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대하는 나의 태도
남들은 이별을 어떻게 할까. 이별에도 정해진 '좋은 방식'이란 게 있을까.
그런 게 정말 존재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서툴고 어설픈 쪽에 속한다.
내가 이별하는 방식은 이렇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물리적인 단절이 찾아온다.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후회한다. 단절된 관계를 어떻게든 다시 잇고 싶어 한다.
하지만 또 어떤 이유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또 다시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미련을 갖고, 그리워하다… 결국 까먹는다.
'잊는다'고 하지 않고 '까먹는다'고 표현한 건, 그게 내 결심이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무심히 그렇게 흘러가는 거였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이별이 언젠지 떠올려 본다.
그건 다섯 살, 여섯 살쯤의 일이었다.
전희경 씨와의 이별.
...
전희경 씨, 내 친엄마다.
전희경 씨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말해줘서 아는 것들이 더 많다.
"너희 엄마는 이렇게 생겼었지."
"너희 엄마는 이런 성격이었다."
내가 직접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은 단 하나의 장면뿐이다.
외출 전이면 꼭 드라이기 빗으로 앞머리를 동그랗게 말던 그녀.
나는 그 모습을 거울 너머로 구경하던 아이였다.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던 하얀 거울. 그 속에 비친 동그란 앞머리.
그게 내가 기억하는 전희경 씨다.
왜 이 장면만 기억에 남았을까.
아마도, 어느 날 불현듯 내 얼굴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 것 같기 때문이다.
흰 거울 안으로 그녀의 치장을 구경하던 어린 내가, 그녀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를 떠났다.
내 생일이 지나고 얼마 안 된, 초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날이 참 좋았다.
삼일아파트 5층. 양쪽 베란다 창을 열어둔 거실엔 시원한 바람이 흘렀다.
나는 거실에 있었고, 부모님은 방에서 싸우고 있었다.
방 문은 닫혀 있었고,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싸움을 멈출 수 있을까.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심했다.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냥 다 내 잘못이야. 싸우지 마."라고 말하자.
결심이 늦었다.
내가 방 문을 열기 전, 전희경 씨가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의 손엔 커다란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렇게 전희경 씨는 집을 나섰다.
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그녀를 뒤쫓았다.
전희경 씨는 큰 키만큼이나 걸음도 빨랐다.
그녀는 도망치듯 빠르게 걷다가도 몇 번이고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엄마! 엄마!’ 부를까도 싶었지만, 왠지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숨차게 뛰었다.
보는 눈이 많았다. 누가 봐도 집을 나가는 엄마, 엄마를 붙잡는 아이였다.
전희경 씨는 결국 멈춰 섰고, 사람이 드문 구석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말했다.
"하영아, 이렇게 맨발에 팬티만 입고는 엄마랑 같이 못 가. 엄마가 생일 때 사준 해바라기 원피스 있지? 그거 입고 와. 엄마 여기 있을게. 원피스 서랍 어딘지 알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해바라기 원피스를 입고 올 때까지 여기 그대로 있어달라고 몇번이고 당부했다.
엄마는 걸음이 너무 빠르니까.
나는 다시 집으로 뛰었다. 전희경 씨를 따라 맨발로 뛰어온 그 길보다 빠른 지름길이었다.
단숨에 달려 도착한 집엔 아빠가 있었다. 거실에 소반을 펴 놓고,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빠가 말했다.
“하영아, 가지마. 여기 있어.”
나는 단호하게 아빠에게 이별을 고했다.
“안 돼. 엄마가 해바라기 원피스 입고 오라고 했어. 갈 거야.”
나는 해바라기 원피스를 입고 다시 엄마에게로 뛰었다.
되돌아간 그곳엔, 엄마는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리 찾아도, 그녀는 없었다.
나는 그제서야 크게 그녀를 불러 보았다.
"엄마!"
그래도, 그녀는 없었다.
돌아가야 했다.
삼일아파트 5층으로, 내가 이별을 고한 아빠에게, 다시 돌아가야 했다.
무서웠다.
아빠가 날 혼낼까 봐, 아빠도 없을까 봐.
나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피가 났다.
집엔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여전히 거실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바람도 여전히 시원했다.
나는 조용히 거실에 앉았다.
아빠는 말없이 내 손끝의 상처와 맨발의 까진 부분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없다.
까먹었다.
아마 전희경 씨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다, 또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까먹었을 것이다.
이게 내 이별의 시작이었다.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그러다 지치면 다시 무뎌지는 것.
그리고 언젠가 이름조차 입에 올리지 않게 되는 것.
그렇게 나는 이별을 배웠다.
그리고 그 방식이 지금껏 내 삶을 따라다녔다.
정리되지 않고, 덧나고, 그리워하다 까먹는 방식.
나는 아직도 이별이 서툴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그냥 그때처럼, 해바라기 원피스를 입고 뛰고 싶은 마음이 된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꺼냅니다.
오래된 기억과 감정들을 지나, 여전히 나인 나로 살아가며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