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 기부, 리셀 문화가 만든 거대한 중고 생태계
‘이벤트의 나라’인 미국에 살면서 굿윌(Goodwill) 스토어는 나의 탈출구가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거의 매주 드레스코드가 있는 학교 행사에 당황했다.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는 기본이고, 80년대 레트로 데이, 도트 데이, 어글리 스웨터 데이까지 이어졌다.
딱 봐도 하루만 입고 말 옷. 그런 옷을 매번 새로 사기엔 부담이 있었다.
그럴 때 내가 찾는 곳이 바로 굿윌(Goodwill) 스토어다.
미국 굿윌은 기부받은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미국 최대 규모의 트리프트 스토어(Thrift Store)다.
한국에도 굿윌 매장이 있지만 사회적 기업 성향이 강하고 아직 그 매장수가 적다. 그래서 안 쓰는 물건이 생기면 굿윌보다는 당근마켓을 먼저 떠올리는 것이다.
반면 굿윌은 미국인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인들이 이사를 하거나 대청소를 하고 정리할 물건이 생기면 반드시 들리는 곳이 굿윌이다.
굿윌은 미국과 캐나다에 3,3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 매출은 약 70억 달러(약 9조 원)에 달하는 기업 수준의 규모를 갖춘 비영리 조직이다.
굿윌 매출의 절반은 의류에서 나온다.
그리고 매출이 가장 높아지는 시기는 바로 10월 할로윈 시즌이다. 미국에서는 할로윈 코스튬을 DIY나 중고 매장에서 준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나 같은 부모들이 굿윌을 찾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시기 굿윌은 아예 ‘할로윈 전용관’을 꾸며 코스튬부터 소품, 홈 장식품까지 쏟아내는데, 미국인들의 독특한 놀이 문화가 굿윌의 거대한 대목을 만들어낸다.
굿윌은 무언가를 사지 않고 구경만해도 시간이 훌쩍 간다. 심지어 액자에 원래 주인이었건 사람의 가족사진이 그대로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미국인들의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긴 굿윌의 물건들은 구경하는 것먼으로도 꽤 재미있는 일이다.
어느날 굿윌의 빼곡한 선반 사이에서 레녹스 빈티지 찻잔 세트를 발견한 적이 있다.
세트당 4.99달러 , 흠집없이 상태도 좋아서 네 세트를 집어 왔다.
나중에 중고거래 플랫폼을 확인해 보니 실제 가치는 구매 가격의 7배에 가까운 제품이었다.
이 예상치 못한 득템의 짜릿함은 동묘 시장에서 보물을 발견한 기분과 비슷했다.
과거의 굿윌이 저렴한 물건을 제공하는 곳이었다면,
지금의 굿윌은 보물을 찾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누군가에게는 효용이 다해 버려진 물건이
나의 ‘안목’이라는 필터를 거쳐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과정.
그 보물찾기 같은 즐거움이
사람들을 굿윌로 불러 모은다.
굿윌에 기부된 물건들은 가치에 따라 분류된다.
상태가 최상인 명품은 ‘굿윌 부티크(Boutique)’나 온라인 경매로 이동하고,
일반 매장에서 일정 기간 판매되지 않은 물건들은 ‘굿윌 더 빈(The Bins)’이라 불리는 아웃렛으로 향한다.
더 빈에서는 무게(파운드) 단위로 물건이 판매된다.
장갑을 끼고 산더미 같은 물건 속에서 ‘인생템’을 찾는 리셀러들의 모습은 가히 치열하다.
굿윌은 단순한 중고 매장을 넘어 리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굿윌은 처음 종교적인 기관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종교와 무관한 비영리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안 쓰는 물건을 기부하고 굿윌은 그 물건을 판매한다. 그리고 그 수익으로 소외된 계층의 일자리와 교육을 지원한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200만 명 이상이 도움을 받고, 매년 약 10만 명 이상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어 자립에 성공한다.
우리가 기부한 옷 한 벌이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잇는 소중한 일터가 되는 셈이다.
미국인들의 강력한 소비력은 역설적으로 굿윌의 탄탄한 기반이 된다.
사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물건으로 대체되어 버려진 멀쩡한 물건들이 굿윌의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굿윌의 비즈니스 모델은 참 묘하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절약을 위해 쇼핑객이 모여들고, 경기가 좋아지면 소비가 늘어난 만큼 양질의 기부 물품이 쏟아져 들어온다.
어떤 경제 상황에서도 성장의 동력을 찾는 이 독특한 구조가 굿윌을 미국 최대 규모의 비영리 리테일 조직으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기존 세대뿐 아니라 미국 소비 문화를 이끄는 젠지(Gen Z)세대에게도 트리프팅(Thrifting, 중고 쇼핑)이 힙한 소비 방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튜브와 틱톡에는 ‘Thrift with me’ 영상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산더미 같은 옷 더미 속에서 보석 같은 빈티지 아이템을 발굴하는 과정은 인기 브이로그 장르가 되었다.
단순히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보지 못한 가치를 발견해 내는 자신의 ‘안목’을 증명하는 문화적 유희가 된 것이다.
물론 이 거대한 선순환 구조에도 그림자는 있다.
기부라는 이름의 무책임한 쓰레기 투기나, 리셀 열풍으로 인해 물건 가격이 올라 정작 저렴한 물품이 절실한 이들이 소외되는 현상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다.
1. '재테크'가 되는 굿윌 물품 기부
미국 거주자라면 기부 후 받는 영수증을 꼭 챙기자.
기부 물품은 ‘공정 시장 가치(FMV)’ 기준으로 연말 세금 신고 시 공제 대상이 된다. 버리는 물건이 세금을 줄여주는 작은 재테크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이 꾸준히 굿윌에 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 기부 금액이 $500을 넘으면 세부 목록 작성이 필요하므로 기부 전 사진을 미리 찍어두면 편하다.
2. 굿윌 온라인몰(ShopGoodwill.com)을 이용하라
미국 여행이나 지인을 통한 구매 기회가 있다면 ShopGoodwill.com을 활용해 보자.
전국 굿윌 지점이 명품, 귀금속, 희귀 빈티지 등 가치가 높은 물건을 선별해 경매로 올리는 곳이라 오프라인보다 ‘대어’를 낚을 확률이 높다.
포켓몬 카드 컬렉션부터 10,000불이 넘는 다이아 반지, 벌크로 된 악기류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단, 낙찰과 배송까지 시간이 걸리므로 여유 있게 이용하는 것이 좋다.
실제 굿윌에서 구매한 빈티지 제품을 한국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 사례도 흔하다.
3. ‘부자동네’ 굿윌을 공략하라
굿윌 쇼핑의 핵심은 매장 위치다.
기부 물품은 장거리 이동 없이 대부분 해당 지역 매장에서 먼저 판매되기 때문에, 부유한 주거 지역일수록 고가 브랜드와 새 제품을 만날 확률이 높다.
또한 주말 대청소 후 기부가 몰리는 영향으로 월·화 오전에 물건이 대량 입고되는 경우가 많다. 보물을 찾고 싶다면 이 골든 타이밍을 노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