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에 게으른 '트레이더 조'가 국경 없는 팬덤을 거느린 이유
트레이더 조(Trader Joe's)는 마케팅에 있어서 만큼은 이상하리만큼 느리고 소극적이다.
그들이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마케팅 채널은 매장에 비치된 종이 소식지 ‘피어리스 플라이어(Fearless Flyer)’가 전부다. 심지어 플라이어에는 화려한 사진 대신 깨알 같은 글씨로 제품의 스토리텔링을 빽빽하게 담아낸다. 아날로그 그 자체이다.
모든 유통업체가 온라인 몰과 앱, SNS 마케팅에 집중하는 흐름 속에서도
트레이더 조는 자체 온라인몰도 운영하지 않고, SNS 마케팅도 열정적이지 않다.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은 설립 50주년이 되던 2017년에야 겨우 개설됐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트레이더 조는 온라인상에서 늘 화제의 중심에 있다.
매번 화제가 되는 트조 가방뿐 아니라, 시즌마다 신상품이 나오면 사람들이 앞다퉈 제품 사진을 찍고, SNS에 리뷰를 공유한다.
미국은 물론 미국 밖에 거주 중인 팬들 사이에서도 트레이더 조 가방과 신상품은 화제이다.
정작 유통사는 마케팅에 별 힘을 들이지 않는데, 국경을 넘나드는 팬덤이 생기고 사람들 사이에서 브랜드 상품이 계속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레이더 조에서만 살 수 있는 트레이더 조 PB 제품은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다. 그 자체만으로도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한정된 기간에만 판매하고 상품 교체 주기도 빠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가장 먼저 공유하고 사 먹어보고 싶다는 조급함 갖게 한다.
덕분에 사람들은 "트조 가을 시즌 필수템", "트조 뷰티 신상품 리뷰" 등의 정보를 자발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한다.
제품이 단순한 '구매 대상'을 넘어, 이야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콘텐츠'가 되는 것이다.
트레이더 조 PB 상품의 감각적인 패키지 디자인 역시 팬덤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PB 상품 특유의 투박함 대신 세련된 디자인을 입혀, 그 자체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하다.
실제로 내가 운영 중인 스레드(Thread) 계정에서도 트레이더 조 추천 게시물은 늘 반응이 뜨겁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제품마다 콘셉트가 뚜렷하고 특징이 명확해 콘텐츠로서 '말할 거리'가 풍부하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나만 알고 있는 숨은 꿀템’을 소개하고, 이에 공감하는 팔로워들과 소통하는 과정은 단순한 쇼핑을 넘어선다. 이러한 상호작용 자체는 즐거운 놀이가 되며, 트레이더 조라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경험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
트레이더 조 매장은 밝고 활기차다. 직원 수가 많아 고객이 직원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크루 멤버(Crew member)'라고 불리는 직원들은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언제나 살갑게 고객을 맞이한다.
계산할 때도 정성스럽게 쇼핑백에 모든 물건을 담아주고, 다시 카트에 실어준다. 정성 그 자체이다.
트레이더 조는 직원 복지와 근무 환경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업계 평균보다 20~30% 높은 급여를 지급하고, 건강보험과 유급 휴가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러한 근무 환경이 직원들의 진심 어린 서비스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고객의 서비스 경험을 극대화한다.
사람은 기분 좋았던 경험을 반복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기분 좋은 기억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기록, 공유로 이어진다.
"트조 다녀온 날"을 기록하고 싶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트레이더 조 가방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긴 줄을 서고, 신상품 소식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찐 팬들을 보며 일부에서는 "It’s a cult(이건 거의 종교다)"라는 농담 섞인 표현을 던지기도 한다.
실제로 트레이더 조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깝다고 불릴 만큼, 압도적인 충성도를 자랑하는 브랜드다.
이들의 팬덤은 단순히 구매에 그치지 않고 자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팬들은 자신이 애정하는 제품이 단종 위기에 처하면 온라인에서 자발적으로 서명 운동을 벌이거나 의견을 모으고, 고대하던 제품이 재입고되면 '쟁여두기' 인증샷을 공유하며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한국의 일반적인 유통 업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하고 강력한 유대감이다.
트레이더 조는 광고로 소비자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는다.
대신 독보적인 상품과 인간적인 매장 경험을 통해 소비자가 스스로 브랜드의 전도사가 되게 만든다.
그 결과 구축된 견고한 팬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인 마케팅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
물론 트레이더 조의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모든 소비자에게 정답은 아니다.
온라인 배송의 편리함과 효율을 중시하는 소비자에게 매장 방문을 고수하는 정책은 쇼핑의 피로감을 주는 요소다. 또한, '아는 사람만 즐기는' 듯한 강한 팬덤 문화는 대중적인 고객층으로 확장하는 데 걸림돌이 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모든 유통사가 효율과 알고리즘을 쫓을 때, 트레이더 조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고 '사람 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라는 본질에 집중한다.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의 진심이 계속되는 한, 팬들의 자발적인 애정 또한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트레이더 조의 숨겨둔 형제 ‘알디(ALDI)‘에 대해서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