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관계 단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내가 생각해 왔던 가족의 의미는 단순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힘들 때 기댈 수 있으며, 기쁜 일에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기뻐해 주고, 슬플 때는 함께 슬퍼해 주는 관계. 적어도 가족 사이에서는 속임이나 기만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믿음은 무너졌다. 부모님과 나는 동생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었다. 동생은 직장업무를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했고, 몇 달간 거짓말이 이어졌다. 이후 사실이 드러났지만 본인은 연락을 끊고 책임을 피했다. 사과도 없었다.
동생은 대학 시절부터 무리한 대출과 연체로 부모를 힘들게 했던 전력이 있었다. 한동안은 평범한 삶으로 돌아온 줄 알았다. 나 역시 내 삶에 몰두하느라 깊이 개입하지 않았다. 다만 돈을 빌려줄 때만큼은 반드시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부모에게 여러 차례 당부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에 대한 신뢰로 별다른 확인 없이 송금했고, 곧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거짓말은 점점 앞뒤가 맞지 않기 시작했고,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 동생은 잠수에 가까운 태도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부모는 "정신 차릴 수 있는 기회를 마지막으로 줘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비슷한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음에도 여전히 기회를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는 이 가족과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법률구조공단 상담을 예약한 것도 나였다. 상담 과정에서, 부모가 입은 피해와 별도로 내가 직접 입은 피해는 형사적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가족인데 무슨 형사고소냐"며 나에게 화를 냈다. 정작 동생에게는 강하게 말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 장면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부모는 분명 피해자였다. 재산을 잃고, 빚을 떠안고, 신뢰까지 무너졌다. 그런데도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지지 않았다. 가해자라기보다 '자식'이었다. 벌을 주거나 책임을 묻기보다는, 살아 있기만 하면 다행이라는 체념이 먼저였다. 나는 그 구조가 숨이 막혔다. 몇십 년 동안 반복되는 피해와 가해의 경계보다, 혈연이라는 이름이 모든 판단을 덮어버리는 현실이 괴로웠다.
나는 부모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고, 세 달을 기다렸다. 부모는 나보다 현명할 것이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거라 믿었다. 동시에 나는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과거에도 부모와 동생이 갈등할 때 내가 한마디 하면 "너랑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들어왔고, 부모 역시 내편을 들어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기다린 시간 동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관계를 확인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문제를 직면하려는 움직임도 없었다. 오히려 동생에게 다시 기회를 주자는 말만 반복됐다. 그 과정에서 나는 점점 소진되었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역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는 역할이 너무 오래 지속됐기 때문이다.
절연을 이야기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뜻밖에도 담담했다. 웃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내가 기대했던 가족의 모습과 지금의 현실 사이의 간극이 선명해졌다. 나는 부모가 나를 물질적으로 안정되게 키워주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등록금이나 결혼 자금에 대한 걱정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부모 덕분이었다. 그 부분에 대한 감사와 애정도 분명히 존재한다. 동시에 감정을 나누고 갈등을 함께 다루는 경험은 부족했다. 그 양가감정은 지금의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혼 직후, 삶의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가족마저 안전한 울타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마주한 것은 생각보다 큰 충격이었다. 문제를 외면하고 지켜보기만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실망도 함께 따라왔다. 결국 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거리를 두는 선택을 했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를 끊는 결정을 내렸다. 누군가를 미워해서라기보다, 더 이상 이 구조 안에서 나 자신을 소진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에피소드를 기록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책임이 흐려지고,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지를 남기고 싶어서다. 그리고 내가 왜 절연이라는 선택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도 정직하게 설명하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