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여행 그리고 짐,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또 배운다.
드니와 여행을 가는 날이면, 모처럼의 가족여행이라는 설렘보다 먼저 '짐부터 챙겨야 한다'는 현실이 떠오른다. 신이 나서 캐리어를 펼쳐도 짐 싸는 일은 좀처럼 끝이 나지 않는다. 아기에게 필요한 물건들은 어김없이 큰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우고, 어른 짐은 기내용 캐리어에 아주 아주 소박하게 담는다. 그래야 유모차와 기저귀 가방 같은 다른 짐들을 함께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몸은 이미 한 차례의 체력을 써버린 기분이 된다.
아기와 함께 비행기를 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번도 ‘생각한 대로’ 흘러간 적이 없다. 아기가 언제 울지, 언제 갑자기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혼 전에는 비행기 안에서 우는 아기 소리를 들으며 ‘좌석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기의 울음보다 그 곁에 앉아 난감해하던 엄마의 얼굴을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요즘은 비행기에서 드니 또래의 아이를 안은 엄마를 보면 괜히 동지애 같은 감정이 생긴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돌아보면 배려라는 감각이 아직 자라지 않았던 사람 같기도 하다.
이제 나는 아줌마다. 그것도 15개월의 아기를 키우는 아줌마.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주변을 살핀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일지, 불편해하는 사람일지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아무도 뭐라고 한 적은 없지만, 아기를 안고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마음은 자연스럽게 작아진다. 드니가 100일쯤 되었을 때 처음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있다. 그땐 오히려 지금보다 수월했다. 분유만 먹던 시절이라 준비할 것도 많지 않았고, 잠도 비교적 잘 자줬다. 하지만 15개월이 된 지금은 다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걸 힘들어하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싶어 하는 나이다. 그래서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그래서 비행기를 탈 때는 드니가 좋아할 만한 간식과 온갖 새로운 장난감을 챙긴다. 드니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분산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자는 마음이다. 공항까지 가는 것만 해도 큰 결심이 필요한데, 수속을 하고 탑승구를 지나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이미 체력은 바닥을 친다. 여행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하루를 다 살아낸 사람처럼 몸이 무거워진다. 그렇게 또 한 번 배운다. 아기와의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만큼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짐 싸는 일은 조금씩 수월해졌다. 여행용 파우치에 아기 세제, 주방세제, 로션 등을 소분해 두고, 여행 때마다 그 ‘패키지’를 챙긴다. 완벽하게 짐을 쌌다고 생각해도 꼭 한두 개는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늘 드니다. 드니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슬쩍 가져가 자기만의 구석진 공간에 숨겨둔다. 덕분에 일을 두 번, 세 번 하게 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이 싫지 않다. 여행 갈 짐을 같이 싼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작은 손으로 하는 ‘도둑질’이 고작 여행용 파우치라는 사실이 너무 귀엽다. 몰래 숨겨두는 행동 하나에도 아기의 순수함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한 번은 제주도를 가는 날, ‘이것도 필요할까? 저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작 2박 3일 일정인데도 여행용 아기 울타리 침대까지 챙겼다. 누가 보면 제주 한 달 살이라도 떠나는 줄 알았을 것이다. 이유식도 휴대용 아이스박스에 아이스팩을 잔뜩 넣어 준비했다. 현지에서 사 먹을까 고민도 했지만, 코딱지만 한 100g 이유식에 붙은 가격표를 보고는 쉽게 결정을 못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드니에게 더 잘해주기 위해서라기보다, 내 시간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끼는 일’에 집착하며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유식 하나 덜 만들고, 잠이나 더 잘 걸 그랬다.
드니가 크면서 해외여행도 시작됐다. 드니의 102일, 6개월, 15개월. 총 세 번의 해외여행이었다. 102일 때는 분유 먹이고 재우느라 바빴고, 6개월 때도 잠에 맞추는 게 전부였다. 예전에는 기억도 못 할 아기와 여행을 가는 부모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 아기를 위해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부모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는 걸. 여행을 좋아했던 사람에게 집에서 아기만 보고 있는 시간은 또 다른 고통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기에, 드니와의 여행은 힘들어도 분명 필요했다. 어차피 드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분명히 기억할 테니까.
드니가 15개월에 일본을 갔을 때는 렌트를 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가까운 나라니 밥은 잘 먹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드니를 아직도 다 안다고 착각한 엄마의 판단이었다. 밥을 거부하는 드니를 달래느라 식당에서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고, 유모차를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진땀을 뺐다. 낮잠 타이밍은 엉망이 되었고, 밥까지 안 먹으니 체력은 더 빠르게 소진됐다. 즐거운 기억도 많았지만, 힘든 순간엔 결국 싸우게 된다. 남편과 별것도 아닌 일로 다투고, 화해하기까지 두 시간.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 때문에 싸우고 아이 때문에 화해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늘 그렇다. 해외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은 둘뿐인데, 왜 그렇게 다퉜는지 돌아보면 웃음만 나온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드니가 내내 몸부림을 치자 남편은 다음엔 무조건 좌석을 하나 더 예약하자고 했다. 원숭이 같은 기질을 가진 아이를 두 시간 동안 가만히 앉혀 두는 건 애초에 무리였다. 그렇게 한동안 비행기 여행은 안 간다고 선언했던 남편은, 불과 한 달 만에 또다시 항공권을 보고 있다. 인간은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그래서 더 인간다운지도 모른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고통과 즐거움 중 무엇이 더 클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즐거움이 조금 더 크기를 바라본다.
아기와의 여행은 늘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모든 고생 끝에 남는 건, 이상하게도 다시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이다. 아이가 크면 기억도 못 할 장난감 대신, 우리는 아마 또다시 아이가 기억도 못 할(?) 여행을 선택할 것이다. 장난감 사줄 돈으로 여행 가자고 하는 내 남편. 뭐가 맞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드니를 이해하고 배워가며, 또 한 번의 여행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아기와 여행을 간다는 건, 집 한 채를 들고 이동하는 일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