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잃어버린 뒤에야, 시간을 배우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부쩍 관심이 많아진 단어가 있다. 시간관리.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분명 하루 24시간인데, 아이에게 할애하고 나면 정작 내 몫으로 남는 시간은 생각보다 너무 적다. 온전히 아이에게 에너지와 힘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아이가 잠든 이후에 내 시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시간은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그마저도 자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야만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시간이다. 출산 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내 시간’이 지금은 누군가를 위한 돌봄 시간 속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버렸다.
어쩌다 아이 옆에서 함께 잠들어버린 날에는, 새벽에 헐레벌떡 놀라서 깨곤 한다. 그리고는 내가 잠들어버린 시간을 괜히 아까워하며 자책한다. 오늘 하루,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는 잘 돌봤는데, 정작 나는 돌보지 못한 느낌(?). 그래서 급하게 아이 방을 빠져나와 이제야 내 시간을 제대로 써보겠다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면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고, 나는 무한 스크롤의 늪에 빠져 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눈은 충혈되어 있고, 몸은 더 피곤해져 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잘 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이건 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해낸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다. 분명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막상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시간을 쪼개고 관리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요즘 들어 더 실감한다. 그래서 시간관리에 관한 영상도 찾아보고, 관련 책도 제법 읽었다. 하지만 방법을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지금 내가 매일 해보려고 애쓰는 루틴은 운동, 공부, 독서, 그리고 유튜브 편집 이렇게 네 가지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공부를 이제서야 시작했다. 늦깎이 만학도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다. 공부에는 끝이 없고, 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넘쳐난다. 그래서 좌절감을 느낄 때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멈추지 않는다. 그냥 한다. 두려움에 빠져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결국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어제보다 멍청해지기 전에>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마치 나를 두고 쓴 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는 진짜 금방 뇌가 굳어버리겠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출산 이후, 머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육퇴 이후 매일 조금씩이라도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정말 너무 피곤한 날에는 스킵한 날도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기준을 낮췄다. 5분이라도, 그것마저 안 되면 3분이라도 괜찮다. 슬금슬금법을 적용한다. 지금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작은 습관이 쌓여 결국 큰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노력의 바탕에는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피곤에 쩔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보다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도전하고 배우려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아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만은 아니다. 나 스스로 나를 떠올렸을 때 만족감을 느끼고 싶었고, 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성취감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루틴은 여전히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한 달 수영권을 끊어놓고도 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나에게는 ‘꾸준함’보다 ‘유연함’이 필요하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일일권으로 바꿨다. 가고 싶을 때 가고, 못 가는 날에는 집에서 케틀벨 운동을 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집 앞 마을을 사부작사부작 걷는다. 매일 운동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로 최소 기준을 낮췄다. 못 해도 3분이라도 하자. 운동화 끈을 매고 문밖에 나서는 순간, 몸은 생각보다 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지쳐서 돌아오더라도, 어쨌든 한 건 한 거니까.
스트레칭은 하루 중 틈나는 대로 한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도 예외는 없다. 그럴 때마다 드니는 짧은 다리로 엄마의 요상한 자세를 따라 하려고 한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가끔 드니를 보면, 귀여운 척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닐까 싶다. 운동을 하면 뇌가 더 활발하게 움직이고, 공부 효율도 좋아진다는 이야기는 뇌 과학 책에서 자주 접했다. 공부가 목적이라면,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몸을 위한 일’이라기보다 ‘뇌를 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다. 실제로 많은 성공한 사람들도 아무리 바빠도 운동만큼은 꼭 챙긴다. 퇴근 이후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새벽 시간을 추천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아기를 키우며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말 내 시간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독서는 도서관에 다니는 재미에 빠지면서 다시 시작됐다. 예전에는 집에 책도 많고 전자책 구독 서비스도 있어서 굳이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직접 고르고, 밤마다 한 권을 끝내는 경험이 너무 좋았다. 누군가가 수년간 쌓아온 생각과 지식을 단 몇 시간 만에 내 안으로 들여오는 기분은 언제나 짜릿하다. 예전에는 책을 사는 행위 자체가 즐거웠다. 제목이 마음에 들면 나에게 주는 선물처럼 책을 샀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의 대부분은 이미 도서관에 있다. 수만 권의 책이 있는 공간에서, 나는 아직 백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래서 도서관에 있는 책 천 권을 읽기 전까지는 최대한 책을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사는 곳은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읍내 도서관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책을 빌리고, 그 김에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는 그 과정이 이제는 나에게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하루를 잘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결국 내가 바라는 건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어제보다 더 멍청해지지 않는 엄마가 되는 것이다. 출산을 하며 동시에 내 뇌도 같이 출산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지만, 아직 내 생각과 호기심을 멈추기에는 너무 아깝다.
유튜브 편집은 드니의 아기 때부터의 성장 기록을 조금씩 업로드하는 일이다. 나중에 드니가 장가갈 때 틀어줄 영상들이기도 하다. 거창한 목적보다는 하루하루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그 순간이 잊히지 않도록 기록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시작했다. 아기 사진과 영상은 매일 쌓이는데, 막상 파일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아 어딘가에 쌓아두기 일쑤였다. 휴대폰은 매일같이 용량 부족 알림을 보내왔고, 핸드폰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산다고 매일 집 안 물건은 비우면서, 정작 디지털에서는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한 맥시멀 라이프를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습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디지털에도 미니멀 인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육퇴하고 하는 일이라고는 고작 드니의 하루를 편집하는 일인데, 분명 육퇴를 한 것 같은데 또다시 드니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이 기록들이 언젠가는 분명 의미 있는 순간으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엄마로서 사는 인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시간을 투자해 아이에게 온전히 나눠주는 일, 한 사람을 키워낸다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우리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싶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내 꿈을 미루지는 않기로 했다. 계속 배우고, 계속 도전하고, 나만의 루틴을 매일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그렇게 그렇게, 아이와 함께 자라나는 젊은 엄마로 남고 싶다. 오늘도 나는 아이를 돌보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한 사람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 굴착기(Excavator)와 레미콘(Mixer Truck)을 영어로 외우게 될 줄은 몰랐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굴착기였다.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