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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피해자도 절대적인 가해도 없다.

절대적 피해자와 절대적 가해자 IV

절대적인 피해자도 절대적인 가해자도 없다.

     

어디가 지옥인가? 자신을 절대적인 피해자로 여기고, 상대를 절대적인 가해자로 여기는 이들이 모인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어떤 인간적 가치도 피어날 수 없기에 지옥이다. 유사 이래, 크고 작은 갈등과 마찰, 분열은 끊이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늘 피해의식이 도사리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 내밀한 곳에서 작동하는 피해의식은 인간사人間事에서 늘 갈등과 마찰,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지옥의 서막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삶의 진실을 보라. 세상에 절대적 피해자는 없다. 언제나 우리가 어떤 상처를 입었더라도, 우리보다 더 큰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피해의식이라는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보라. 세상에 절대적 가해자는 없다. 누군가의 악의 없는 행동이 우리에게 상처가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잔악무도한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의 삶의 맥락을 깊이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그 역시 누군가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절대적 피해자와 절대적인 가해자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는 상대적 피해자와 상대적 가해자뿐이다. 우리의 상처는 누군가의 상처 앞에서는 한 없이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상대적 피해자일 뿐이다.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이는 분명 가해자다. 하지만 그 역시 반드시 상대적 가해자일 밖에 없다. 이제 진짜 삶의 진실에 대해서 말하자. 세상에는 상대적 피해자와 상대적 가해자만이 존재하지만, 이 둘은 구분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상대적 피해자인 동시에 상대적 가해자다.

     

 우리는 모두 상대적인 피해자인 동시에 상대적 가해자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우리는 분명 피해자다. 돈, 외모, 성, 학벌 등등에 의해 상처 입은 상대적 피해자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피해자이기만 할까? 정직하게 우리네 삶을 돌아보자. 우리는 우리가 받은 상처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얼마나 주며 살았던가? 


 우리는 모두 상대적 가해자다. 자신을 (상대적 혹은 절대적) 피해자라고 확신하고 있는 조차도 누군가에게 상대적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마음 속 깊은 곳의 상처가 괴물이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의도한  혹은 의도치 않은 크고 작은 상처를 주며 사는 것이 평범한 이들의 일상 아니던가. 세상에 절대적인 피해자와 가해자가 넘쳐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크고 많게 동시에 우리가 누군가에 준 상처는 작고 적게 인지하기 때문일 뿐이다. 

     

  피해의식은 얼마나 허망하고 끔찍한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지옥의 문을 닫고 인간적 세계의 문을 열 수 있는가? 세상에 절대적인 가해자와 절대적인 피해자는 없고, 오직 상대적 피해자와 상대적 가해자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모두가 상대적 피해자인 동시에 상대적 가해자라는 사실을 삶의 진실을 깨달을 때이다. 이 삶의 진실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우리가 이 지혜를 깨닫고 이 지혜를 따라 살아가려고 할 때 지옥의 문은 조금씩 닫히고 인간다운 세계의 문이 조금씩 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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