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잃은 엄마가, 다시 시간을 배우기까지

내가 나를 가장 괴롭히던 방식

by Still Na 여전히 나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손목 통증이나 출산 부위의 아픔 같은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었다. 몸의 통증은 참을 수 있었다. 잠깐 아프다 지나가기도 했고,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신적인 고통은 달랐다. 매일 조금씩,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갉아먹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웠던 건 엄마로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시간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드니와 함께하는 하루. 잠깐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그건 곧장 집안일이나 육아 준비로 채워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되었고, 그 괴로움은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사람, 남편에게 고스란히 향했다.


물론 남편도 일을 하느라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드니와 24시간을 붙어 있는 나로서는 바깥 공기를 쐬고 싶었고, 운동도 하고 싶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었다. 그런데 퇴근하는 남편이 편의점에 들러 자기 먹을 것만 사 오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상했다. 그 장면이 그렇게까지 큰 의미를 갖는 건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남편이 밉기만 했다. 그땐 그냥 이유 없이 미웠다.


우리는 시골에 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조차 차로 4km를 가야 한다. 도시에선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드는 그 공간이, 내겐 마음먹고 계획해야 하는 외출이었다. 게다가 나는 편의점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건 오로지 빵. 그런데 그 빵 하나 사러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부터 나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아기띠를 하고 혼자 나갈 수도 있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다만 그 시절의 나는 의지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운이 없었다.

어머니와 아기의 일상.png

나는 원래 집순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자연스럽게 집순이가 되었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한다는 건 말 그대로 집 한 채를 들고 이동하는 일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기저귀, 물티슈, 분유, 젖병, 물, 장난감, 턱받이….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기저귀 가방 하나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차 없이 그래서 나는 ‘못 나간 게 아니라, 안 나갔다’. 선택처럼 보였지만 그 짐을 들고, 아기까지 안고 나서는 건 고군분투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사실은 체념에 가까웠다.


시골에서 아기를 키운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일이었다. 읍내 한 번 나가려면 왕복 20km. 도시에서는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도 네이버 지도에선 도보 6시간으로 표시되는 곳이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아기 키우면 좋겠다고 말한다. 공기 좋고, 조용하고, 자연이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그 말은 늘 거기까지다. 실제 생활의 불편함까지 상상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기가 어릴 땐 몰랐다. 그런데 아기가 크기 시작하자 현실이 더 또렷해졌다. 아플 때마다 소아과를 타 도시로 가야 했고, 돌이 지나자마자 드니는 돌치레를 했다. 이제는 병원에 한 번 다녀오면 3일치가 아닌 5일치 약을 받아온다. 거리가 멀다는 이유 하나로, 삶의 리듬은 그렇게 달라졌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 밤 남편에게 말했다. “나도 내 시간이 필요해.” 남편은 늘 비슷한 대답을 했다. “나는 시간을 줄 수가 없어. 나도 일하고 오잖아. 네 시간은 네가 만들어야 해.” 그 말이 그땐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 시간을 만든단 말인가. 하루가 이렇게 빠듯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나 자신을 가장 혹독하게 부리고 있었다. 이유식을 직접 만들고, 갈고, 얼리고, 다시 만들었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그게 좋은 엄마라고,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내 시간을 내가 갉아먹는 방식이었다. 밤 8시 이후 통잠을 자던 드니 덕분에 남편은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는 시간을 가졌지만, 나는 그 시간에 이유식을 만들며 혼자 분노를 키워가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렇게까지 모든 걸 혼자 해내려 했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시판 이유식도 시도해보고, 드니가 어떤 걸 잘 먹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집에서 해주기 어려운 재료가 들어간 음식은 전문 업체의 도움을 받았다. 그제야 숨이 트였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시간을 만드는 일은, 무언가를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기로 선택하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내 시간을 만든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에너지를 덜 써도 되는 곳에서는 덜 쓰고, 나 스스로를 소모시키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걸. 지금도 매 끼니 드니에게 음식을 해주지만, 어린이집에 간 시간만큼은 나도 나를 돌본다. 그리고 하원 후의 시간은 모든 걸 드니와 함께 한다.


빨래를 개는 것도 드니 앞에서 한다. 이제 막 16개월이 된 드니는 내가 갠 빨래를 전부 흐트러뜨린 뒤, 자기만의 바구니에 다시 넣어둔다.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일을 두 번 하는 셈이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난다. 요리를 할 땐 의자를 옆에 두고 드니를 세워 과정을 보여준다. 내가 상상했던 로망은 조용히 지켜보는 모습이었지만, 현실은 인덕션 위로 올라오려는 아이를 막느라 바쁘다. 그래도 즐겁다.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옆에서 지켜보는 드니에게 하나씩 설명하듯 말하다 보면, 내가 뭔가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아 괜히 뿌듯해진다. 예전엔 모든 걸 혼자 해내려 했기에 시간이 없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모든 걸 함께하려 하니 시간이 훨씬 빠르게, 그리고 훨씬 따뜻하게 흐른다.


혼자 고군분투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함께 살아내는 육아를 배운다.


어쩌면 육아란,
완벽하게 해내는 일이 아니라
함께 버텨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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