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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으로 가는 문, 피해의식

절대적 피해자와 절대적 가해자 III

만연한 피해의식, 만연한 공동체적 불행

   

 왜 우리 사회는 타인의 상처와 고통에 둔감해지는가? 왜 점점 더 이기적인 삶이 횡횡하는가? 여기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 중심에는 피해의식이 있다. 피해의식에 휩싸이면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그렇게 절대적 피해자가 된 이들에게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 불쌍하고 안쓰러운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타인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상처와 아픔만 보고 있는 이들에게 타인의 상처와 아픔이 보일 리 없다.

      

 ‘정윤’과 ‘찬성’만 피해의식이 있는가? 그들만이 스스로를 절대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저마다 피해의식(외모‧학벌…)이 있다. 어떤 이는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어서 상처 입은 자신을 절대적인 피해자라고 여긴다. 또 어떤 이는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해 상처 입은 자신을 절대적인 피해자고 여긴다. 이처럼 만연한 피해의식은 만연한 절대적 피해자를 양산한다.      


 모두가 절대적인 피해자가 된 세상을 상상해보라. 모두가 자신의 상처와 고통만을 보느라 자신이 가장 큰 상처를 받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안쓰러운 존재로 여기게 될 테다. 그 세상은 어떤 세상이겠는가? 자신보다 더 상처받고 고통 받은 이들에게 무관심하거나 냉소적이거나 폭력적인 세상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다들 자신의 이기적인 삶을 정당화하는 세상일 수밖에 없다. 피해의식은 개인적인 삶만 불행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피해의식이 점점 더 만연해질수록 공동체적 불행 역시 만연해질 수밖에 없다.       


지옥으로 가는 문, 피해의식

 피해의식은 지옥의 문을 연다. 이는 피해의식이 절대적인 피해자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가해자를 만든다는 사실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희원’과 ‘인주’만이 피해의식이 있는가? 달리 말해 그들만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이 혹은 그 상처를 준 이와 유사한 이를 절대적인 가해자로 인식하는가? 그렇지 않다. 세상 사람들 중 피해의식이 없는 이는 거의 없다. 강도(밀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피해의식이 있다.

     

 강요나 폭력에 대한 피해의식을 생각해보자. 어린 시절 강요나 폭력 때문에 받았던 상처가 짙은 피해의식으로 자리잡은 이들이 있다. 이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강요(“보고서는 이번 주까지 마감 해주세요.”)하려고 하거나 혹은 폭력적인 행동(별 일 아닌 일에 소리를 지르는 일)을 보일 때,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질 나쁜 절대적 가해자로 여기게 된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가해자가 피해의식이 짙은 이들에게는 절대적 가해자로 둔갑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누구에게나 피해의식이 있다. 이는 누구에게나 특정한 이를 절대적 가해자로 인식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만연한 피해의식은 만연한 절대적 가해자를 양산한다. 이는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가? 



피해의식의 두 양상, 숨거나 싸우거나


 모두가 절대적인 가해자인 세상을 상상 해본 적 있는가? 거기에는 이해와 관용, 배려와 포용, 공감과 교감이 있을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하고 악랄하고 잔인한 이들에게 어떤 이해와 관용, 배려와 포용, 공감과 교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모두 절대적인 가해자뿐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숨거나 싸우는 일 뿐이다. 절대적인 가해자와는 타협도 대화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힘이 없다면 그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쳐 숨어야 한다. 만약 힘이 있다면 그들과 싸워 그들을 말살해야 한다.

      

 이것이 피해의식이 드러나는 두 양상 아닌가? 피해의식에 휩싸인 이들은 과도하게 소극적이거나 과도하게 폭력적인 양상을 띤다. 피해의식의 과도한 소극성은 절대적인 가해자를 피해서 밀실 안으로 숨는 방식으로 드러나고, 피해의식 과도한 폭력성은 절대적인 가해자를 말살하려는 행위로 드러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세상인가? 모두가 허상의 절대적인 가해자와 아귀다툼을 벌이는 세상. 지옥이다. 피해의식은 개인적인 삶만 불행으로 몰아넣지 않는다. 피해의식이 점점 더 만연해질수록 공동체적 불행 역시 만연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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