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자라는 중입니다

육아는 결국, 그 무해한 웃음을 지키는 연습 같다.

by Still Na 여전히 나

“드니야, 이걸 엎지르면 어떻게 해. 엄마 힘들잖아.” “드니야, 대체 이걸 왜 안 먹는 거야. 한 입만 먹어봐. 한 입만. 응?” “드니야, 왜 안 자는 거야. 빨리 자야지.” “드니야, 드니야, 드니야…”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어쩌면 수백 번도 넘게 부르는 이름. 사랑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절박하기도 한 이름. 그렇게 나는 하루 종일 드니를 부르며 산다.


예전에 누군가 말했다. “아기랑 엄마가 단둘이 오래 있으면, 엄마는 아기의 무기가 된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의 무게를 안다. 사랑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통과해야 비로소 ‘엄마’가 된다.


드니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기본권과 존엄성 모두를 잃은 인간 같았다. 수면권도, 식사권도, 휴식권도 없는 하루. 아기가 자는 틈에 숨을 고르려 하면 곧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끓여둔 라면은 식어버려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불어 터졌다. 나는 그때 내 존재가 사라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어디에 있지?’라는 질문이 입안에서 맴돌았지만, 답할 틈조차 없었다. 신생아에게는 나의 슬픔을 위로해줄 시간도, 여유도 허락되지 않았다. 아기가 울면 나도 울었다. 그 시절의 하루는 생존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15개월이 된 드니는 요즘, 조금씩 소통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물”이라고 말할 수 있고, 싫은 일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확실히 의사를 표현한다. 예전보다 훨씬 수월해졌는데도, 이상하게 하루는 여전히 복잡하다. 밥을 거부하거나, 물을 엎지르거나, 장난감 상자를 뒤엎는 일은 매일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속에서 천천히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나는 스스로를 참을성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육아를 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나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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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인(忍) 자를 마음속에 수십 번 새기며 심호흡을 반복한다. 아기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감정은 이성보다 늘 앞서간다. 그럴 땐 잠시 눈을 감고 열을 세고, 다시 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냥 치운다. 화를 내는 대신, 시간을 흘려보낸다. 화낸다고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날 밤, 미안함이 더 깊어진다. 그 찜찜한 감정이 싫어서, 나는 이제 웬만하면 화를 삼킨다. 대신 심호흡을 배웠다. 그때마다 드니는 나에게 세상 가장 무해한 웃음으로 답했다.


그 웃음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때 묻지 않았고, 계산되지 않았다. 조건 없는 그 표정 하나면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린다. 내 이름을 부르며 웃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어떤 철학의 문장보다 그 미소가 더 명확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표정이라는 걸, 나는 그제야 배웠다.


세상 무해한 웃음 앞에서는 모든 화도, 피로도, 다 녹아내린다. 그 웃음은 단순하지만 강력하고, 순하지만 깊다. ‘그래, 괜찮아.’ 그 말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이렇게 단순하고도 강력한 감정이 또 있을까. 아이의 웃음은 나를 무장해제시킨다. 온갖 분주함 속에서도 다시 마음을 정화시킨다.


나는 여전히 매일 심호흡을 한다. 오늘도, 아마 내일도. 하지만 그때마다 드니의 웃음을 보면 이게 바로 행복이라는 걸 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지 않기 위해 배우는 인내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배우는 인내.



육아는 결국, 그 무해한 웃음을 지켜내는 연습 같다. 아이는 세상을 배우고, 엄마는 사랑을 배운다. 그 배움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아이의 세상을 넓혀주는 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드니의 웃음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고른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또 하루를 보낸다. 어쩌면 육아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나를 길러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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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 아기와 함께 살아가다 보니 깨닫는다. 아이가 하루하루 눈에 띄게 자라는 만큼, 나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드니는 걸음이 단단해지는 속도로 세상을 배워가고, 나는 그 아이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인내를 배우고 마음을 단단히 다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선생님이자 제자이고, 내가 드니를 키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드니가 나를 더 많이 키우고 있다.


15개월차인 드니는 여전히 아기지만, 동시에 더 이상 아기만도 아니다. 그리고 15개월차 엄마인 나 역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초보 엄마다. 실수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가끔은 무너질 것 같다가도 또다시 일어난다. 육아 기록을 보면 드니가 처음 뒤집은 날, 처음 걸은 날, 처음 이름을 부른 날 등 아이의 성장 기록만 빼곡하다. 하지만 정작 나의 성장 기록은 아무도 적어주지 않는다. 울음을 참고 하루를 견뎌낸 날들, 화내지 않기 위해 수십 번 숨을 고른 밤들, 피곤 속에서도 웃을 이유를 찾아낸 순간들. 그런 건 기록되지 않지만 분명 내 안에서 자라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린다.
“드니가 15개월이구나. 그리고 나도 15개월차 엄마구나.”


엄마라는 이름은 아이와 함께 자란다. 아이가 한 뼘 자랄 때마다, 엄마도 마음이 한 뼘 커진다. 아이가 넘어지며 균형을 배우듯, 엄마도 실수하며 사랑의 모양을 배워간다. 드니가 처음 걸음을 떼던 그 떨림처럼, 나 역시 엄마로서의 길을 여전히 더듬더듬 걸어가고 있다. 서툴지만, 진심이기에 괜찮은 길이다.


육아는 결국 완벽함을 목표로 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에 맞춰 성장해가는 과정이다. 드니의 세상은 넓어지고, 나의 마음은 깊어지고. 아이는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딛고, 엄마는 그 뒤에서 조용히 단단해진다.


15개월 아기와 15개월차 엄마인 나는 지금도 나란히 자라는 중이다. 아이는 몸이 자라고, 나는 마음이 자란다. 아이는 세상을 배우고, 엄마는 사랑을 배운다. 그 배움의 모양이 다를 뿐, 우리는 같은 날을 함께 지나며 서로를 키워내고 있다.



엄마도 자라는 중이다.
그리고 그 성장은 아이의 미소처럼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한 변화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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