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기대고 싶지만 어려운 밤

우리는 왜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조심스러울까

by Still Na 여전히 나

밤이 되면 하루가 비로소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따라온다. 아이가 잠들고 집 안이 조용해지면, 낮 동안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고개를 든다. 그럴 때면 문득 남편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길었는지, 얼마나 버텼는지,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무너질 뻔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막상 그 얼굴을 마주하면,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남편도 나처럼 하루를 살았다. 밖에서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책임을 짊어지고 돌아왔다.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기에, 내가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 ‘나만 힘든 건 아니잖아.’라는 생각이 입 안에서 맴돌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기대고 싶었던 마음은 말이 되지 못한 채, 조용히 접힌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쉬웠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했고,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투정부릴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엄마’가 아니었고, 나 자신으로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 이후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내 힘듦은 늘 누군가의 힘듦과 비교되었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삼켜야 할 이유가 생겼다. 특히 밤이 그렇다. 낮에는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느라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없다.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울음을 달래며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밤이 되면 그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이때가 가장 남편에게 기대고 싶은 순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어려운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한때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줄 거라 믿었다. 내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얼마나 외로운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남편도 하루 종일 밖에서 일하고 왔다는 걸 알기에, 내가 먼저 불평하거나 기대는 것이 미안하게 느껴졌다. 머리로는 너무 잘 알면서도, 막상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이유 없이 토라져 말을 아끼는 날이 잦아졌다. 싸운 것도 아니고, 안 싸운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 그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은 오늘 하루 겪은 일을 나에게 조심스럽게 풀어놓곤 했다. 일하며 힘들었던 일, 지쳤던 순간들. 하지만 그 말을 받아줄 여유가 당시의 나에게는 없었다. 나는 그저 내 힘듦만 알아주길 바랐고, 그 외의 감정들은 들을 공간이 없었다. 남편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내 눈치를 보게 되었고, 그렇게 우리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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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종종 말한다.

“오늘 어땠어?”

그 질문은 분명 배려에서 나온 말인데, 나는 그 앞에서 자주 멈칫한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고, 다 말하자니 너무 길고, 줄여서 말하자니 내 마음이 빠져버린다. 결국 “그냥 그랬어”라는 말로 하루를 정리한다. 말하지 않은 감정들은 잠자코 내 안에 쌓인다. 사실 나는 남편이 해결해주길 바라는 게 아니다. 뾰족한 답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래서 힘들었겠다”라는 한 문장, 혹은 말없이 위로해주는 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런 기대조차 스스로 접어버릴 때가 많다. 괜히 말 꺼냈다가 서로 더 지칠까 봐, 감정이 부딪힐까 봐, 혹은 이해받지 못할까 봐. 어떤 밤에는 각자의 피로 속에서 등을 돌린 채 잠이 든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하루가 너무 달라, 마음까지 닿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난다. 그럴 때 나는 혼자서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을 각자 최선을 다해 살았구나.’라고.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기대는 건 약함이 아니라 용기라는 걸. 그런데도 그 용기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너무 가까워서, 너무 많이 함께라서, 오히려 조심스러워지는 관계가 부부라는 걸 요즘 실감한다. 이해해주지 않는 남편이 미운 줄만 알았지, 내가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는 돌아보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을 미워하는 감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미움은 분노로 바뀌었고, 사소한 일에도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는 날이면 마음속에서 이유 없는 화가 자라났고, 그 화는 더 큰 화를 불러왔다. 그때 깨달았다. 이 관계는 누가 바뀌어주길 기다린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내가 변하지 않으면, 이 끝은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는 걸.


그 이후로 조금씩 연습을 시작했다. 아주 작은 말부터 꺼내보는 연습. “오늘 좀 힘들었어.” “나 오늘 많이 지쳤어.” 해결책을 바라지 않고, 이해만 바라는 말들을 조심스럽게 건네는 연습이었다. 그 과정에서 남편 역시 서툴지만 자기 방식으로 곁에 남아주었다. 지금의 나는 남편이 들어오면 먼저 말한다. 고생했다고, 잠깐 쉬라고.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 할 말들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남편의 노력도 있었고, 부부 상담을 받으며 서로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시간도 있었다. 연애할 때는 아무 문제 없던 우리가,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비로소 진짜 부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는 완벽하게 기대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무게를 조금씩 나누는 관계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떤 날은 내가 더 많이 기대고, 어떤 날은 내가 버팀목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밤을 건너고, 또 다음 날을 맞이한다. 오늘 밤도 나는 여전히 기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예전보다는 덜 외롭다.


같은 밤을 건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밤은 조금 덜 무겁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로, 나는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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