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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Apr 29. 2017

역발상 과학 (36) 잡초에게도 배울 점이 있을까?

‘연잎 방수효과를 활용한 메모리소자’와 ‘물총새의 부리를 모방한 신칸센

‘잡초라도 배울 점이 있다’ 라는 격언이 있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뭔가를 배울만한 장점이 있다는 의미다.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출발했다. 청색기술이란 수십억 년이라는 시간 동안 시행착오와 선택이라는 진화 과정을 통해 살아남은 존재들을 모방하거나 이들로부터 영감을 얻자는 취지로 탄생된 기술이다.


              생물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원리를 모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 teachengineering


지금 소개하는 ‘연잎의 방수효과를 활용한 메모리소자’와 ‘물총새의 부리를 모방한 신칸센 열차’는 모두 청색기술을 이용한 사례들이다. 아무리 첨단기술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그 바탕에는 자연으로부터 배운 기술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발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연잎 효과로 방수기능 메모리 소자 만들어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마다 연잎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우산조차 귀했던 그 시절, 커다란 연잎은 훌륭한 우산 역할을 해주었다. 아무리 빗발이 거세도 연잎은 빗방울을 튕겨냈고, 잎 위에 고인 빗물은 그대로 흘려버리는 용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이처럼 연잎이 물에 젖지 않고 그대로 튕겨내는 현상을 일컬어 ‘연잎효과(Lotus effect)’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연잎에 무수히 나있는 미세한 돌기와 연잎 표면을 코팅하고 있는 일종의 왁스 성분 때문이다.


연잎의 표면을 보면 마치 기름종이처럼 매끈하다고 느끼지만, 이를 현미경으로 보면 아주 미세한 돌기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돌기에 물을 떨어뜨리면 퍼지지 않고 방울 형태로 맺히게 되는데,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액체가 최소의 표면적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스로 수축하는 힘인 ‘표면장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같은 연잎효과를 응용하여 실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개발해 왔다. 예를 들면 칠을 해도 벽에 빗물이 스며들지 않은 방수 페인트나 비가 와도 자동차 유리에서 퍼지지 않는 코팅제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연잎의 방수효과를 모방한 인공소재들이 개발되고 있다 ⓒ wikipedia


이뿐만이 아니다. 배의 하단 부분에 이 기술을 적용하면 물과의 마찰을 줄일 수 있어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고, 수도계량기 등에 활용하면 물이 표면에 달라붙지 않아서 어는 것을 막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최근에는 물에 취약한 반도체 메모리 소자에 연잎효과를 응용한 방수처리 기술이 적용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포스텍의 용기중 교수팀이 개발한 메모리 소자는 기존의 메모리 소자에 연잎의 방수 특성을 적용하여 주위에 수분이 존재해도 안정적으로 소자가 작동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용 교수는 “기존의 전자제품에 적용된 방수기술은 전체를 코팅하는 방식이지만, 우리 연구진이 개발한 소자는 연잎을 모방하여 메모리 소자에 미세한 나노 돌기를 형성하고, 그 위를 화학물질로 코팅하는 방식으로 개발했다”라고 밝혔다.


신형 신칸센의 디자인은 물총새의 부리를 모방


연잎이 방수 기능을 가진 메모리 소자를 만드는데 도움을 줬다면, 물총새는 일본의 신형 신칸센 열차 디자인에 영감을 제공해준 주인공이다.


신칸센은 일본이 자랑하는 고속열차로서 일본의 과학기술을 상징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 열차는 시리즈별로 디자인이나 설계 방식이 조금씩 다른데, 그 중에서도 1996년에 나온 500 시리즈는 여러 신칸센 모델 중에서도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면서 지금도 고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신칸센 500 시리즈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단지 빠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열차가 사랑을 받고 있는 진짜 이유는 독특하게 생긴 앞머리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선형 모양이 아니라 마치 새의 부리처럼 길쭉하게 튀어 나와 있어서다.


어째서 일본의 JR사는 이렇게 독특한 모양을 고속열차의 앞머리로 만든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500 시리즈의 초기 모델이 안고 있던 엄청난 소음 문제와 관련이 있다. 초기 모델이 시운전을 했을 당시만 해도 소음이 너무 심해 운행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되버린 것.


열차가 좁은 터널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게 되면 터널 내 공기가 갑작스럽게 압축되면서 압력이 높아지게 된다. 특히 열차가 터널에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올수록 압축은 점점 더 심해져서 음속에 가까운 압력파가 발생하게 되고, 이 파동이 터널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면서 강력한 저주파 파장을 발생시켜 엄청난 굉음이 나게 되는 것이다.


                                     신형 신칸센의 앞머리는 물총새의 부리를 닮았다 ⓒ psu.edu


이 같은 이유로 인해 터널 주변의 인근 주민들로부터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던 JR사의 엔지니어들은 가장 효과적인 디자인을 위해 수많은 견본을 검토하던 중 물총새의 부리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물총새는 하늘을 날다가 물고기를 발견하면 빠르게 다이빙하여 물고기를 잡는다. 저항이 약한 매질(媒質)인 공기에서 강한 매질인 물로 진입하는데도 물이 거의 튀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먹잇감인 물고기는 포식자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 챌 겨를도 없이 사냥을 당하고 만다.


물총새만의 이 같은 사냥 비법은 바로 길쭉한 부리와 날렵한 머리에 있다. 날개를 접고 다이빙할 때의 물총새는 앞쪽이 가늘고 길게 튀어나온 탄환 모양으로 변신하며, 이 덕분에 수면에 진입할 때 파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을 파악한 JR사의 엔지니어들은 물총새의 부리와 머리 모양을 바탕으로 열차의 앞머리를 다시 디자인했다. 그리고 시운전을 실시한 결과, 소음을 크게 줄이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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