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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래 Oct 01. 2016

역발상 과학 (7) 자연에 도전말고 순응하자

해수면 상승에 따른 수륙양용 주택과 무개발 자연재해 대응책

‘○○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라는 속담이 있다. 


○○안에는 부모, 어른, 스승 등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변 사람들의 호칭이 상황에 맞게 들어간다. 이들이 하는 말을 경청하여 순종하면, 뜻하지 않았던 이익이 따라온다는 의미다.


인류의 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하다보니, 과학기술의 힘을 과신하여 상황판단을 잘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과학기술을 총동원하여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때로는 대응 보다 순응이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 ⓒ free image

그러나 아무리 문명이 발전했어도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무기력함을 느낄 때가 많다. 따라서 자연에 맞서야 될 때와 순응할 때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과학기술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소개하는 ‘수륙양용 주택 건설’과 ‘태풍 완충지대 조성’의 건은 과학기술이 자연재해에 맞서지 않고 순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결과물로서, 그 덕분에 새로운 보금자리까지 얻을 수 있었던 역발상의 사례들이다.


해수면 상승에 순응하는 해법은 수륙양용 주택


네덜란드는 국토의 25%가 해수면 보다 낮은 곳에 조성되어 있다. 이 25% 지역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해수면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제방과 운하 관리에 예로부터 많은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더 이상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따라서 해수면 상승에 순응할 수 있는 생활방식을 찾고 있는데, 우선적으로 제시된 해법이 바로 수륙양용 주택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외곽으로 나가면 수백여 채의 집들이 몰려 있는 조그만 마을이 있다. 멀리서 보면 다른 마을과 별반 다름없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 갈수록 일반적인 마을의 풍경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의 부유식 수상 주택 ⓒ waterstudio

집 앞에는 자동차 대신 보트가 정박해 있고, 집 사이사이에는 골목길 대신 다리가 놓여있다. 에이뷔르흐(Ijburg)라는 이름의 이 마을은 수상가옥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유명한 수상마을 중 하나다.


수상가옥이라고 해서 이탈리아의 베니스나 동남아시아에 있는 고정된 수상가옥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에이뷔르흐의 가옥들은 물에 뜨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지어져 있어서, 물이 차면 집이 수면 위로 뜨게 된다.


평소에는 수면 아래 땅에 고정되어 있지만, 폭우나 수문 개방 등으로 인해 수위가 높아지면 물이 콘크리트 구조물을 수직으로 들어 올리면서 뜨게 되는 것이다. 가옥은 최대 2m 높이까지 뜰 수 있는데, 뜬다 해도 수도와 전기 같은 제반 시설은 그대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이 수륙양용 주택을 개발한 영국의 ‘워터스튜디오’사는 ‘물 위에 뜨는 아파트’ 단지 건설까지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아파트 단지는 항공모함처럼 물에 뜨는 거대한 플랫폼에 위에 3층 높이로 지어질 예정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자연재해에는 무개발이 대응책


지난 2012년 뉴욕주의 연안 지역은 수퍼 태풍인 ‘샌디(Sandy)’로 큰 피해를 보았다. 이듬해인 2013년에도 또 다른 태풍으로 인해 상습 침수지역이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자, 당시 뉴욕주 주지사였던 앤드류 쿠오모(Andrew Cuomo)는 역발상 대응책을 제시해 시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각종 ‘개발’을 통해 태풍 피해에 ‘대응’해 왔다면, 앞으로는 ‘무(無)개발’ 정책으로 태풍에 ‘순응’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 해안가 상습 침수지역의 주택들을 주 예산으로 사들인 뒤, 이를 습지와 모래언덕, 조류 보호구역 등으로 조성하여 일종의 태풍 완충지대로 만들겠다는 것이 대책의 주요 내용이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허리케인에 땅을 내주자”라는 자극적인 슬로건을 통해 “지구상의 많은 지역은 분명 대자연의 소유인만큼, 어느 순간 태풍을 포함한 대자연으로부터 당신이 이곳에 살기를 원치 않는다라는 경고를 받을 날이 올 것”이라고 대응책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뉴욕의 연안가는 상습 침수지역이다 ⓒ weather.gov

파격적 대책이었던 만큼 처음에는 시민들이 주지사의 생각을 낯설어했지만, 전문가들로부터 방재대책의 역사에서 가장 역발상적이고 이상적인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뉴욕주의 대응책에 동조하는 시민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의 대부분이 개발로 인해 발생한 만큼, 개발을 중단하여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습 침수지역의 165가구 중 133가구는 주정부의 매입 제안에 응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3대 이상 거주해 온 적지 않은 ‘토박이’들로 인해 이 정책은 현실화되지 못했다. 보험료 인상 등을 감수하더라도 이 지역을 떠나지 않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결국 ‘무개발’ 정책은 진행형으로 남았지만,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보다는 순응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 볼 때 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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