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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Oct 01. 2016

역발상 과학 (5) '상향식'이 안되면 ‘하향식’으로

신개념 증발증착기술과 거꾸로 타는 보일러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자,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다. ‘위에 문제가 있으면, 아래에도 문제가 발생한다’라는 세상이치를 한 문장에 담은 명언이지만, 과학기술 분야만큼은 조금 예외를 둘 필요가 있다. ‘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아래’에서 해결하는 것이 과학기술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위에 문제가 있을 때, 아래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다 ⓒ free image

지금 소개하는 ‘신개념 증발증착기술’과 ‘거꾸로 타는 보일러’는 모두 위를 향하는 ‘상향식’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아래로 향하는 ‘하향식’으로 해결한 역발상의 결과물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한 가지 방식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 ‘한 가지’에서 벗어남으로써,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고품질의 대형 디스플레이 제조 가능


스마트폰 액정이나 TV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디스플레이들은 품질향상을 위해 코팅 공정이 필요한데,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인 제조 공정의 코팅 방식과 조금 다르다는 점이다.


디스플레이 기판을 천장 같은데다 붙들어 놓고, 아래에서 코팅 재료를 가열하게 되면 재료가 녹으면서 증발하게 된다. 증발된 기체 속에 있는 재료들은 분자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들이 기판에 붙으면서 코팅이 이루어지게 된다.


‘상향식 증발증착’이라는 이름의 이 코팅 기술은 디스플레이 제품이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업계에서 줄곧 사용하던 ‘유일한’ 코팅 기술이었다.


이처럼 독보적인 방식을 자랑하던 상향식 증발증착 기술이지만, OLED 기판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27cm×35cm에 불과했지만, 현재의 기판은 2.2m×2.5m나 될 정도로 커지다보니 코팅 시 기판이 아래로 늘어지는 단점이 노출된 것.

표준과학연구원이 개발한 하향식 증발장착 기술 ⓒ 표준과학연구원

코팅의 특성 상 기판 지지대를 네 귀퉁이에만 설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타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나노측정센터의 이주인 박사와 연구진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작은 기판은 상관없지만, 대형 기판일 경우 중력으로 인해 아래로 휘어지는 것을 보고, 연구진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이 박사의 역발상 아이디어를 통해 ‘하향식’ 코팅 기술에 대한 개념이 세워졌고, 곧바로 하향식 증발장착에 대한 연구에 돌입하게 됐다.


하향식은 기판이 바닥에 깔리는 형태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상향식 공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나타나지 않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으니, 바로 공기 중의 먼지나 오염물질이 기판위에 떨어지면서 품질이 엉망이 된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이 박사와 연구진은 독창적인 디자인을 개발하는 등 3년여의 연구를 거쳐 무결점 하향식 증발증착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기판의 휘어지는 현상을 극복하면서도, 오염물질이 떨어지지 않는 증발증착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그 파급효과는 실로 막대하다. OLED 같은 디스플레이 분야는 물론 태양전지나 특수 코팅 분야 등에 활용될 수 있다. 특히 OLED TV분야의 시장규모는 오는 2020년 까지 약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 수천 억 원에 달하는 개발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버려지는 열에너지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


‘위가 문제면, 아래에서 해결한다’는 역발상 기법은 보일러에도 적용된다. 보일러의 기본 원리는 연료를 태워서 생기는 열에너지를 난방용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일반적인 보일러의 연소 방식은 아래에서 위로 타올라가는 상향식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같은 구조는 연소가 안정적으로 이뤄진다는 장점은 있지만, 반면에 연소한 열에너지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짧아서 열 손실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정용 보일러의 열에너지 효율은 40~50%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버려지는 다량의 열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높여보자는 생각에서 시도한 역발상의 결과가 바로 하향식 연소 구조를 가진 ‘거꾸로 타는 보일러’다. 연소 버너를 보일러의 윗부분에 설치하여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최대한 보일러 안에 오래 묵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거꾸로 타는 보일러의 핵심은 하향식 연소 기술이다 ⓒ 귀뚜라미

이를 개발한 귀뚜라미사의 관계자는 “불꽃은 아래에서 위의 방향으로 타면서 올라간다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거꾸로 타는 보일러’ 개발의 일등공신”이라고 소개하며 “이를 통해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는 ‘하향식 연소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라고 언급했다.


난방 전문가들도 “모든 업체가 연료를 적게 사용하는 보일러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요즘 시기에, 이 회사는 불꽃의 연소 방향을 바꿔서 열효율을 높인다는 역발상으로 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거꾸로 타는 보일러가 완벽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하향식 연소방식이 기존의 상향식 연소에 비해 배기가스 배출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연소가 불완전하다는 점과 그을음 등이 쉽게 발생하는 점 등도 거꾸로 타는 보일러가 조속히 해결해야 하는 숙제로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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