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속에서도 나는 계속 육아를 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같은 개월 수의 아기를 둔 엄마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자연스레 SNS를 켜게 되고, 그 안에서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기웃거리게 된다. 아기를 이용한 재밌는 가족 놀이, 발달에 맞춘 셀프 장난감 만들기, 다이소 몇 가지 물건으로 해결하는 육아 꿀팁까지—요즘 SNS에는 백 가지, 천 가지의 육아 콘텐츠가 넘쳐난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그 작은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조금만 더 보고 일찍 자야지.”
그렇게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어느새 창밖이 새벽빛으로 물들어 있고, 나만 잠들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있었다. 아기와 떨어진 잠깐의 시간에도, 나는 스마트폰이라는 또 다른 작은 세계 속에서 여전히 육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알고 보면 그 시간들이 내 젊음의 일부를 조용히 데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드니가 15개월이 된 지금, 지나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보면 나는 어느 순간부터 조금 지쳐 있었다. 나를 위해 쓴 돈이 언제였는지,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산 날이 언제였는지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장바구니에는 늘 아기 간식, 아기 신발, 유아식 재료가 차곡차곡 쌓여 갔다.
아기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최소한으로 사려고 다짐해도 ‘최소한’이라는 기준 자체가 무너지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온다.
아기는 순식간에 자라 옷도 신발도 금방 작아지고, 계절이 바뀌면 또 새로 장만해야 한다. 작은 천 조각 같은데도 어른 옷보다 몇 배는 비싸고, ‘아기용’이라는 단어 하나 붙는 순간 가격이 훌쩍 뛴다. 처음엔 사이즈도 몰라 헤매며, 마치 시험공부하듯 검색에 검색을 거듭했다. 겨우 맞춰 샀다 싶으면 어느새 작아져 한 계절도 채 못 입히고 다시 장바구니를 채웠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작은 노하우가 생겼다. 한 사이즈 크게 사서 다음 해를 기약하는 법, 소재를 보고 계절 내내 입힐 수 있는 아이템을 고르는 법, 입었을때 드니가 싫어하는 디테일을 피해가는 법(카라 티셔츠나 혹은 택이 안 쪽면에 달린 옷 등등)
초보 엄마에서 조금씩 경험치를 획득해가는, 그런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곳곳에는 늘 ‘나’라는 존재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의 취향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쇼핑 알림창은 모두 드니의 물건뿐이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일이라고, 엄마라면 이렇게 사는 거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라는 질문이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니가 낮잠 자는 사이 잠깐 숨을 돌리며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해 커피 한 잔을 내려 마셨다. 그 짧은 여유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엄마가 된다는 건, 한 아이를 키우는 일인 동시에 잃어버렸던 나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구나.”
육아는 매 순간 새로운 숙제를 던지고, 나는 그 숙제를 풀어가며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었다. 돌아서면 또 찾아오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오늘도 서툴지만 분명 자라고 있다. 드니의 하루가 빠르게 성장하듯, 나 역시 내 속도로 천천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SNS 속 다른 엄마들의 화려한 모습보다 오늘의 나와 드니의 작은 변화,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이 삶의 결을 조금 더 바라보려 한다. 그 작은 결들이 모여 언젠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챕터가 될 것임을, 나는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나와, 조금 더 자란 드니를 기록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이 기록들이 앞으로의 나를 지켜주는 작은 등불이 되어줄지 모른다.
드니의 작은 몸이 자라는 동안 그만큼 엄마의 인내심과 감정선, 체력, 멘탈도 동시에 자라난다. 아기는 절대 혼자 크지 않는다. 아이의 하루는 성장이고, 엄마의 하루는 버티기이자 또 배우기다. 드니는 어제까지는 엉금엉금 기더니 오늘은 소파를 넘어 뛰어내리고, 어제까지는 옹알이를 하더니 오늘은 “물!” 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아이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무리 사진을 많이 찍어도 그 하루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기록하려는 순간 이미 다음 장면이 지나가 있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면서 가장 자주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나는 멈춰 있고 싶은데, 아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나도 멈출 수 없다. 아이가 뛰면 같이 뛰고, 아이가 웃으면 같이 웃고, 아이가 넘어지면 나도 마음으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그렇게 하루가 또 지나간다. 아기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밥을 먹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심지어 엄마가 화장실에 가는 30초의 순간조차도. “잠깐만”이라는 단어는 아기의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기에게 지금은 지금이고, 나중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지금’에 머문다. 식어가는 밥, 미지근해진 커피, 해야 할 일들은 미뤄진 채 멈춰 서 있지만, 그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드는 단어 하나 — “엄마!”
우리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속도로 자라난다. 드니가 세상을 알아가는 만큼, 나는 사랑의 모양을 배워간다. 아이는 몸이 자라지만, 엄마는 마음이 자란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조금 더 자란다는 것. 아기가 내 하루를 부수고 다시 세우는 동안, 나는 그 속에서 진짜 ‘나’를 다시 배워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느리고 서툴러도 사랑이 있으면 된다는 것,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순간에도 결국 나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걸 나는 드니와 함께 자라며 배웠다.
15개월 아기와 15개월 차 엄마인 나는 지금도 자라는 중이다. 아이는 세상을 배우고, 나는 아이와 함께 나를 배운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함께 조금씩 더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