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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Apr 29. 2017

역발상 과학 (35) 꿩은 뱀이 아니라 매가 잡는다

‘초소형 미니 세탁기’와 ‘대야 겸용 포터블 정수기’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속담이 있다. 


어느 자리던지 그에 맞는 적임자가 있고, 어떤 사물이던지 그에 맞는 역할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 같은 속담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전자제품이라 하더라도 공간이 협소하여 비치할 자리가 없다거나, 이를 가동시킬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이라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성능보다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 문화유산채널


지금 소개하는 ‘초소형 미니 세탁기’와 ‘대야 겸용 포터블 정수기’는 꿩을 잡는 존재가 호랑이도 아니고 뱀도 아닌, 바로 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첨단 기능을 갖춘 세탁기와 정수기에 비해서는 한참 뒤떨어진 성능을 갖고 있지만,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어디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역발상의 결과물이 된 것이다.


초음파를 사용하여 세탁하는 휴대용 세탁기


세탁기가 위치할 마땅한 자리가 없는 집에서 살거나,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세탁을 어떻게 할까? 아마도 손빨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발명가인 레나 솔리스(Lena Solis)는 어디에 있던지 빨래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언제든 들고 다닐 수 있는 초소형 세탁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돌피(Dolfi)’라는 이름의 이 미니 세탁기는 기존의 세탁기가 가진 고정관념을 뒤집는 역발상 제품이다. 세탁기라면 우선 물을 담는 통이 있어야 하고, 빨래와 물을 회전시키는 교반기도 장착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피는 자칫 비누로 오해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상자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작고 간단한 상자 모양의 세탁기가 어떻게 빨래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세탁 과정도 돌피의 모양만큼이나 간단하다. 먼저 세면대나 대야 등에 빨랫감을 넣고 물을 부은 뒤 세제를 넣는다. 다음으로 돌피의 스위치를 켜고 물속에 투입한다. 이렇게 30~40분 정도를 기다린 후 빨래를 헹군 다음 빨랫줄에 널기만 하면 끝이다.


                                              초소형 세탁기인 돌피의 세탁 과정 ⓒ indigogo


이렇게 빨래를 담가 두기만 해도 과연 세탁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심을 하겠지만, 빨랫줄에 걸린 옷을 보면 손빨래만큼이나 깨끗하게 세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솔리스는 “돌피의 스위치를 켜면 초음파가 발생된다”라고 밝히며 “초음파가 진동을 일으켜 빨랫감에 있는 얼룩과 때를 분리시키는 것”이라고 돌피의 원리를 설명했다.


그는 “세탁에 초음파를 이용하는 것이 생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안경 렌즈나 보석, 그리고 시계 등을 세척하는데 있어 이미 초음파가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라고 답변하며 “돌피는 이런 초음파 세척 방법을 일반 세탁에 적용한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돌피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척 시 초음파를 사용하므로 옷감에 전혀 손상을 주지 않는다. 또한 충전비용이 일반 세탁기에 비해 80배나 적기 때문에 전기요금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솔리스는 “소음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돌피의 매려 중 하나”라고 전하며 “초음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속옷과 레이스, 수영복 등 아무리 소재가 다양하더라도 세탁이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부력현상과 나노 필터로 오염된 물을 정수


독일의 발명가가 어디든지 갖고 다닐 수 있는 세탁기를 개발했다면,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은 상시 휴대가 가능한 정수기를 선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국내 디자인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는 김우식 디자이너와 최덕수 디자이너가 그 주인공.


이들은 오래 전부터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을 위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중, ‘행복한 대야(Happy Basin)’라는 작품으로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 철해치상과 시민특별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얼핏 보면 음식을 담는 접시 같기도 하고, 장난감 모자 같기도 한 이 작품에 대해 김 디자이너는 “매일 물을 구하기 위해 수십 km이상을 걷는 저개발 국가 어린이들을 위한 디자인”이라고 소개하며 “물가까지 걷는 동안 뜨거운 햇살을 피하게 해주는 모자인 동시에, 흙탕물을 여과하여 깨끗한 물로 만들어 주는 대야 형태의 정수기”라고 밝혔다.


                                         모자로도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정수기 ⓒ 수자원공사


모양은 간단하지만, 그 속에 숨어있는 원리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일단 대야를 물에 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장자리가 공기로 가득 차 있다.


공기로 인해 부력이 생긴 대야가 물에 둥둥 떠 있는 상태가 되면 대야바닥에 뚫려 있는 구멍으로 오염수가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내부에 장착된 나노 필터를 통해 오염 물질이 정화되고 깨끗한 물만 대야 안에 고이게 된다.


최 디자이너는 “대량이 아닌 소량의 물을 정수할 때 행복한 대야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라고 말하며 “당장 마셔야 할 식수나 요리 및 세수에 필요한 물을 얻기를 원하는 저개발 국가의 주민들에게 필요한 제품이 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하여 적정기술 전문가들은 “저렴한 제작비용과 간단한 제작공정, 그리고 가벼운 무게 및 손쉬운 사용방법 등 적정기술이 요구하는 사항들이 골고루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앞으로 물 부족 국가의 주민들에게 커다란 공헌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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