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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Apr 29. 2017

역발상 과학 (34) 구멍이 제품 성능을 좌우한다?

‘펜을 만년필로 바꿔준 구멍’과 ‘김치도 캔에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구멍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용을 그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맨 마지막 단계로 눈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로서,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했을 때 사용하는 용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용품 중에는 이 같은 화룡점정의 사례가 될 수 있는 제품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점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작은 구멍 하나만으로 기존 제품들보다 훨씬 뛰어난 기능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점과 같은 구멍 하나로 혁신적인 기능을 갖게된 제품들을 볼 수 있다 ⓒ wikimedia


지금 소개하는 ‘펜을 만년필로 바꿔준 구멍’과 ‘김치도 캔에 담을 수 있도록 만든 구멍’은 모두 기존 제품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구멍 하나만으로 극복한 사례들이다. 비록 하찮은 구멍이지만 여기에 과학기술의 원리가 적용되면서 놀라운 기능을 갖게 된 역발상의 결과물인 것이다.


만년필의 구멍은 튜브 내 압력을 유지하는 용도


펜(pen)이 근대적 필기구의 ‘효시’였다면 만년필(fountain pen)은 ‘혁명’을 가져온 필기구다. 수시로 잉크를 찍어야 하는 번거로운 펜과는 달리, 잉크 튜브가 달린 만년필은 그런 번거로움에서 사람들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컴퓨터와 휴대폰의 등장으로 인해 손글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지만 만년필은 여전히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자랑하고 있다. 다른 필기구들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만년필은 아직도 많은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매력 만점의 필기구인 만년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이를 확인하려면 19세기 말에 설립된 만년필 제조사인 미국의 워터맨(Waterman)을 방문해야 한다. 지금도 명품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는 워터맨사를 방문하면 만년필을 최초로 만든 루이스 워터맨(Lewis Edson Waterman)의 초상화를 만날 수 있다.


워터맨은 원래 보험회사의 영업사원이었는데, 보험계약을 위해 펜을 사용하다가 잉크가 크게 번지는 바람에 계약이 취소되는 낭패를 겪게 된다. 이후 워터맨은 잉크가 잘 흐르지 않는 펜촉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보험일을 그만 둔다.


당시의 펜촉 모양은 얇은 철판을 휘어지게 만든 다음 끝부분을 뾰족하게 다듬은 형태였다. 이에 워터맨은 그런 구조의 펜으로는 잉크가 쉽게 흐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수많은 펜촉을 깍고 다듬은 끝에 오늘날의 만년필과 비슷한 형태의 펜촉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만년필의 기능이 설명된 특허명세서 ⓒ wikipedia


만년필의 펜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운데가 잘려져 있고, 그 위로 작은 구멍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잘려진 틈은 중력과 모세관 현상에 따라 잉크가 흘러나오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펜촉이 종이에 닿으면 틈이 벌어지는 폭에 따라 선의 굵기가 달라지는데, 약하게 누르면 선이 얇아지고, 세게 누르게 되면 선이 굵어진다.


반면에 작은 구멍은 잉크가 많이 흐르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만년필의 잉크 튜브는 끝이 막혀있는 형태여서 글씨를 쓰게 되면 잉크가 빠져나오면서 내부 기압이 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잉크가 너무 많이 흐르거나 적게 흐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펜촉에 작은 구멍을 뚫어 놓으면 이 구멍을 통해 잉크가 흘러나온 반대 방향으로 공기가 들어가게 된다. 잉크가 빠져나온 공간을 공기가 대신 채워 잉크 튜브 내부 기압이 유지되면서 흘러나오는 잉크의 양이 일정해지는 것이다.


워터맨은 이 같은 펜촉에 대한 기술특허를 신청한 뒤, 1884년에 드디어 역사적인 첫 제품을 출시하는데 성공한다. 제품은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20세기 들어 워터맨사는 미국 최대의 필기구 회사로 도약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캔 김치의 구멍은 발효가스 배출 용도


미국의 워터맨이 작은 구멍 하나로 혁신적인 필기구인 만년필을 만들었다면, 국내의 테이스티나인이라는 회사는 캔 뚜껑에 낸 작은 구멍을 아이디어 삼아 프리미엄 김치 제품을 만들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김치나인’이라는 브랜드의 이 제품은 내용물인 김치보다도 캔과 페트병이 융합된 포장용기로 인해 프리미엄 대접을 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김치처럼 발효가 진행되는 식품은 캔 용기에 담는 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생되는 발효가스로 인해 용기가 팽창되고, 맛의 신선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이스티나인은 이 같은 문제들을 해결한 ‘캔 김치’를 해외에 선보여 인기를 끌고 있고,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국내 김치시장에서도 프리미엄급 김치를 공급하는 회사로 인정받고 있다.


                                      뚜껑 부분에 구멍이 형성된 캔 김치 제품 ⓒ 테이스티나인


문제 해결의 비밀은 용기에 형성된 작은 구멍에 들어 있다. 뚜껑 한 가운데 만들어진 지름 2㎜ 정도의 구멍을 통해 발생되는 가스가 배출될 수 있도록 개발한 것.


그리고 구멍 위로는 스티커를 붙여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는 박테리아나 수분 등의 침투를 막도록 설계했다. 다시 말해 발효가스는 배출하되 맛과 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들은 차단하도록 만든 김치전용 캔 용기를 제작한 것이다.


이 용기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디자인을 들 수 있다. 뚜껑만 캔이고 용기는 페트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비닐포장 일색인 기존 제품들과 비교할 때 확실한 차별화 요소를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캔 뚜껑을 따서 먹고 동봉된 뚜껑을 덮으면 보관까지 가능해서 김치의 신선도 유지와 소포장 유통에도 안성맞춤인 제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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