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법
드니가 태어난 이후로 나는 자연스럽게 ‘주연’에서 ‘조연’으로 이동하듯 살아왔다. 하루의 중심은 언제나 드니였고, 나는 그의 세계를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떠받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처음엔 이 변화가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이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워져 더 이상 이전의 나를 떠올리는 일조차 드물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도 다시 ‘주인공’이 되는 날이 찾아왔다. 바로 내 생일이다.
생일이라니.
매일이 드니의 생일처럼 그의 모든 순간을 축하하며 살았던 내게 이 말은 어쩐지 유효하지 않은 단어처럼 느껴졌다. 정작 ‘나의 날’이라고 생각하니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 어색했고,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드니가 태어나기 전에는 남편이 작은 선물을 건네면 설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며 원하는 것도, 필요한 것도 많지 않다. 무엇을 받고 싶은지 떠올려보면 내 머릿속엔 늘 드니의 장난감, 책, 교구들이 먼저 스쳐 지나간다. 남편은 생일 한 달 전부터 “뭐 갖고 싶어?” 하고 묻지만, 나는 대답을 망설이고 결국 말문이 막히곤 한다. 그만큼, 나를 위한 물건을 떠올리는 일이 서툴러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건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시간, 하고 싶었던 일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속도로 해낼 수 있는 시간. 그래서 남편에게 생일선물 대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얻은 선물은 ‘2박 3일 서울 혼자 여행’.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지만, 내가 원했던 건 목적이 아니라 여유였다.
서울에 도착해 천천히 걸으면서, 오랜만에 빠르게 흐르는 도시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당연했던 풍경과 소리들이 새삼스럽게 마음에 들어왔다. 조용한 카페에서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먹는 일조차 벅차게 행복했다.
그러다 우연히 들어간 곳이 굿윌스토어였다. 안 쓰는 물건을 기부하면 그 수익이 장애복지를 위해 사용된다는 이야기를 직원에게 듣는 순간, 마음이 깊게 울렸다. 서울에는 이런 곳이 많지만 내가 사는 시골에는 없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매장 한쪽에서 조용히 생각했다. “집에 있는 물건들도 언젠가 이곳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겠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집을 정리할 때마다 ‘비워내는 일’을 단순한 청소가 아닌 ‘순환의 시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언젠가 굿윌스토어에 기부할 물건을 따로 챙겨두는 버릇도 생겼다.
이후 나는 TV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기저귀 한 장을 아껴야 해서 젖은 기저귀를 버티며 지내는 할머니, 일곱 살에 결혼을 강요받아 학교에 가지 못하는 소녀, 신발 하나가 망가져 공부를 포기해야 했던 소년. 그 이야기들은 예전 같았다면 그저 ‘어려운 상황이네’ 하고 넘겼을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도저히 눈을 떼기 어려웠다.
드니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작은 생명 하나가 이렇게나 소중한데, 누군가는 이 당연한 존중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불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을.
그 감정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며 읽게 된 책들 속에는 안타깝게 살아내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아이의 마지막 뜻을 이어 장기기증을 결정한 부모들의 이야기도 자주 등장했다. 그 모든 장면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게 되었다. “나라면 어떨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나를 조금씩 바꾸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기부와 생명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금액은 크지 않지만 드니의 이름으로 매달 후원하는 곳이 생겼고, 헌혈과 조혈모세포 기증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생을 이어주는 일, 누군가에게 다시 살아갈 시간을 선물하는 일. 이 모든 것이 드니에게 남기고 싶은 세상의 모습과 이어져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 생일을 다시 챙기고 싶어졌다는 사실.
그건 단순히 나를 위한 축하가 아니라, **나를 더 큰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하나의 작은 출발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니가 준 변화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나를 조연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나를 확장시키는 또 다른 주연이었다.
아기를 키우는 일은 나를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더 크게, 더 깊게 확장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며 나 또한 새로운 삶을 배우는 일
그리고 그 배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