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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즉흥은 자유다. 네가 즉흥적인 것들에 끌리는 이유는 자유에 끌리기 때문이다. 너는 항상 자유로움을 꿈꿔왔지. 그것이 네가 음악(예술)에 끌리는 이유일 거다. 모든 예술(음악·회화·행위·문학…)의 마지막 단계는 즉흥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작곡(연주)하고,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고,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 그 모든 일들을 아무런 준비나 계획 없이 즉흥적으로 해내는 것이 예술의 궁극이다. 

     

 예술의 궁극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자유를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두 가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즉흥은 곧 예술이 되는가?’ 이것이 첫 번째다. 즉흥이 곧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즉흥이 예술이 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즉흥적인 것(연주·그림·움직임·글)이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즉흥만이 진정한 예술, 즉 자유일 수 있다.      


 자유는 지독한 부자유 속에서만 꽃피고, 즉흥은 지독한 훈련 속에서만 꽃핀다. 막힘없이 그저 몸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이들의 즉흥적인 춤. 그 춤이 그저 볼썽사나운 소음이 될지, 아름다운 선율이 될지는 그가 견뎌낸 지독히도 부자유했던 훈련에 달려 있을 테다. 부자유한 훈련 없이 그저 제꼴리는 대로 떠들고 제멋에 취한 몸부림은  자유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다. 


 ‘왜 예술가는 불행한가?’ 이것이 두 번째다. 즉흥을 예술로 승화시켰던 진정한 예술가들은 많다. 그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의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다. 예술이 삶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림을 지독히도 열심히 훈련해서 손이 가는 대로 그려도 명작이 되는 화가를 알고 있다. 그의 삶은 불행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그림만 예술의 경지에 올랐을 뿐, 삶에서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잘 그리는(연주하는·쓰는·움직이는) ‘연습’에 집착할 뿐(혹은 집착하느라), 잘 살아내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 잘 살아내는 ‘연습’을 나는 ‘수행’이라고 한다. 많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적 분야를 ‘연습’을 하느라 삶의 ‘수행’하지 못해 불행해졌던 것은 아닐까? 그림만을 그리느라 삶을 그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음악을 연주만 하느라 삶을 연주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글만을 쓰느라 삶을 써내려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 시대의 많은 대중 예술가들은 어디 즈음 와있을까? 그들은 자유로울까? 즉흥적인 연주를, 그림을, 글을 예술로 승화시킬 ‘연습’이 되어 있을까? 마음 가는대로 움직여도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연습이 되어 있을까? 모를 일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 중 자신의 예술적 영역 너머 자신의 삶마저 예술로 승화시킬 '수행'을 하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더욱 모를 일이다.  


 삶 속에 예술이 있는 것이지, 예술 속에 삶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 있어야 예술이 의미 있는 것이지 삶이 없다면 예술도 의미가 없다. 물론 삶과 죽음마저 초월하는 진정한 예술이 있다. 이런 예술을 두고 삶을 벗어나야 진정한 예술이 가능하다고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방종하거나 어리석거나 예술적 치기에 빠져 있는 것일 뿐이다. 삶과 죽음마저 초월하는 진정한 예술은 오직 삶 속에서만 피어난다.      


 예술도 삶도 모른다면, 그저 즉흥(자유)적인 것들을 향해 달려가도 좋다. 좌충우돌할 수 있다. 상처 주고 또 상처받는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괜찮다.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하지만 네가 바랐던 즉흥이 그저 시끄러운 소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내는 자유로움이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꼭 담아 두었으면 좋겠다. 너를 매혹시키는 '즉흥'이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는 자유이기를. 그 '즉흥'을 위해 ‘수행’하는 삶을 살아내기를. 그렇게 언젠가 네 삶이, 네 마음껏 살아도 하나의 근사한 재즈 연주 같은 삶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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