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도, 병실의 새벽, 그리고 엄마가 배운 것들
아기가 아팠다.
열이 39도를 유지한 채로 닷새가 지나던 날, 결국 드니는 병원에 입원했다. 해열제를 먹이면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열. 그 사이 아기는 점점 기운을 잃어갔다. 밥을 먹지 않았다. 원래도 잘 먹지 않는 아이였는데, 아프니 더 그랬다. 밥을 안 먹으면 죽을 써서 줬고, 죽도 거부하면 바나나나 고구마 같은 부드러운 음식이라도 먹여보려 했지만, 드니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어른도 아프면 입맛이 없어서 죽조차 넘기기 힘든데, 아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자꾸 조급해졌다. ‘그래도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계속해서 나를 붙잡았다.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 맞은 주사 이후, 새벽 내내 드니의 체온은 34도를 맴돌았다. 저체온.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울렸다. 심한 경우 뇌 손상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병원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전혀 놓이지 않았다. 하필 병실은 1인실밖에 없었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아기가 쉽게 낫지 않아 입원은 3박 4일로 길어졌다. 아이가 아픈데 돈이 무슨 대수겠냐 싶다가도, 솔직히 말하면 병원의 1인실 환경은 너무 열악했다. 아기 병상 침대는 지나치게 높았고, 대범한 탐험가 타입인 우리 드니는 가만히 있질 않았다. 링겔 선은 수시로 꼬였고, 어느 순간에는 물어뜯다가 빠지기까지 했다. 처음 링겔을 꽂을 때도 쉽지 않았다. 고사리 같은 손에서 혈관을 찾느라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겨우 성공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말이 그제서야 느껴졌다.
아기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아프고, 자칫하면 정말 위험한 상황까지 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실감했다. 예전에 한 번, 드니가 집에서 무언가를 삼킨 것 같았던 적이 있다. 무엇을 삼켰는지는 확실하지 않았고, 불안한 마음에 병원을 향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한 시간 거리. 광역시의 큰 병원들을 찾아다녔지만, 그날 우리는 병원 뺑뺑이를 돌았다. 결국 119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고, “일단 아무 병원이라도 가보라”는 안내를 받아 다시 처음 병원으로 돌아갔다. 엑스레이를 찍었고, 다행히 눈에 보이는 이상은 없었다.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골든타임이 조금만 어긋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몰려왔다. 병원에서 말한 ‘큰 병원’이란 소아 위내시경이 가능한 곳이었겠지만, 우리는 그저 확인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알게 되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부모가 느끼는 공포는,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또다시 드니가 아팠다. 이번에는 후두염으로 시작해 폐렴 직전까지 갔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나는 이번만큼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지난 입원 동안, 옆에서 아이를 지켜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고 병원은 드니에게 지나치게 삭막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최대한 편안하게 지내며 치료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고, 2~3일에 한 번씩 병원을 오가며 상태를 살폈다. 그 사이 나도 감기에 걸려 골골댔지만, 아기가 아프면 엄마가 아픈 건 사치처럼 느껴진다. 엄마에게는 아플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가정보육을 하며 아이와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속으로는 몇 번이고 무너졌지만(?) 그래도 입원까지 가지 않고 이 정도 선에서 회복 중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려 애썼다.
입원했을 당시 병원에서 만난 엄마들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대부분 남편과 다투고 있는 눈치였다. 아기가 아프면 누구나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24시간 아이 곁을 지키는 엄마의 신경은 늘 곤두서 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무엇보다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병원은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고작 4일이었지만, 사람이 이렇게까지 피폐해질 수 있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드니에게 계속해서 항생제가 투여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입원하지 않았다면 저만큼의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제 막 돌 지난 아기에게 너무 가혹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너졌다. ‘내가 더 잘 돌봤더라면…’ 하는 후회가 밤마다 밀려왔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의 세계는 한없이 좁아진다. 병실, 체온계, 약, 아이의 숨소리. 그 안에서 엄마는 쉽게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잘못한 게 없어도,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다. 그래도 아이가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긴 시간은 이유를 얻는다.
돌치레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드니는 돌이 지나자마자 병원을 자주 찾게 되었고, 시골에서 타지역 도시로 소아과를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기는 자주 아프다. 오늘도 나는 완벽한 엄마는 아니다. 여전히 겁이 많고, 아기가 아프면 쉽게 무너진다. 새벽 내내 드니가 잠을 설칠 때면, 뜨거운 몸과 잦은 기침을 안고 그저 대신 아파주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안고 시간을 버티는 것뿐인데, 그 시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아픈 아이 곁을 지키며 지나온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될 것 같다. 이 시간이 모두 지나가면, 나는 오늘을 이렇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아팠던 밤, 엄마는 울 틈도 없이 아이 곁을 지키고 있었다고. 사랑은 언제나 그렇게, 조용하고 무겁게 흘렀다고.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