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며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왜, 왜, 왜, 왜…”
요즘 우리 집의 하루는 이 두 문장으로 시작해서 이 두 문장으로 끝난다. 드니는 하루 종일 나를 찾고, 나는 하루 종일 대답만 한다. 이쯤 되면 엄마가 아니라 콜센터 직원에 가깝다. 호출은 끊임없고, 대기 시간은 없으며, 업무 종료 시간도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 콜센터는 사랑으로 운영된다는 점 정도다.
드니는 지금 한창 말을 배우고, 이가 나고, 키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시기다. ‘엄마’라는 단어는 이제 입에 완전히 붙은 주문처럼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귀엽다. 정말 귀엽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소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하루에 수십 번을 넘어가면 마음 한구석이 슬며시 무거워진다. 귀엽기만 하지는 않다. 사랑과 피로가 동시에 쌓이는 감정은, 엄마가 되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아침잠이 많던 나는 드니 덕분에 완전히 새벽형 인간이 되었다. 알람이 필요 없는 기상, 그것도 아주 확실한 방식으로. 의도치 않게 시작된 미라클 모닝이다. 처음엔 ‘이건 내 인생이 아니야’ 싶었다. 나는 분명 밤에 강한 사람이었고, 늦잠은 나의 소중한 권리였다. 그런데 요즘은 새벽 공기를 맡으며 잠깐 창문을 여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매일 아침 드니의 아침밥까지 정성스레 차리는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부지런한 인간이 될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의 나도 좀 이렇게 키워볼 걸,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살던 시절엔 정오쯤 일어나 대충 끼니를 때우고, 늦은 오후쯤 카페로 향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늘도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별일 없는 하루가 가장 좋은 하루라고 믿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평화가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이었는지. 아무 준비 없이 외출할 수 있다는 것, 조용히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 내 리듬대로 하루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자유였는지 말이다.
지금은 카페 한 번 나가려면 전투 준비가 필요하다. 기저귀, 손수건, 턱받이, 떡뻥, 장난감, 여벌 옷까지 하나둘 챙기다 보면 어느새 가방이 아니라 작은 캐리어가 되어 있다. 카페를 가는데 왜 여행용 가방이 필요한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아이와 함께 나간다는 건 늘 그런 식이다. 목적지는 가까워도 준비는 장거리 여행급이다. 간신히 도착해도 커피를 조용히 마실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3분 남짓이다. 떡뻥을 주고, 물을 주고, 우유를 주는 사이 드니는 의자 밑을 탐험하거나 주변 테이블에 인사를 건넨다. 한 모금 마셨던 커피는 금세 식고, 나는 결국 다시 가방을 싸서 귀가 준비를 한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득 든 생각은 늘 같다. 나는 커피를 마시러 간 게 아니라, 해병대 극기 훈련을 다녀온 것 같다는 느낌이다.
낳아보기 전에는 몰랐다. 엄마의 하루가 이렇게 스릴 넘치는 일정일 줄은. 출산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이렇게 현실적인 문장일 줄도 몰랐다. 누군가의 하루를 책임진다는 게 이렇게 벅차고, 이렇게 체력 소모가 크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사실 결혼 전의 나는 딩크에 가까웠다.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아이를 온전히 돌볼 자신이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다고 생각했다. 주변의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그렇게 변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최대한 즐길 것 다 즐기고 늦게 낳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되는 삶’보다 ‘나로 사는 삶’이 훨씬 더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인생에서 드니가 빠진 삶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다. 엄마로서의 삶을 살며 여자로서의 삶을 잠시 잊은 지도 오래다. 예전엔 내가 뭘 입고, 뭘 먹는지가 중요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먼저 생각한다. 나 하나 덜 사고, 덜 먹어도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산다. 내가 이렇게까지 남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도 몰랐고, 내 인생이 이렇게 180도 바뀔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남편은 가끔 말한다. 출산 이후 내가 이렇게 많이 바뀔 줄 몰랐다고, 이렇게 좋은 엄마가 될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고. 사실 본인은 혼자 다 키워야겠구나, 어느 정도는 감내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런 내가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제 와서 출산 전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절대 돌아갈 수 없다고.
영화 〈어바웃 타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 주인공이 한 사건을 계기로 시간을 되돌렸다가, 자신의 딸이 아들로 바뀌어 있는 걸 발견한다. 그 순간 그는 엄청난 상실감을 느끼고, 딸을 되찾기 위해 다시 한 번 시간을 되돌린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그 장면을 그냥 지나쳤다. 감동적인 설정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드니와 함께 웃고 떠들고, 울고 안아줬던 이 모든 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을 전부 없던 일로 하고 다른 아이를 만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나라도 아마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되돌려 드니를 되찾으려 했을 것이다.
드니는 요즘 점점 자란다. 말이 늘고, 표정이 다양해지고, 조금만 안 보여도 울던 아이가 이제는 나를 향해 “엄마~” 하고 웃는다. 그 한마디면 그날의 피로가 조금은 씻겨 내려간다. 출산 후 내 몸은 여전히 무겁지만, 마음은 그전보다 가볍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엄마의 체력을 빼앗아 가는 대신, 마음을 채워준다.
이따금 거울을 보면 예전보다 조금 지쳐 있고, 조금 덜 단정한 내가 보인다. 머리는 늘 대충 묶여 있고, 화장은 선택 사항이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얼굴이 싫지 않다. 완벽하진 않지만, 어제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낸 얼굴이다. 조금은 달라졌지만, 지금의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살아 있는’ 얼굴을 하고 있다.
엄마가 되자마자 ‘나’는 사라진 것 같았다. 나의 시간, 나의 리듬, 나의 욕심까지도 잠시 내려놓아야 했다. 예전에는 뭐든 잘하고 싶었다. 일도, 삶도, 관계도. 그런데 지금은 안다. 다 잘할 수는 없다는 걸. 대신 지금의 나는, 오늘 하루 드니를 무사히 돌보고, 웃게 만들고, 잠들게 한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배워가고 있다.
오늘도 수십 번 불리고, 수백 번 대답했다. 때로는 지치고, 또 때로는 웃었다. 그리고 하루가 끝나면 늘 같은 생각이 남는다. 그래도 오늘도 잘 해냈다고. 밤중에 곤히 잠든 드니를 보며 속삭인다.
“드니 덕분에 엄마도 많이 컸다, 오늘 하루 동안.”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