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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Oct 01. 2016

역발상 과학 (6) '하향식'이 아니면 '상향식'으로

화석 위에 세워진 과학교육원

‘상통하달(上通下達)’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위와 아래가 잘 소통하여 그 문제를 잘 해결한다는 의미다. 매사가 상통하달이 잘 돼서 술술 풀리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감정을 앞세우거나,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소통이 안될때는 과학이 창의적 사고력을 제공한다 ⓒ Free Image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 과학적 접근 방식을 활용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합리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지금 소개하는 ‘화석위에 세워진 과학교육원’도 바로 상통하달이 안돼서 벽에 부딪혔던 문제를,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한 역발상의 결과물이다.


화석 위에 세워진 차별화된 과학교육원 건물


경남 진주에 위치한 경남과학교육원 건물은 다른 지역의 과학교육원들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ㄷ’자형의 지하1층과 지상5층 본관건물은 특별할 것이 없지만, 이 사이에 있는 반 지하층의 전시관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 바로 천연기념물인 새 발자국 화석위에 교육원이 지어져 있는 것.


공사 중에 발견된 새발자국 및 공룡발자국이 찍혀있는 화석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그 위에 과학교육원 건물을 지은 것이다. ‘과학’과 ‘화석’이란 멋진 조합을 가진 차별화된 교육원 건물이지만, 처음 계획은 이런 형태의 건물이 아니었다.


이곳에서 새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것은 과학교육원 공사가 착공된 지 1년쯤 지난 1997년의 일이었다. 지하층 공사를 위해 바닥을 파내다가 새 발자국이 찍혀있는 돌이 발견된 것이다. 교육원 측은 곧바로 정부에 신고를 했고, 문화재청 실사단의 조사 결과 1억 년 전 중생대 조류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경남과학교육원 전경. 오른쪽이 화석 전시장이다 ⓒ 경남과학교육원

무려 1억 년 전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과학계는 환호성을 질렀지만, 경남과학교육원은 난처한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공사현장에서 문화재가 발견되면 대부분 공사를 포기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배정 받은 건축 예산이 벌써 40억 원 정도가 투입되어 있었던 때문.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문화재청의 정밀조사 결과를 기다리던 교육원측은 새 발자국 화석이 천연기념물 395호로 지정되면서 기대를 접게 되었다. 이때가 98년 말로서, 화석이 발견된 지 꼭 1년만의 일이었다. 그동안 현장은 유물 보존을 위해 흙으로 메워지면서, 공사가 전혀 진척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남지역 도의원들은 도의회를 열때마다 교육원 공사를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로 꼽으면서, 지적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진주시와 교육원측은 화석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를 하고 공사를 계속하겠다는 제안을 문화재청에 신청했으나 허락을 받지 못했다.


유적발굴은 공사 중단이라는 불문율 깬 역발상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경남과학교육원 신축 문제는 새로 부임한 교육감이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면서 반전의 기회를 얻게 된다. 2003년에 부임한 고영진 경상남도 교육감이 문화재청에다 재심의를 요청하며 과학교육원의 설립 취지를 강력하게 설명한 것.


그는 “과학교육원이 무엇을 하는 곳이냐? 청소년들에게 과학이 무엇인지를 배우도록 하는 곳이 아니냐? 화석, 그것도 모형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화석이라면 다른 곳에 있어도 일부러 가지고 와서 보여줘야 할 형편인데, 교육원 아래에 화석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면 이 것 만큼 좋은 과학교육의 상징이 어디 있겠느냐”라고 설득한 것이다.


이렇게 교육감이 관계 기관들을 쫓아다니며 공사 재개를 위해 노력하는 동안, 과학교육원 측도 다양한 설계 아이디어를 제공하여 힘을 보탰다. 특히 새발자국 유적을 건물내부로 끌어들여 유물도 보존하면서 교육원도 짓는 역발상 설계방안이 문화재청의 마음을 움직였다.

경남과학교육원 지하에 있는 조류 발자국 화석 ⓒ 국가문화유산포털

결국 심의를 미루던 문화재위원들도 “유적 보존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과학교육과 화석의 시너지 효과를 고려하지 못했다”라고 미안해하며 2년 뒤인 2005년에 허가를 내줬다. 그냥 허가만 내 준 것이 아니다. 문화재청은 교육원 건물을 짓는데 보태 쓰라며 10억 원의 예산까지 배정해 줬다.


비록 당초 예상보다 8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지만, ‘유적발굴은 공사 중단을 의미한다’라는 불문율의 악순환을 끊고 진정한 의미의 과학교육원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공사 재개의 실마리를 풀은 고 교육감은 “취임직후 폐허처럼 방치된 공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창의적 방안이 없을까하고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후 경남과학교육원은 지하 1층 및 지상 5층의 건물, 그리고 지하층과 연결된 화석문화재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지어졌다. 공사 지연의 원인을 제공한 새 발자국 화석은 바로 이 전시관 두 곳에 나뉘어져 있다.


현재 화석 전시장은 지역 학생들의 필수 견학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경남과학교육원의 관계자는 “화석은 1억 년 전 도요물새떼 새발자국 2500개와 공룡발자국 화석 80개가 이중으로 찍혀 있다”라고 설명하며 “새와 공룡이 같은 시기에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희귀한 유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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