기를, 자신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원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그렇게 하자고 다짐하다가도, 못하겠다고 도망쳤다가도, 다시 돌아왔다가도,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러 번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나는 지민을 보면서 날 보았고, 지민은 날 보면서 자신을 보았다.'

이것은 암묵적인 끈이었다.


나는 날 사랑해야 했다. 그래서 지민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지민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마다 내 친구들은 나를 욕했다.

첫 이별엔 지민을 함께 욕했지만, 이후 숱한 이별들엔 나를 욕했다.


"너, 여자친구 있는 새끼를 어떤 이유로든 이해하고 만난다는 것 자체가 미친년 인증이야, 알아?"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헤어질 수 없었다.


나도, 지민도 이별에 서툰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별을 하는 것보다 섹스가 쉬웠다.





우리는 싸우다가도 종종 섹스를 했다.

싸우는 도중에 느껴지는 서로의 숨, 열기는 우리를 달아오르게 했고 화해의 섹스는 늘 뜨거웠다.


지민은 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다.

자기 마음을 아프게 한 만큼 육체적 고통을 나에게 가하려 했다.

재회의 섹스에서는 더욱 그랬다.


지민은 내 몸을 모조리 컨트롤하길 원했다.

재회의 섹스에서 그는 나에게 '젖지 않을 것'을 명령했다.

젖지 않은 상태에서 그를 받아들이는 건 엄청난 고통이 뒤따랐다.


지민은 자신이 그런 고통을 내게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각인시키기 원했다.


하지만 고통은 금세 쾌락으로 바뀌었고, 지민은 그런 나를 더욱 때리고 농락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다만 그날이 좀 특이했던 건 지민과 헤어진 지 일주일이나 지난 때였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 재회하는 데 이틀 이상 걸린 적이 없었다.


일주일이 되도록 지민에게 연락이 없자 나는 그와의 '진짜' 이별이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이미 그와의 사랑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기에 이대로 지민이 떠나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헤어지고 나면 헤어짐을 암시하는 카톡 프로필을 올려두곤 했는데,

이는 뭍 남성들에게 '나 지금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아'라고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프로필을 바꿨다.


혼자가 된 나에게 가장 먼저 연락한 사람은, 지민을 만나기 전에 종종 만났던 썸남이었다.

나는 흔쾌히 그 애를 만났고 함께 술을 마신 뒤 집으로 데려와 섹스를 했다.

다음날 일정이 있었던 그 애는 새벽녘 집으로 돌아갔다.

사실, 그에게 다음날 일찍 일정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우리 집에 데리고 왔던 것이었다.

그 애와 섹스하고 잠까지 함께 자는 건 싫었다.





반쯤 잠이 들었을 때였다.

집 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곧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지민이었다.


지민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 공간에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았다.

지민은 날 깨워 앉혔다.


"일주일 동안 왜 연락 안 했냐? 딴 새끼 생긴 거지?"


나는, 지민이 무서워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는 대꾸도 않고 내 핸드폰을 빼앗았다.

핸드폰엔 썸남의 카톡이 와 있었다.


- 오늘 오랜만에 봐서 너무 좋았고, 곧 다시 보자.


지민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자신에게 읊으라고 명령했다.


"오늘 그냥 잠깐 본 거야. 맥주 한두 잔 마셨어. 진짜야..."


지민은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그 새끼한테 카톡해. 오늘 나랑 잔 거 좋았냐고. 언제 나랑 또 잘 거냐고."


겁에 질린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


지민은 분노했다.

분노에 찬 그는 이미 벗겨져 있는 내 몸을 거칠게 만졌다.

이미 피곤한 내 몸은 건조했다.


지민은 준비가 되지 않은 내 몸 안으로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

나는 신음 아닌 신음을 냈다.


지민은 날 보며 말했다.


"그 새끼랑 하고 나랑도 하니까 좋냐? 내가 소독해 주는 거야, 너."


그렇게 지민은 나를 능욕하며 내 신음과 고통을 즐겼다.





이후에 우리는 다시 사귀지는 않았다.

대신 가끔 만나 섹스를 했다.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아니, 아마 우리 모두 스스로조차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이별보다 섹스가 쉬운 사람들이었고,

사랑보다 결핍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꺼냅니다.

오래된 기억과 감정들을 지나, 여전히 나인 나로 살아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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