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래 Apr 29. 2017

역발상 과학 (38) 하찮은 것이 세상을 바꾼다?

‘일회용 종이컵’과 ‘일회용 반창고’

‘하찮은 것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격언이 있다. 세상에 처음 등장할 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제품들을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하찮아 보이는 일회용품이지만,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 wikipedia


지금 소개하는 ‘일회용 종이컵’과 ‘일회용 반창고’도 바로 그런 경우다. 모두가 한번만 사용하고 버리는 하찮은 존재들이지만, 이들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생활에 있어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한 목적과 계기로 탄생했지만, 현재는 전 세계 모든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역발상의 결과물이 된 것이다.


운반보다는 위생이 목적이었던 종이컵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피는 의자에 앉아 풍미를 즐기며 차분하게 마셔야 제대로 마시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랬던 커피 문화가 손에 들고 다니며 마실 수 있도록 변한 데는 종이컵이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가볍고 떨어뜨려도 깨질 위험이 없어서 들고 다니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컵이 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라도, ‘운반’보다는 ‘위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00년대 초에 종이컵을 개발한 휴 무어(Hugh Moore)는 당시 하버드대에 재학 중인 대학생이었다. 그는 생수자판기 사업을 벌이고 있던 친구를 도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생수자판기 사업은 초기만 해도 고객의 주문이 많았지만, 점차 사용하는 유리잔의 위생 문제와 깨지기 쉽다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무어는 깨지지 않으면서도 위생적인 컵을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이내 종이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역발상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우선 종이는 저렴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을 하면 위생적인 일회용 컵으로 만들어 수 있고, 또한 깨지지도 않기 때문에 안전한 컵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무어가 1900년대 초에 특허출원한 종이컵 개념도 ⓒ wikipedia


물에 젖는 문제만 해결하면 종이컵 개발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미친 무어는 곧바로 물에 젖지 않는 종이를 찾아 도시 전체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종이를 구할 수는 없었고, 결국에는 젖지 않는 종이를 직접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온갖 종류의 종이를 사와 물에 담가 보는 실험을 진행하던 무어는 어느날 종이를 왁스로 코팅하면 물에 잘 젖지 않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 길로 무어는 왁스로 코팅한 종이를 소재로 한 컵을 만들어 특허를 등록했다.


종이컵이 발명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무어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들었다. 당시로서는 막대한 규모인 2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나타났고, 무어는 그 투자자의 도움으로 종이컵 회사를 세울 수 있었다.


행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때마침 미국의 민간 보건 연구소에서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방법으로 일회용 컵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라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그 덕분에 종이컵은 기하급수적으로 매출이 늘기 시작했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는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아내의 덜렁거리는 버릇이 일회용 반창고 개발로 이어져


무어가 일회용 종이컵을 발명하던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또 다른 메가톤급의 일회용품이 세상에 빛을 보기를 기다리며 꿈틀대고 있었다. 바로 오늘날에도 ‘◯◯밴드’라는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일회용 반창고’다.


일회용 반창고를 발명한 사람은 글로벌 제약기업으로 유명한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사의 얼 딕슨(Earle Dickson)이다.


존슨앤존슨에서 거즈와 탈지면 영업을 담당하던 딕슨이 일회용 반창고를 만들게 된 계기는 아내의 덜렁대는 버릇 때문이었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가 걸핏하면 식칼에 손을 베이거나, 뜨거운 냄비 손잡이에 데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


그럴 때마다 거즈를 붙이고 반창고를 붙여줬지만, 어느날 장기출장을 앞두고 혼자 있을 아내가 걱정됐다. 아내 혼자서는 거즈와 반창고를 붙이는 작업을 하기가 어려울 것이라 판단됐기 때문이다.


                    일회용 반창고의 브랜드인 Band-Aid는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 wikipedia


그 때 딕슨의 뇌리에 매번 거즈를 자르고, 반창고를 붙일 필요가 없는 일회용 반창고 형태가 번개처럼 떠올랐다. 마침 거즈와 탈지면 등을 제조하던 회사의 직원이었던 만큼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능숙하게 구체화시켰다.


우선 반창고를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가운데에 거즈를 붙였다. 문제는 반창고의 끈적한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점이었는데, 이 부분도 나일론과 비슷한 종류의 건조 직물인 ‘크리놀린(crinoline)’을 적용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딕슨은 크리놀린을 활용하여 평소에는 접착된 상태로 존재하다가, 필요할 때면 크리놀린을 쉽게 떼어내어 사용할 수 있는 오늘날의 형태와 비슷한 일회용 반창고를 만들 수 있었다.


아내를 위해 만든 변형된 반창고에 불과했지만, 우연한 기회에 회사 경영진에 알려지면서 제품화가 되었다. 결국 일회용 반창고는 존슨앤존슨을 오늘날의 글로벌기업으로 만드는데 막대한 기여를 하면서 반창고의 대명사처럼 돼버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