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서 개헤엄을 배우는 중입니다
드니가 태어나기 전부터, 집 앞 마당에는 늘 길고양이들이 드나들었다. 처음엔 그저 지나가는 존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작은 생명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배 속에 드니를 품고 있던 시기였다.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며 살다 보니, 눈앞의 또 다른 생명들에도 마음이 자연스럽게 쓰였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되기 전이었지만, 이미 돌보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뱃속의 드니와 마당의 고양이들을 함께 돌보는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남편과 둘이 살던 집에 고양이들이 더해지자, 일상은 예전보다 훨씬 다채로워졌다. 웃을 일도, 놀랄 일도 많았다. 특히 고양이의 임신과 출산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경험은 나에게 꽤 큰 울림을 주었다. 먹이를 챙기고, 몸 상태를 살피고, 조심스레 거리를 유지하며 기다리는 시간들. 나 역시 임신 중이었기에, 고양이가 겪는 변화들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생명을 품고, 낳고, 끝까지 책임지는 일은 생각보다 조용하고 고된 일이었다. 생명을 돌본다는 건 애정을 주는 일인 동시에, 나 자신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마당에 자주 오던 검은 고양이는 두 마리였다. 남편이 좋아하는 검은색 액체인 콜라에서 이름을 따 ‘코카’와 ‘콜라’라고 불렀다. 그러다 어느 날, 콜라가 새끼를 데리고 나타났는데, 그중 한 마리가 어찌나 콜라와 닮았는지 마치 복사해 놓은 듯했다. 그 고양이에게는 검은색 과자 오레오에서 따 ‘레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코카와 콜라를 거쳐, 지금은 콜라와 레오와 함께 하루를 보낸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부터, 그들은 더 이상 ‘길고양이’가 아니었다.
길고양이들은 원래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다고 들었다. 방황이 일상인 존재들이라,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도 콜라와 레오는 매일같이 우리 집 앞을 지킨다. 집 안에서 함께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충분한 애착이 생겼다는 걸 느낀다. 내가 주방에서 드니의 밥을 준비할 때면, 두 고양이는 어김없이 창문 위로 올라와 서성인다. 마당 앞 밥그릇에는 사료를 두고, 주방 창문으로는 내가 고기를 조금씩 건네주는데, 그 ‘특식’의 맛을 알아버린 이후로는 하루의 대부분을 창문 앞에서 보낸다. 기다림이 일상이 된 모습이, 어쩐지 엄마가 된 내 하루와도 닮아 보였다.
덕분에 드니가 울거나 밥을 거부할 때면, 고양이들이 훌륭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고양이 볼까?” 하고 창문을 가리키면, 아이의 시선은 금세 바깥으로 향하고 울음은 멈춘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마당의 고양이들을 보여주었더니, 이제는 드니가 먼저 고양이가 자주 머무르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찾는다. 콜라와 레오는 그런 우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항상 마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특히 콜라는 개냥이에 가깝다. 애교가 많아서 사람이 가는곳 어디든 같이 따라오려고 하고 우리가 외출해서 돌아올때면 저 멀리에서 뛰어온다. 이 작은 생명체도 이제는 제법 ‘우리 식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생명을 돌보는 일이, 드니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조용히 스며들기를 바란다.
육퇴 후, 밤 공기를 마시며 마당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이 있다. 그럴 때면 콜라는 꼭 내 뒤를 따라온다. 걷다가 뛰고, 다시 멈춰 서서 나를 기다린다. 같이 산책하는 개냥이가 따로 없다. 출산한 지 17개월이 지나 겨울을 맞은 지금, 콜라도 나와 함께 살이 조금 쪘다. 예전엔 날씬했던 몸이 지금은 제법 통통해졌다. 겨울이 편한 건지, 아니면 우리 집이 편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모습이 괜히 정겹다. 물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날씬했을 때의 콜라가 나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서 더 그립다. 그리고 그만큼, 예전의 나도 그립다.
임신했을 때의 나는 ‘내 살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모든 음식을 합리화했다. 뱃속의 작은 생명은 든든한 핑계가 되어주었고, 그만큼 체중도 빠르게 늘었다. 임신 중 72kg까지 늘었던 몸무게는 출산 후 50kg까지 다시 내려왔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옷이 맞지 않는 일이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였고, 하루라도 빨리 운동을 하고 싶었다. 몸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엄마’ 말고 ‘나’로 숨 쉬고 싶었다. 출산 후 100일 동안은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손목이 아프고, 관절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 시간을 지나 조금씩 운동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편이라 집에서 운동 동작을 따라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오롯이 내기란 쉽지 않았다. 저녁 8시 17분, 육퇴 후에는 나 역시 쉬고 싶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본 뒤에는, 나를 위한 쉼이 절실했었다.
그러다 시간이 생기자 최근에 시작한 것이 수영이다. 물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운동처럼, 수영은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아직 한참 초보라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요즘은 ‘가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 매일 수영장에 가는 일이 기다려지고, 그 시간이 즐겁다. 가끔은 남편과 함께 가서 특급훈련이라며 개헤엄을 가르쳐주는데, 그 덕분에 나는 많이 웃는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물속에서 조금씩 배우고 있다. 큰 운동 효과를 기대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아이를 잠시 떠나 나를 위해 쓰는 이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드니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내 삶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려 애쓰고 있다.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나에 맞는 속도로 다시 살아가고 싶다.
육아는 수영과 닮았다. 물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리 공부해도 진짜를 알 수 없다. 출산 전의 육아 공부는 이론에 가깝고, 아이를 낳아 직접 겪는 경험은 전혀 다른 세계다. 사람마다 다르듯, 아이도 모두 다르다. 이번 생은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직 드니를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드니의 기질 검사에서 ‘대범한 탐험가 원숭이 유형’이 나왔다. 드니는 어디든 올라가고, 원래 길이 아닌 곳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만든다. 처음부터 육아 난이도가 높은 아이를 키우는 기분이지만 17개월 아기를 키우는 나는 아직도 초보 엄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유형도, 배영도 흉내 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나아가고 싶다. 처음부터 잘하는 엄마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저 드니에게 나는 바다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크고 완벽해서가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어서 안심이 되는 그런 바다로. 아직은 개헤엄밖에 못 치지만,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엄마로.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