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 작은 기적, 엄마가 되고 나서 저녁이 달라졌다

평범한 저녁이 우리를 가족으로 만든다

by Still Na 여전히 나

저녁 준비를 시작하는 시간은 늘 비슷하다. 해가 조금 기울고 집 안 공기가 서서히 느려질 즈음, 싱크대 위에 올려둔 채소를 씻고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으며 오늘은 드니에게 무엇을 요리해줘야 할지 고민한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하루의 한 장면이지만 아이를 낳고 난 뒤부터 나는 이 시간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이제 저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하루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같은 공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요리를 하면서 나는 종종 생각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나는 어떤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는지, 아이에게 건넨 말들은 따뜻했는지 되짚어 본다. 불 위에서 국이 끓기 시작하면 내 생각도 같이 끓어오른다.


드니가 태어나기 전 나는 식사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먹었고 시간이 없으면 대충 넘기기도 했다. 혼자 먹는 식사는 늘 빠르게 끝났고 어떤 날은 무엇을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가곤 했다. 하지만 드니가 이유식을 시작하고 조금씩 식탁에 함께 앉기 시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같이 먹는 시간’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


드니는 여전히 서툴다. 숟가락을 제대로 쥐지도 못하고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보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음식이 더 많다. 손에 묻은 밥풀을 얼굴이랑 머리에 문지르기도 하고 의자에 기대앉아 웃으며 음식을 거부하기도 한다. 요즘은 한참 까부는 시기라 어른 의자에 앉아서 계속 이쪽저쪽 의자를 옮겨 다닌다. 예전의 나라면 분명 난감했을 것이다. 정리해야 할 것, 치워야 할 것, 닦아야 할 것들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모습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 서툰 손짓과 엉망이 된 식탁 위에서 나는 드니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식탁 위에는 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어떤 날은 드니가 처음 보는 채소를 먹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표정을 바꾸고, 어떤 날은 별 이유 없이 깔깔 웃는다. 그 웃음은 아주 짧지만 집 안 분위기를 단번에 바꾼다. 마치 누군가 조용히 조명을 켜는 것처럼 식탁 위 공기가 환해진다. 나는 그 순간을 볼 때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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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는 늘 완벽하지 않다. 반찬이 부족할 때도 있고 간이 맞지 않을 때도 있으며 아이 컨디션에 따라 식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 횟수는 아주 아주 많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완벽하지 않은 저녁일수록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드니가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웃던 날, 음식보다 물컵에 더 관심을 보이던 날, 갑자기 식탁에서 노래 비슷한 소리를 내던 날. 그 장면들은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고 누군가 기록해 두지도 않지만 나는 마음속 어딘가에 조용히 쌓아 둔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기적이라는 단어는 너무 거창하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멀리서 찾아오는 어떤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저녁 한 끼 속에서도 충분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낀다. 어제보다 조금 더 크게 웃는 아이, 어제보다 조금 더 능숙해진 손짓,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더 단단해지는 나. 그 변화들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분명히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식탁에 앉아 있으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천천히 정리된다. 드니가 낮잠을 자지 않아 힘들었던 순간도, 예상보다 길어졌던 집안일도,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흔들렸던 시간도 식탁 위에 조용히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따뜻한 밥 냄새와 아이의 숨소리가 채워진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하루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렇게 같은 식탁에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식탁 위에는 늘 작은 흔적들이 남는다. 밥풀이 붙어 있는 아기 의자, 물방울이 맺힌 컵, 급하게 내려놓은 숟가락. 예전의 나는 이런 흔적들을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 있는 시간의 증거처럼 느껴진다. 오늘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흔적이며, 오늘 드니가 웃었다는 흔적이고, 오늘 내가 엄마로 하루를 보냈다는 흔적이다.


아마 언젠가는 드니가 스스로 밥을 먹고 식탁에서 더 이상 음식이 흘러내리지 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의 저녁 시간을 조금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작고 사소한 순간들을 가능한 한 오래 바라보려 한다. 완벽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순간의 공기와 감정을 마음 어딘가에 남겨두려 한다.


저녁 식사는 여전히 평범하다.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서 나는 매일 작은 기적을 본다. 드니가 한 숟가락 더 먹는 순간, 눈을 마주치며 웃는 순간, 아무 말 없이 같은 공간에 앉아 있는 순간. 그 순간들이 모여 우리의 하루를 완성한다.


오늘도 나는 저녁을 준비한다. 아마 내일도, 그다음 날도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식탁을 차릴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시간이 단순히 하루의 끝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조용한 증명이라는 것을. 식탁 위의 작은 기적은 특별한 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저녁 한 끼 속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이 연재는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엄마의 마음도 함께 자라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아이처럼, 엄마인 나 역시 이 글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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